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NEY POITIER를 기억하시겠지요?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겸 감독입니다.
민권운동가로도 유명하고, 영국의 기사작위도 받은 인물입니다.
1927년 生인 그가 며칠 前 94세로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그의 어떤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그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탄 영화는 '들백합'(LILIES OF THE FIELD, 1963)이지만, 우리에겐 그에 앞서 토니 커티스와 주연한 '黑과 白'(THE DEFIANT ONES)으로 이미 刻印됐었습니다. 두 살 위의 토니 커티스는 2010년 85세에 사망했지요.
'들백합'은 자동차로 初行 길을 가다가 힘든 작업에 쩔쩔매던 老수녀님들에게 붙들려 꼼짝없이 일을 도와주게 되는 젊은이 役이었지요. 함께 힘든 일을 하면서 그들 사이에 애틋한 情이 싹튼다는 흐뭇한 사연을 그렸습니다.
'흑과 백'은 한 쇠사슬에 손목이 하나씩 묶인 채 탈옥한 두 흑백의 젊은이가 겪는 荊棘의 도망길입니다.
두 작품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뛰어난 작품이었지요.
를루가 직접 출연해 노래를 부른 'TO SIR WITH LOYE', 스펜서 트레이시-캐서린 헵번 등 巨物들과 출연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 그리고 '블랙보드 정글', '포기와 베스' 等도 유명합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 1967)에선 함께 주연한 로드 스타이거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는데, 포이티에가 수상한 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바하마 群島 출신의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면서부터 무척 힘든 세월을 보내며 成長했습니다.
인종적 신분 차이를 겪으며 이런저런 막노동판을 轉轉한 끝에 드디어 '아메리칸 니그로 시어터'로부터 입단 허가를 받습니다. 거기서 선보인 그의 뛰어난 재능은 브로드웨이를 거쳐 1950년대 初엔 할리우드로까지 이어집니다. 연기자로서의 확고한 名聲을 쌓은 후, 그는 감독직에 도전합니다. '업타운의 일요일', '폭소 감방' 等을 연출하며 評團으로부터 좋은 反應을 얻습니다.
1960년대에 한 아프리카界 흑인 청년이 시드니 포이티에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부유하고 유명한 뉴요커들의 삶 속으로 끼어든 적이 있었습니다. '햄턴'이라는 사나이에 의한 이 詐欺劇은 '존 구아레의 분리와 여섯 단계'라는 연극에 靈感을 제공했고, 윌 스미스 주연의 同名映畵(우리 제목은 '5번가의 폴 포이티' 1993)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기꾼에게 게리 시니즈, 멜라니 그리피스, 케빈 클라인 등 유명배우들이
巨額을 빌려주고 詐欺를 당한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도 傳해집니다.
시드니 포이티에 이후, 덴젤 워싱턴, 포레스트 휘태커, 제이미 폭스, 할 베리 等 흑인배우들이 아카데미 주연상을 거머쥐는 등 底力을 보이고 있지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뚱보 하녀 役 해티 맥다니엘을 시초로
모건 프리먼, 우피 골드버그, 비올라 데이비스 등은 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윌 스미스, 에디 머피, 웨슬리 스나입스, 로렌스 피시번, 돈 치들, , 대니 글로버, 제임스 얼 존스, 도로시 단드리지
等도 만만찮은 흑인배우들입니다.
시드니 포이티에는 오랜동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끝
202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