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가까이 있는 천마산에 너무 소홀했다. 스스로 '천마산 지기'라고 부르며 천마산을 오르내린 게 무수히 많았지만, 산행 후기는 2021년 11월이 마지막이었다. 아무튼 다른 산행 후기를 살펴보니까, 지난해에 천마산을 외면한 채 오른 산이 참 많았다. 사패산, 도봉산, 춘천 검봉산, 홍천 팔봉산, 북한산, 포천 명성산, 설악산, 관악산, 선자령, 가평 호명산, 아차산, 용마산 등등.
집 뒷산도 천마산 자락이라서 아예 찾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떤 때는 호평터널 위 약수터를 지나 화개선원까지 갔다가 평내 쪽으로 내려오기도 하였고, 된봉까지 올랐다가 사릉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견성암에 주차한 뒤 견성암 약수터까지 오르내리기도 했고, 수진사 입구에서 천마의 집까지는 여러 차례 갔다. 지난 가을에는 낙엽송을 만나러 천마의 집을 지나 돌핀샘 쪽으로 한참을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했다.
오늘도 산정까지 오르진 않았다. 천마산 산길 중에서 돌핀샘 가는 길이나 오남호수 쪽 팔현리 길을 좋아한다. 비록 산행객은 뜸하지만, 굳이 매력적인 두 곳을 더 꼽자면, 관음봉에서 오남리로 가는 서어나무와 자작나무 군락지가 우선 떠오르고, 그 다음은 마치터널에서 천마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오늘 간 코스는 마치고개 코스.
집에서 마치고개까지 걸어갔더니 30분 넘게 걸렸다. 고개까지는 인도가 없는 차도라서 길가로 바짝 붙은 채로 길어서 등산로 입구에 이르렀다. 4월의 천마산은 어떨까?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 천마산은 봄야생화가 절정이다. 얼레지, 족도리풀, 점현호색, 큰개별꽃, 미치광이풀, 은방울꽃 들이 피려면, 아마도 2, 3주는 더 지나야겠지만, 무심했다는 생각에 천마산을 향했다.
가장 먼저 반긴 건 붓꽃이었다. 조금 더 오르니 산길 곳곳에 양지꽃, 제비꽃 들이 환하게 반겼다. 지난 여름 며느리밥풀꽃이 무더기로 피었던 곳은 아직 기척이 없다. 더러 진달래꽃, 산벚꽃, 조팝나무꽃 들이 지금까지 피어 있어서 연초록을 배경으로 알록달록, 한 폭의 풍경화 못지 않았다. 이미 꽃잎을 떨군 뒤 잎이 자란 진달래도 보였다. 누가 뭐래도 이 계절엔 새순이 가장 싱그럽다. 신갈나무, 서어나무, 개암나무, 단풍나무, 쪽동백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들에 여린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연초록도 예쁘지만, 잎맥이 채 자라기 전이라서 그런지 잎도 아기 속살같이 보드랍고 야들야들하다. 봄야생화가 피기 전, 4월의 천마산도 싱그럽고 넉넉하기만 하다. 본격적으로 천마산에 오르기 전에 네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스타힐 리조트로 가고, 왼쪽으로 난 길은 '임광 그대가'에서 오르는 임도와 만난다. 머리 위 천마산을 올려다보며, 2, 3주 안에 다시 올게, 라고 속엣말을 하고서 왼쪽으로 난 길로 내려섰다.
임도에는 산괴불주머니가 노란 마음을 내비치고 있었고, 바닥에는 지난 가을에 떨군 낙엽송 잎들이 잔뜩 깔린 채다. 이미 낙엽송도 새순이 돋아나 있었다. 엄마와 딸이 임도를 오르며 길가의 분홍색 꽃을 보면서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얘는 벚꽃과 다르지 않니? 개복숭아나무의 꽃이야. 아마도 딸은 커서 점이 찍힌 개복숭아꽃을 보면, 엄마 생각을 할 테지.
산길은 두어 시간 남짓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니까 세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고작 세 시간을 만났건만, 천마산은 내게 너무 많은 봄선물을 안겨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