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에 슬픔을 배우러 왔어
박연
주인공은 위기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악의 편이 방해하지만
결국 선한 사람이 웃으며 살아남는 이야기
왜 항상
착한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해요?
도영이가 물었다 매일 코딱지나 파먹는 줄 알았지 이런 질문을 할 줄이야
나는 최대한 뜸을 들였다
그게 궁금했구나…
그러니까 사실 각각의 세계가 있어서
거북이는 거북이의 세계를
나무는 나무의 세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그중 언제나 착한 거북이가 거북이 세계를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고 음…
선생님 왜 개소리해요?
도영아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아이가 자리로 돌아간 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원장님이 수북하게 쌓아주고 간 노트에 같은 말을 반복해 적으면서
우리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힘을 합친다면 이야기 속의 보미와 제니처럼
큰 뜻을 이룰 수 있어요. 학생은 평화의 편에서 해내고 싶은 일이 있나요?
큰 뜻이 뭐냐
누구와 힘을 합쳐야 하나
평화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나의 평화는 침대 위에 웅크려 있다
배불리 먹고 누우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이게 천국이구나 생각하게 되는데
필시 평화가 내게 다가와 팔을 베고 눕기 때문이겠지
이토록 이기적인 천국
그런 천국도 쉽지는 않다
먹고살려면 집을 빌려야 하고
화폐를 구하려면 쉼 없이 일을 해야 하는구나
때로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로하다
미친 건 네가 아니야
미친 건 세계 쪽이야
친구에게 말할 때는 고양되었지만
사실 미친 건 우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인간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선택을 헤아리기 위해
스스로를 저 먼 곳으로 내던져 보기도 한다는 것
자꾸만 더 이해하고 싶어지는 순간과
단정하여 대답하고 싶어지는 순간은 함께 온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말에
요즘 젊은이들은 힘이 없어서요
대답한 뒤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 세계의 신이라면
귀에 대고 속삭여줄 텐데
너희가 이 슬픔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슬픔 대신 코딱지가 날아온다
— 《시산맥》 202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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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 / 1998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2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출처: 푸른 시의 방 원문보기 글쓴이: 강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