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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44 章. 장군부(將軍府)의 연인(戀人)들.
1.
"대장!"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모두 차례로 나와 인사를 했다. 도일봉
또한 연신 손을 잡고 흔들었다. 삼랑과 하란도 있었다. 하란은 뭐
가 그리 좋은지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삼랑도 반갑기 이
를데 없었으나 수줍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란과 삼랑누이도 나와 있었구려. 모두 잘 있었소?"
하란이 방실방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대장님. 신수가 훤할걸 보니 좋은 일이 있었나봐요?"
삼랑은 반가움을 억누르며 겨우 입을 열었다.
"향아는 잘 있어요."
도일봉은 껄껄 웃으며 초무향을 소개시켜 주었다. 모두들 말로만
듣던 무서운 여인을 직접 대하고 그 쌀쌀하고 오만한 표정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일일이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도일봉이 말했다.
"자자, 인사는 그만 하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갑시다. 내 우선 부
모님을 뵙고 오지요."
모두들 오늘 저녁 한잔 하자며 자리를 떴다. 만천이 초무향을 이
끌고 접대를 하러 갔다. 도일봉은 삼랑과 함께 거처로 올랐다.
"누이. 무슨 일이 있었어?"
부모님을 뵙고 나온 도일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삼랑에게 물었
다. 부모님께서는 별일없이 돌아온 아들을 반가와 하시면서도 어쩐
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곤 하셨다. 그러다가는 끝내 말을 하지 않
으시고 다음에 의논하자며 도일봉을 내보냈다. 삼랑의 표정도 좋지
않아 그녀답지 않게 쌀쌀한 표정이었다.
"차차 의논 하시겠다니 차차 알게 되겠지요."
자세히 살피니 수척한 모습에 언잖은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도일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가 소식도 없이 이제야 돌아왔다고 화난거지? 그렇지?"
"누가 뭐라고 했나요? 일이 그렇게 되다보니 늦어진 것이겠지요.
모두들 기다리고 계실테니 어서 가보기나 하세요."
전에 없이 쌀쌀하게 구는것을 보니 무슨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모양이다. 그때 대원 한명이 다가와 모두 기다린다고 일렀다. 삼랑
은 자기방 문을 꽝!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허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군."
당장 들어가 무슨일인지 알아보고 삼랑을 달래야 하겠는데 모두들
기다린다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삼랑은 나중에 달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일층으로 내려와 보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무삼수가 자리를
안내하며 웃었다.
"안 보는 사이에 신수가 훤해 지셨소이다. 그동안 바람 피우느라
고 늦은건 아니겠지요?"
도일봉이 빙그래 웃었다.
"그렇게 보이나? 나보다는 자네가 더 훤한걸? 요즘 연애하나?"
"연애요? 하하하."
만천도 일어나 자리를 권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시느라 집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들어
나 보지요. 모두 걱정을 많이 했소이다."
도일봉은 다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헛웃움을 날리며 자리를 잡았
다.
"그럽시다.그렇다면 술이 있어야 할게요. 그동안 일이 정말 많았
다오."
모두들 술잔을 앞에 놓고 도일봉이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도일봉
은 술한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교영과 함께 사막을 고생하던 일, 초무향과의 만남, 군관에게 체
포되던 일, 고문, 탈출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興味津津)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 일은 본래 매우 긴박하고 아슬아슬 한 일인지라 모
두들 손에 땀을 쥐고 이야기 듣는일에 열중했다.
거기서 다시 운하의 배위에서 하대치 졸개들을 만나 태산의 은령
이라는 집단을 염탐한 일, 개봉에서 하대치를 염탐하던 일, 청운장
으로 가던중 만났던 마교의 인물들, 귀운장의 몰락과 소남천의 죽
움등을 줄줄이 풀어 놓았다.
도일봉은 피곤한줄도 모르고 술로 입술을 적혀가며 이야기 했고,
모두들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흥분하고,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분노하여 탁자를 힘껏 내리치기도 했다. 이야기에 빠
저들어 밤이 깊는줄도 모랐다.
그동안 산채에서는 주장이 없자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오직 합법
적인 사업체를 관장하고 키우는 데에만 신경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일봉은 나중에 술에 취해 누군가 방에까지 업어다 주었어도 몰랐
다.
삼랑은 다음닐이 되어서도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뭐라고 가타부
타 말을 안하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하러
갔는데, 동생 이봉이가 감옥에 갇쳐 있다는 것이다. 채체에 박혀
있기 따분했던지 자주 산을 내려가 성으로 나갔고, 그곳에서 술과
계질집에 싸움까지 하고 포졸에게 잡혀 감옥까지 갔었단다. 원강이
간신히 뇌물을 듬뿍 쓰고 빼내 주었는데도 녀석은 정신을 못차리고
또 성으로 나가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보다못한 모윤이 이봉이
를 잡아 지금은 산채의 창고에 가두어 두었단다.
도일봉은 정신 못차리는 동생에게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못된녀석! 정신 차리라고 몇일 더 놓아 둡시다."
집에 돌아온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이봉은 그대로 둔체 초무향을 보러갔다. 그녀
는 조용한걸 좋아하여 별체를 거처로 쓰게 했다. 초무향을 만나
겨우 몇마디 했는데 그만 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도일봉! 도일봉!"
누군가 울먹이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부르짖는 목소
리엔 반가움과 원망,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베어있었다. 뜻밖의 목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목에 매달려 울움을
터뜨리고 있을때야 누군지 알고 더욱 깜짝 놀랐다.
"밍밍! 밍밍이 아니가! 그대... 그대가 어째서 이곳에 있지?"
놀랍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밍밍이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진정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가끔 밍밍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굼하
긴 했으나 여주를 지나오면서도 그냥 지나왔다. 밍밍은 목에서 떨
어지지 않으려 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일봉. 보고 싶었어요! 이... 이 사람들 모두들 밍밍 싫어해요.
난 집에도 못가요!"
밍밍은 드디어 와!하고 울움을 터뜨리고 말았다. 도일봉은 어이가
없고 계면쩍어서 멀둥이 초무향만 바라보았다. 초무향은 쓴웃움을
지으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밍밍은 기다렸다는 듯 목에 매달려 마
구 입을 마추어 왔다. 도일봉은 멍 하니 그대로 있었다.
"밍밍. 여긴 어떻게 왔어?"
도일봉은 밍밍을 슬그머니 떼어놓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으나 그녀
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입맞춤을 한 후에야 목에서 떨어졌다.
"밍밍 집 나왔어. 아빠 엄마 밍밍 시집가라고 해. 밍밍 도일봉 찾
아왔는데 이 사람들 밍밍 싫어해요. 길 몰라 못 돌아가는데 길 안
가르쳐 줘요. 모두 나빠요. 와앙!"
도일봉은 난감하기만 했다. 이 여인은 대체 자신의 어디가 좋아서
이처럼 막무가네일까? 사랑할수도 미워할수도 없는 여인이었다. 하
지만 당장 밍밍을 달래지 않으면 않될 입장이다.
"그만 울어요. 도일봉 밍밍 좋아해요. 이제 모두 좋아하고 길도
가르쳐 줄거예요. 그러니 그만 울어요. 응."
"도일봉 정말 밍밍 좋아해요? 거짓말!"
"정말이야. 한푼어치도 거짓 없어요."
"도일봉 좋다면 밍밍 좋아요."
도일봉은 안스런 생각이 들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밍밍의 눈이며 코, 입슬이
참으로 예쁘기도 했다. 도일봉은 자신도 모르게 밍밍을 끌어 입을
맞추어 주었다. 밍밍은 보다 적극적이었다.
밍밍은 사막에서 도일봉을 잠깐 본 이후에 바얀과 함께 곧 중원으
로 돌아왔다. 낙양에서 잠시 도일봉과 교영이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그들은 돌아올 생각도 안했다. 혹 무슨일이 생긴건 아닐까 걱정 하
면서도 마냥 낙양에만 있을 순 없었다. 밍밍은 곧 곧 집으로 돌아
갔다. 그런데 집에는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와 오빠들
이 나서 당장 시집을 가라고 난리였던 것이다. 하긴, 해가 바뀌어
밍밍의 나이 벌써 스물셋이었다. 그러니 부모로서는 당연한 걱정이
었다. 더욱이 요 몇년 딸이 밖으로만 나돌고 있으니 더욱 걱정인
것이다. 또한 소문을 들으니 딸이 한인과 만나고 있다지 않은가.
늦기전에 혼인을 서둘러야 했다.
밍밍으로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도일봉 없인 살 수 없
게 되버렸다. 누가 뭐라해도 도일봉 외엔 시집갈 사람이 없었다.
마음에 차지도 않을 것이다. 급기야 밍밍은 편지한장 달랑 남겨놓
고 집을 나오고 말았다. 갈곳이 있을리 없었다. 낙양에 들러 교영
을 찾았다. 교영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도일봉은 이미 국
사범으로 관아에 잡혔다는 소식이다. 밍밍은 교영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이 모든것이 교영때문에 일어난 일 같았다. 하지만 더 뭐
라고 할 것인가. 밍밍은 교영이 전해주는 도일봉의 물건들을 챙겼
다. 그리고 집에서 오빠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또 그곳에서 도망쳤
다. 예전처럼 또 황하변에 이르러 도일봉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후 밍밍은 보자기에 씌워져 납치되고 말았다. 왕안수 등이
그녀를 납치했던 것이다. 안그래도 관에서 도일봉을 찾는등 난리인
데 그녀가 떠들고 다니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밍밍은 곧 자신이 납
치되어 온 곳이 도일봉의 집임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반갑고 기
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도일봉은 집에 없었고, 모두들 자신이 몽고
인이라고 수군거리며 상대도 하지 않았다. 더우기 삼랑은 몽고인을
원수로 보는지라 더욱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기다려도 도일봉은
오지 않았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밍밍은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누구 한사람 대꾸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도일봉이 원망스럽
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어서 도일봉이 돌아오기만 바랬다. 나오느
니 한숨과 눈물 뿐이었다. 그렇게 몇개월을 보내온 것이다.
도일봉은 밍밍의 말을 들으며 더욱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밍밍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도일봉을 놔주지 않
았다. 이리저리 입맞추고 이젠 아주 대담하게도 도일봉의 옷을 풀
려고까지 했다.
깜짝 놀란 도일봉은 밍밍의 손길을 차단했다. 밍밍은 민감한 반응
을 보이며 도일봉을 빤히 처다보았다.
"도일봉 나빠. 밍밍 안 좋아 해. 도일봉 말 뿐이야! 앙!"
도일봉은 난감하기만 했다. 부모님과 삼랑이 이상한 표정으로 자
신을 바라보던 것이 모두 이 깜찍한 밍밍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밍밍을 달래지 않으면 밍밍은 더 큰 일을 저
지르고 말 것이다.
"정말이라니까. 도일봉 밍밍 좋아해요. 밍밍 예뻐요. 하지만 여긴
밖이란 말이야. 또 우리에겐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밍밍도 알
지?"
"밍밍 그런거 몰라요. 도일봉만 사랑해요."
"어이구, 머리야!"
도일봉은 정말 어찌해야 할 지를 몰랐다. 이건 정말 돌아오지 않
으니만 못한 일이다. 이 여인을 어찌한단 말인가?
"알았어 알았다고. 도일봉 밍밍 좋아해요."
"밍밍도 좋아요."
밍밍은 다시 입을 맞춰왔다. 도일봉은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밍밍은 삼랑
보다 다소곳하거나 배운게 많지도 않거니와 교영처럼 뛰어나게 아
름답지도 못ㅎ다. 하지만 이들 세 여인중 지금 누가 가장 행복한
가? 삼랑은 수줍은 성격과 남의 부인이었다는 자격지심(自激之心)
때문에 속으로 도일봉을 원하면서도 말한마디 하지 못한다. 교영은
도일봉과 바얀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
면 오히려 자신의 사랑을 찾아 모든것을 뺑게치고 달려온 밍밍이
오히려 사랑을 알거니와 진정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인이 아닐까?
도일봉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밍밍은 도일봉의 팔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도망치기라도 할것
같아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도일봉은 살살 달래며 거처로
돌아왔다.
거처앞에 이르고 보니 삼랑이 슬픈 듯 화난 듯 두 사람을 지켜보
고 있었다. 밍밍은 삼랑을 약올리려고 혀를 쏙 내밀어 주었다. 삼
랑은 크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화난 표정을 지으며 몸을 홱 돌려 안
으로 들어가 버렸다.
"삼랑!"
도일봉이 달려 가려는데 밍밍이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가지 말아요. 밍밍하고 있어요."
"아이구, 머리야!"
도일봉은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또 도망처 버리고
싶었다. 정말 머리가 아프다.
"삼랑이 화가 단단이 났잖아. 어서 가봐야지.
"싫어요. 가지말아요. 삼랑 도일봉 부인 아니예요. 그런데도 삼랑
은 모두에게 도일봉 부인처럼 행동해요. 밍밍과 함께 있어요."
"부인이 아니라고? 음. 그 말이 맞아. 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삼랑
을 책임지겠다고 했는걸? 향아 아버지가 되기로 약속을 했단 말이
야. 밍밍 만나기 훨씬 전 일인걸?"
"싫어요 싫어. 도일봉 밍밍하고만 있어요!"
허리에 매달려 도리질만 해댄다. 도일봉은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
어 벌컥 화를 내려다가 억지로 눌러 참았다. 그리고는 최대한 부드
럽게 입을 열었다.
"밍밍이 내가 싫다고 가버리지 않는 한 우린 함께 살아야 되잖아?
삼랑은 어찌되었든 나의 부인이야. 헌데 밍밍이 나를 잡고 놓아주
지 않으면 삼랑은 분명 크게 화를 내고 우리둘을 괴롭히고 말거야.
우리둘이 만나지도 못하게 할걸?"
밍밍은 어쩐지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삼랑은 이미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고, 또 이곳 사람들은 모두 삼랑
과 짝짜꿍이 되어 있으니 어쩌면 도일봉의 말대로 될지도 모른다.
생각을 굴리던 밍밍은 또 입맞춤을 해대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건
말건 상관없다는 행동이었다.
"밍밍 도일봉이 다른 여자와 있는거 싫어요. 가지말아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으나 다소 누구러진 목소리였다. 도일봉은
크게 안심을 했다.
"이제 매일 함께 있을텐데 뭘. 내일은 함께 말을 타자고. 어때?"
"정말?"
"그럼. 정말이고 말고."
"밍밍 도일봉만 사랑해요."
"도일봉도 밍밍 사랑해요."
도일봉은 밍밍을 간신히 달래어 거처까지 대려다 주었다. 밍밍은
도일봉이 나가려 하자 급히 달려들어 앞섭을 헤쳐보았다. 목걸이는
그대로 있었다. 밍밍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
면 도일봉은 또 한바탕 곤욕을 치루어야 했을 것이다.
도일봉은 밍밍을 달래고 장군각으로 돌아왔다. 오면서 가만히 생
각해 보니 자신은 어째서 그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내 이 목걸
이를 다시 찾으려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
왔다.
장군각에 돌아오니 삼랑과 하란이 함께 있었다. 삼랑은 여전히 화
가 나서 본체도 안했고, 하란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녀가 어째서 이처럼 기분이 좋은고 하니 바로 임신을 했기 때문이
다. 그동안 그렇게도 삼랑과 향아를 부러워 하더니 드디어 소원을
이룬 것이다. 도일봉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전해듣고 만천과 하란
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하란은 도일봉이 들어오자 자리를 비켜주며 한마디 했다.
"동생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지 말아요."
도일봉은 그저 쓴웃움을 지을 뿐이었다.
삼랑은 이제 세살하고 반년이 지난 향아를 안고 공연히 딴짓을 하
고 있었다. 도일봉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었다. 향아가 도일봉을 보며 크고 카만 눈
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살피고 있었다. 낮설기도 하고 많이 보았
던 얼굴 같기도 해서 머뭇머뭇 경계를 했다. 도일봉은 그런 향아가
귀여워 가까이 다가 가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누이. 고생을 많이 했지?"
삼랑이 향아를 추수리며 샐쭉 입을 열었다.
"제가 무슨 고생을 했겠어요?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었어요."
"난 그.., 밍밍 때문에 화난거 나도 알아. 난 그녀가 올줄 몰랐
어."
"오고 안 오고가 무슨 문제겠어요?"
"난... 미안해 누이. 할 말이 없어."
"제게 미안할 것 없어요. 제가 무슨 권리로 오라버니 일에 나서고
말고 하겠어요?"
"누이. 그런말은 하지마. 누이가 마음 아파 하고 있다는 것 나도
알아. 하지만 서로 모진 말을 해서 더 마음 상하지는 말자고. 내
이미 말했듯이 누이를 남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 향아도 아버지
가 필요하다고."
"싫어요. 그런말 하지 말아요. 누가 동정을 바란데요!"
"그런말 그만좀 하라고. 난 진심이야. 틀린말이 아니라고. 사막으
로 가기전부터 이미 마음을 정하고 있었던 일이야. 누이가 정 못
믿겠다면 다른건 다 집어치우고 우리 둘만 살도록 하지. 밍밍 그녀
가 날 찾아 예까지 오긴 했지만 내 그녀에게 정말로 못할짓은 하지
않았어. 마음을 굳게 먹으면 돌려보낼수도 있어. 다 잊을수도 있
어. 난 진심이라고. 누이가 못믿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
야."
"나는..."
"더 말하지 맙시다. 삼랑은 이제부터 이 도일봉의 사람이오."
도일봉은 삼랑의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보고 헤헤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간지럼을 태웠다. 삼랑이 깜짝 놀라 몸을 틀었지만
도일봉은 더욱 힘껏 그녀를 안았다.
"이러지 말아요... 못본 사이에 음흉한 것만 배웠군요?"
"헤헤 뭘..."
"나는...나는 오라버니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무척 걱정을 했어
요.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뻐요."
"고마워, 누이. 나도 그동안 누이가 혹 마음고생을 해서 진짜 병
이 났으면 어쩌나 했다오."
삼랑은 참았던 눈물을 끝내 쏟고야 말았다. 그동안 정말 마음고생
을 많이 했었다. 밍밍이 찾아왔을 때는 정말 죽고만 싶었다. 그동
안 얼마나 눈물을 참았는지 몰랐다. 얼마나 원망하고 얼마나 그리
워 했는지 몰랐다.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놓고야 말
았다. 엄마가 울자 향아도 따라 울었다. 도일봉은 작은 두 모녀를
토닥여주며 달랬다.
삼랑은 눈물을 멈추고 향아를 달래 요람에 뉘었다. 도일봉이 삼랑
을 안으려 하자 그녀는 몸을 빼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서... 무슨 말씀 안하셔요?"
"말? 무슨 말? 글세... 뭐라고 하시려던 것도 같은데... 누이가
알고있어?"
삼랑이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먼저 부모님을 뵙도록 해요. 좋은 일이니까요."
도일봉은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좋은일? 무슨 일인데 그래? 알면 어서 말해봐요 궁굼해 죽겠네."
"제가 나설일이 아니예요. 어서 가 보기나 하세요."
어색하고 슬픈 표정을 보니 이 일 또한 예삿일이 아닌 모양이다.
"내게 아무리 좋은일이 있더라도 삼랑이 싫으면 하지 않겠어. 도
일봉은 껄껄 웃으며 번쩍 삼랑을 안아들고 침상으로 향했다. 삼랑
은 크게 놀라 입을 열고 말았다.
"그대... 그대의 혼인(婚姻) 문제예요."
삼랑은 끝내 입을 열고 말았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일봉이 눈을 크게 떳다.
"그래요! 그럼 부모님께서도 이미 우리 사이를 알고 있단 말인가?
허 거참."
"그런게 아니예요."
"아니라니? 그럼 뭔데? 설마 밍밍은 아니겠지?"
"누가 그녀라고 했나요. 매파가 다녀갔어요. 그 청응방인가 하는
곳이예요.사소추라는 소저..."
"사소추!"
도일봉은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녀 집안에서 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매파까지 보내왔단 말인가. 정말 머리가 아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사실 매파(媒婆)가 다녀간지는 꽤 오래 되었다.
사막에서 돌아온 사소추(査少秋)는 도일봉이 몽고 여인들과 한통
속이 되어서 히히덕 거리는 꼴을 보고 크게 화가 나기도 하고, 질
투심이 복받쳐 올라왔다. 아직 도일봉을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도일봉이 몽고계집들과 어울리는 꼴은 차마 보기 힘들
었다. 오기가치밀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친에
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말았다. 사소추의 부친 사방주는 물론 여직
결혼할 생각도 하지않던 딸의 입에서 스스로 시집가겠다고 나서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도일봉이 다소 건달같기도 하고 집안도 그
리 좋은것은 아니었으나 요즘들어 제법 일도 잘하고 사람들 입에
칭찬도 오르내리는지라 그만하면 되었다고 허락했던 것이다. 그리
고 곧 매파를 보냈던 것이다. 사막에서 돌아온 후 한달쯤 후이니
이미 네달은 지난 일이었다.
도일봉의 양친이 이와같은 사실을 아직껏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밍밍과 삼랑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삼랑은 그동안 밍밍과 사
소추 사이에서 더욱 마음 고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입장
은 그야말로 사고무친(四顧無親)에 남의 딸까지 있는 몸이니, 밍밍
처럼 막무가네로 나설 수도 없고 사소추처럼 정식으로 매파를 보낼
입장은 더욱 못됐던 것이다. 안절부절 애만 타고 서러울 뿐이었다.
도일봉은 머리가 아파 욕을 하고 말았다.
"제기랄! 그 여자는 어째서 또 나서는 것이지!"
도일봉은 삼랑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신경쓰지 말아, 누이. 그 여자는 좋아하지도 않아. 얼마나 사납
다고. 난 이제 누이만 좋아할까봐."
도일봉은 삼랑을 끌어안고 히히덕 거리며 침상에 뉘이고 옷을 벗
기 시작했다. 삼랑은 크게 두렵고 부끄러워 어쩔줄을 몰랐다. 이렇
게 되기를 그토록 바라고 있었지만 왠지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기
도 하고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불행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도일봉을 끌어안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이 한방울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향아도 엄마를 돕느
라고 잠에 빠저 새근거렸다.
유월(六月)의 하늘은 뜨거우면서도 맑기만 하다. 남쪽에서 불어오
는 더운 바람은 무엇이든 당장에 익혀버리기라도 할 듯 뜨겁게 불
어오고 태양은 그 바람과 손잡고 더욱 기승을 부렸다.
장군부는 오래간만에 전원이 모여 커다란 잔치를 벌였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막에 가서 대단한 보물을 얻기는 했
으나 백호각의 조이강을 비롯하여 많은 대원들을 잃었다. 부족한
인원은 만천의 차출로 곧 충당되었고, 장군부는 더욱 발전해 나갈
기틀을 잡게 되었다.
이번 잔치는 먼저 간 대원들의 혼백(魂魄)을 위로하고 남은 대원
들의 친목(親睦)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 된 것이다. 이것으로 장군
부는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었다.
잔치가 끝나고 시간이 나서야 도일봉은 창고에 갇쳐있는 말썽장이
동생 이봉이를 꺼내 주었다. 이봉이 녀석은 자기가 이곳 대장의 아
우인데도 이렇듯 괄시를 한다고 형 앞에서 난리를 쳤다. 도일봉은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이 입을 열자 이봉
이는 곧 고분고분해 졌다.
"사람은 참으로 가지각색이다. ㅊ은 사람, 나쁜 사람, 유식한 사
람, 무식한 사람, 뛰어난 사람, 못난 사람.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
의 분수를 지키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편이다. 그러나 간혹
정말 못난 사람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못난 사람은 갑자기
졸부가 되어서는 그 부를 어디다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허둥지둥
방탕하게 놀아나는 자이다. 지금 이봉이 네녀석이 바로 그 꼴이 아
니냐? 이녀석아. 이곳은 권세부리는 대갓집 나부랭이가 아니란 말
이다. 여긴 바로 도적소굴이야. 칼끝에 목숨을 건 삶들이 모여있는
곳이란 말이야. 그들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단 말이다. 의리와 위아래는 그 다음이야. 내가 아무리 강
하다해도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생기면 주인은 바뀔 수 있는 곳이
야. 그럴진데 네가 내 동생이라고 해서 이들이 눈썹하나 까닥할 줄
알았더냐? 어림도 없는 소리다. 힘이 있고 실력이 있어야 인정받는
곳이 바로 이곳이란 말이다. 좋아. 이 형이 그간 네게 소홀하게 대
했다는 것은 인정하마. 올 한해만 참고 무공을 배우고 실력을 쌓도
록 해라. 그러면 내년쯤 해서 네 앞으로 기업을 마련해 주겠다. 그
후론 더 도움은 될 수 없어. 그때 쯤해서 장가도 가거라. 도대체
네 녀석은 누굴 닮아서 그토록 난봉꾼 기질을 휘두르느냔 말이다.
줄도 작작 마시고. 알겠어?"
이봉이가 아무리 난봉꾼이고 보이는게 없어도 형 앞 에서는 언제
나 기가 죽어 고분고분 하기만 하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잘밨어요
즐독입니다
잘보았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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