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玄)과 황홀(恍惚) (2)
1. 『도덕경』21장
[본문]
비어 있는 큰 덕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음은 오직 도를 즉시 따르기 때문이다. 이때의 도는 만물이 되어가지만, 오직 어슴푸레하고 오직 흐릿하다. 흐릿하고 어슴푸레함이여, 그 가운데 형상(形象)이 있다. 어슴푸레하고 흐릿함이여, 그 가운데 물질(物質)이 있다. 그윽하고 아득함이여, 그 가운데 정신(精神)이 있다.
그 정신은 참으로 변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그 가운데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옛날부터 오늘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으로써 만물인 존재자들을 구별해서 분간한다. 내가 어떻게 만물이 그러한 모양으로 있는 줄 알겠는가? 이 이름으로써 아는 것이다.
[도표]
핵심어 | 풀이 |
공덕(孔德) |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덕은 전체를 보는 도에 따름 |
황홀(恍惚) | 이때 도는 오직 어슴푸레하고 오직 흐릿(恍惚)함 |
구성요소 | 어슴푸레하고 흐릿(恍惚)함 속에는 세 가지가 섞여 있음 |
이들은 만물의 구성요소인 형상(形象), 물질(物質), 정신(精神)임 |
정신(情神) | 이 중에서 정신은 참으로 변하지 않으며 믿을 수 있음 |
정신은 만물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이름 붙일 수 있음 |
이름(名) | 만물이 각각의 모양으로 있음을 아는 것은 이름 때문임 |
[해설]
황홀은 어슴프레하고 흐릿하다. 부분은 형상(形象)이 있어서 또렷하지만, 우주 전체는 형상이 없어서 어슴프레하고 흐릿할 수밖에 없다. 형상이 있으려면 한계를 지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주전체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한계를 지을 수가 없다. 한계지을 수 없는 우주전체는 형상이 없다. 이렇게 형상없는 우주전체의 모습을 그려보는 이론을 우주론이라고 한다.
우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이 우주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宇宙)라는 한자어 단어는 집 우(宇)자 집 주(宙)자이다. 그런데 이 집은 너무 커서 우주전체의 형상은 없지만, 우주 속에는 세 가지 종류의 구성요소는 있다. 그것은 물질과 정신과 형상이다. 물론 이것들은 제각각 우주 안에 있는 부분들이다. 이때의 형상은 만물을 구분할 수 있는 이름으로 표현된다.
2. 우주론, 존재론, 형이상학
우주론 : 시공간적으로 한계를 지을 수 없는 우주전체에 대한 이론
존재론 : 모든 존재자를 존재하게 하는 궁극적 존재에 대한 이론
형이상학 : 감각적 지각이나 이성적 추리로 증명할 수 없는 학문
우주론, 존재론, 형이상학은 모두 형상이 없어서 또렷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즉 어슴프레하고 흐릿할 수 밖에 없다. 이 영역이 우리들에게 인식되는 방식은 감각적 지각이나 이성적 추리가 아니다. 감각적 지각이나 이성적 추리는 차이를 통해 사물을 또렷하게 구별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이 영역은 경계지점을 넘어서 같음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인식된다.
이때의 경계지점을 넘은 같음을 현(玄)이라고 하며, 이 현에 대한 통찰을 황홀이라고 한다. 수학에는 위상학(位相學, topology)이 있다. 위상학은 ‘같음’을 확대한 학문이다. 위상학에서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같은 것으로 본다. 위상학은 변형을 인정한다. 굳어진 쇠줄이 아니라 유연한 고무줄로는 삼각형을 변형시켜 사각형으로 만들 수 있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같음의 폭이 넓어진다.
물리학에는 양자론(量子論, quantum theory)과 상대성이론이 있다. 양자론에서는 양립불가능한 이론으로 알려진 입자설과 파동설을 모두 인정한다.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 theory of relativity)에서는 흰 공간과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시간 등으로 시공간의 상대성을 인정한다. 굳어진 쇠줄처럼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절대 시공간인데, 상대성이론은 이것을 넘어 같음을 확대한다.
3. 일상에서의 황홀 체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학문의 세계에서는 양립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양쪽을 하나의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사고가 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같음을 확대하는 황홀 체험이 가능한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경계가 분명하면서 모순관계에 있는 양쪽을 하나의 같은 것으로 통찰하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 필자의 체험
◼ 지상과 천상의 세계가 하나가 됨 : 젊을 때 앞산을 자주 갔었다. 어느날 등산하면서 능선을 넘을 때 갑자기 눈 앞에 천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 생시와 꿈이 하나가 됨 : 학교건물의 4층 복도에서 운동장 쪽으로 보다가 학이 천천히 날다가 사라지는 장면을 보는 동안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깨고 난 후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 후에 이래서 학춤이 생겼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 철학자 칸트의 체험 (묘비에 적힌 글)
◼ 자연법칙(외부)과 도덕률(내부)이 하나가 됨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 시인 나태주의 체험
◼ 자연과 님과 내가 하나가 됨 : 황홀극치
황홀, 눈부심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함
좋아서 까무러칠 것 같음 어쨌든 좋아서 죽겠음
해 뜨는 것이 황홀이고 해 지는 것이 황홀이고
새 우는 것 꽃 피는 것 황홀이고 강물이 꼬리를 흔들며 바다에 이르는 것 황홀이다
그렇지, 무엇보다 바다 울렁임, 일파만파, 그곳의 노을,
빠져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황홀이다
아니다, 내 앞에 웃고 있는 네가 황홀, 황홀의 극치다
도대체 너는 어디서 온 거냐? 어떻게 온 거냐? 왜 온 거냐?
천 년 전 약속이나 이루려는 듯.
차시예고
19회(10.30) 김상환 (문학박사/시인) 현의 사유이미지와 회화(1) 20회(11.06) 김상환 (문학박사/시인) 현의 사유이미지와 회화(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