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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송과 이난영의 두 딸(김숙자ㆍ김애자)과 이난영의 오빠 작곡가 이봉룡의 딸(이민자)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는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노래와 함께 춤까지 췄는데 미8군 무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김시스터즈는 1959년
아시아 걸그룹으론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다고 당시 기사가 전하고 있다. 참고로 최초 미국진출 한국 여가수는 옥두옥이다.
김시스터즈는 1967년 50만 달러를 세금으로 내 라스베이거스에서 유명한 고액 납세자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76달러였던 시절
김시스터즈가 스타더스트 호텔에서 받은 주급은 무려 1만 5,000달러였다고 한다.
이렇게 미국에서 활동하던 김시스터즈의 멤버 김애자는 1987년 4월 18일 라스베이가스 메모리얼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졌다.
2015년 김대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꿈 :Try To Remeber"이 2015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과
제12회 EBS다큐멘터리페스티발에서 상영되었는데 김시스터즈에 관한 다큐멘터리로서 이난영에 의해
김시스터즈가 만들어진 배경과 연습, 음악가 집안에 따른 천부적인 음악적인 감성,공연감, 미국 라스베가스 등을
건너가는 과정, 1년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된 과정을 김(이)민자의 이야기로 펼쳐지며 김숙자의 인터뷰 등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증언으로 김시스터즈의 활약상을 영화전반에 보여준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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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걸그룹은 1939년 결성된 저고리시스터로 알려지면서 저고리시스터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 걸그룹 역사는
73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저고리시스터는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이난영, '오빠는 풍각쟁이야'로 유명한 박향림,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민요가수 이화자로 구성된 4인조 걸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6·25전쟁의 와중에 미 8군 무대에 서다 1950년대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했던 3인조 여성 보컬
김시스터즈나 1960~80년대 지구 마을을 돌며 한국의 선율과 가락을 선사한 선명회 합창단은
한류(韓流)의 원조로 꼽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Try To Remember"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9월의 그 무렵을 기억해 보세요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인생의 걸음이 느리고 또 원만했던 무렵을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9월의 그 무렵을 기억해 보세요
When grass was green and grain was yellow
풀은 푸르고, 곡물이 황색으로 빛나고 있던 무렵을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9월의 그 무렵을 기억해 보세요
When you were a young and callow fellow
당신이 젊고 풋내기였던 그 시절을 기억해 보세요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가능하다면 기억해보세요
Then follow,follow
차례차례로,차례차례로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인생이 달콤하고 상냥했던 무렵을 기억해 보세요
That no one wept except the willow
버들 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어요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인생이 상냥했던 무렵을 기억해 보세요
That dreams were kept beside your pillow
꿈은 언제나 당신의 베개 옆에 있었어요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인생이 상냥했던 무렵을기억해 보세요
That love was an ember about to billow
사랑은 부풀어 올랐다가 꺼져버렸지요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가능하다면 기억해보세요
Then follow,follow 차례차례로,차례차례로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12월이 깊어지면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
Although you know the snow will follow
알고 있는 일 모두를, 내리는 눈이 상기시켜 주지요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12월이 깊어지면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
Without a hurt the heart is hollow
아픔도 없이 마음은 추억을 캐내어 보여 주지요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12월이 깊어지면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
The fire of September that made us mellow
9월에 타올랐던 불꽃이 우리를 달콤하고 상냥하게 해 주었어요
Deep in December, our hearts should remember
12월도 깊어지고 우리의 마음에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And follow,follow
첫댓글 김씨스터즈를 처음 보았을때
생각이 납니다.
여성이 악기를 멋지게 다루는
모습에 신이 나서 따라부르던
김치 깍~~~뚜 우기~~~~
맞아요 깍두기로도 많이 알려 졌지요..
감사 합니다.
공부 많이 하고 감니다.
저고리 씨스터즈
잼있내요..
소품 작은 천으로 일일이 기워서 하는것, 가방을
손수 만드시면서 우리방의 음악들이 아마 어울릴 듯합니다,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여러곡들을 불렀는데
이곡도 듣기 좋습니다
세월따라 오랫 동안 흘러온 노래음색이 좀 직직하지요.?
감사합니다.
미8군에서 노래를 불러서인지
가요보다
팝을 더 잘 부르는군요
김시스터즈 이후로 "코리아나" 가
활약했나요?
김시스터즈는 이난영의 딸인걸로 압니다.
80년대초까지 활동을 하엿고 80년중반 부터 코리아나 맴버가 활동했으니
시대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리아나 맴버가 작년 12월에 큰행사에 참석한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씨스터즈'의 원조입니다
그후로 '씨스터즈' 붐이 일어 '이씨스터즈' 정 씨스터즈' '유리 씨스터즈' '아리랑 씨스터즈' 등등이 계보를 이었지요
@이화백 정 ,이 , 유리~~
많은것을 알게 해주시네요
"펄"-
저는 이때부터 sisters를 아는거 같습니다
친자매인 펄씨스터즈판을
오빠가 사왔거든요
총무님이 이제 날개를 다셨네유~^ㅎ
김씨스터즈를 따라 남동생 3명도 '김 브러더스'라는 이름으로 미국 진출을 했지요
시민화관(세종문화회관)에서 환송공연때 관람했는데 신중현의 '에드포'가 찬조출연 하더군요~
어느새 50년도 더 지나간 일...ㅎ
신중현의 "에드포"가 무엇인가요?
신중현과 엽전들
@율리아나 신중현의 '에드4'는 초창기 데뷔당시 그룹 이름이지요~ '엽전들'로 바꾼건 한참후인 전성기때 이름^^
ㅋㅋㅋ 잘 부탁합니다..*^^*
패티 페이지 노래로 주로 들었는데
김씨스터의 노래도 화음이 아주 멋지군요~
재주꾼들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신입(저 16.11월 가입) 초짜들 반겨주시는 장항댁님
자주 들러 주십시요.반갑 습니다. ^^*
67년도.,76년도에 미국 시간당 기본 임금이 $2.35 이였으니...
비교해봐도 그당시에 주급이 1만5천불..와우.정말 대단한겁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67년 그당시 환율로 봐도 한화로 월 5,400만원을 받은겁니다.
워낙 가난해 83년(28세) 제가 신입으로 9년동안 돈벌어 결혼하려
동아건설 리비아공사 갈려니 월 1천백불,즉 90만원 준다 했습니다.
경쟁이 10 대1 정도? 어려웠던시절 생각 납니다.
엄청난 수입 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