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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우는 과정
방언이란 주제가 실제로는 얼마나 넓고도 깊고 또 높은지 파악하기 시작하였습니까? 아직도 탐험해 볼 영토가 많이 있습니다! 당신이 성령님께서 당신을 통하여 기도하실 수 있도록 허락할 때 일어나게 되는 '세우는 과정'으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 당신의 영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린도전서 14장 4절은 우리가 얼마동안 기도하든지 방언으로 기도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움(edification)' 이란 단어는 거대하고 대단한 빌딩을 의미하는 '건축물(edifice)' 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실제로 당신의 영 안에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거할 수 있는 집을 짓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당신이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하나님의 작업, 즉 하나님의 구조물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목회자들이 방언에 관하여 설교를 할 경우,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당신의 영은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과 같이 당신의 영이 충전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당신의 영이 실제로 영적인 충전을 받아서 오감으로 실제로 느낄 수 있는 힘이나 전기 같은 기름부음을 당신이 받고 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이렇게 느낄 수 있는 힘이 '확' 나가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의 병을 고치고 귀신으로부터 풀어 놓고 구원을 받게 한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여기까지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기름부음이 어떤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기 전에 그는 그런 기름부음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세우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 관하여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방언 기도를 통해서 즉시 역사하기 시작하는 어떤 종류의 '즉각적인 능력(magical)' 충전을 받았다고 그들은 대개 생각합니다.
나도 이렇게 믿곤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습 그대로 기름을 부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육신적인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세움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기도실에서 몇 달 동안 기도한 뒤에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기 시작하셨을 때 얼마나 놀랐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내 평생에 두 번째 집회 중인데 성령님께서는 내게 회중 가운데에 한 여자를 불러내라고 하셨습니다. 내게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겁이 났습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부인은 몸에 이상이 있군요. 하나님께서 부인을 고쳐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녀의 양쪽 볼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서 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기도 중인데 이 부인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눈을 뜨기가 싫었습니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 있는데 내가 기도해주고 있던 그 여자는 내 손을 떠난 것입니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기도하고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졌을 때 나는 용기를 내서 눈을 떴습니다. 그 여자가 어디로 갔나하고 살펴보았더니 그 여자는 바닥에 넘어져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 주님, 이것 좀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충전을 받는 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제 발로 일어섰을 때 그녀는 나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성령 안에서 세움을 받는다는 것은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의 영을 충전시켜서 강력한 기름부음을 통해 내가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세움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너무나 많은 것들이 세움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 마귀는 그 비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세움 받기 위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마귀와 그의 계획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해 합니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우리가 방언기도 하는 동안 마귀에게 무엇인가를 명령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4:2). 나도 기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마귀가 알수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마귀가 우리보다 한 수 위에 있도록 하셨겠습니까? 만일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 비밀을 마귀는 알고 있고 나는 모른다면 마귀가 우리보다 우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마귀가 알아듣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세움 받기 위해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거룩한 '골방'에 들어가서 우리의 거듭난, 새로 창조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영이 하나님과 신적인 의사소통을 하도록 자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의사소통이며 거룩한 교통(communion)이기 때문에 마귀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면 나는 놀라서 정신을 잃고 방바닥에 넘어져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나와 직접 통화하기에는 너무나 바쁜 사람입니다.
반면에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서의 모든 믿는 자들의 삶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는 즉시 하나님 그분과 신적인 의사소통(divine communication)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그쪽의 '긴급 전화'의 수화기를 잡으시고 "로버슨, 넌 줄 알고 있단다. 그래 네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성령께서 그 지혜로 너를 대신하여 이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단다. 응답이 가고 있는 중인 것을 네가 알고 있기를 바란다. 마귀는 어떤 방해도 할 수 없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방언 기도를 증오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으므로 그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마귀는 이해할 수 없을까요? 구약 시대 때 지어진 성막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막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는 바깥뜰과 제사장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성소가 있고, 끝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단 한 번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제물의 피를 드리러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마귀가 휘장을 뚫고 지성소를 침투하려는 만용이 있었더라도 그는 결코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성소는 마귀의 영역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마귀는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막은 믿는 사람들에 대한 그림자이며 모형입니다. 믿는 자로서 나의 몸은 성령님께서 오셔서 내 안에 살고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나의 육체는 바깥뜰이며, 나의 혼은 성소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새로 창조된 영은 지성소의 모형입니다. 나의 대제사장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사탄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님께서 나의 지성소에서 이 초자연적인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고 이 곳은 사탄의 관할 구역 밖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의 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녀의 목숨은 매우 위태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을 향하여 최고의 속도로 차를 운전하면서 그는 "내 누이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그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라고 반복해서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녀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라고 고백할 때마다 무엇인가가 그의 감정을 너무나 크게 흔들어서 그의 전신을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흔들어댔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녀는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가 병원을 향하여 달리는 동안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그는 정신이 산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영분별의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영분별의 은사는 당신이 천사나 귀신과 같은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주자 그는 두 귀신을 볼 수 있었는데 한 귀신은 그의 왼쪽 어깨에 다른 귀신은 그의 오른쪽 어깨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녀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라고 고백할 때마다 한 귀신이 그의 귀에 대고 다른 쪽에 있는 귀신에게 "그녀는 죽을 것이다! 그녀는 죽을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그의 영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고백을 계속하거라.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해라." 그래서 그는 한 번 더 고백을 한 후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 후에 두 귀신 중 한 귀신이 그 사람의 머리 뒤통수 쪽으로 다른 편의 귀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무어라고 하는 것 같아?"
다른 귀신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르겠는데. 그런데 너도 나같이 그의 말이 불을 지피는 것 같으냐?"
"그럼" 다른 귀신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그를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리고 귀신들은 그를 떠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짐작하고 계셨겠지만 그 사람의 누이는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 당신의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 당신 스스로를 세우기
그러면 내가 나 자신을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방언 기도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렇게 중요하고 이렇게 능력 있는 은사가 우리 보통 생각에는 모든 은사들 중에서 가장 '바보스러워 보이는(foolish)'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유다서 20절과 21절을 살펴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며
But you, beloved, building yourselves up on your most holy faith, praying in the Holy Spirit, keep yourselves in the love of God, looking for the mercy of our Lord Jesus Christ unto eternal life.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따라 기뻐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듣고, 듣고 또 들어도 우리의 삶에 아무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그 말씀이 우리의 영에 심겨지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생산하는 믿음을 풀어 놓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온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넘치고 있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사도행전에서 발견되는 기적적인 결과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빠진 어떤 요소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은 어떤 사역자가 아무리 기름부음이 있고 말씀이 충만하다 하더라도 그는 성령님께서 그 자신이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경험을 통해 배운 것만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르침도 당신이 그것을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당신 스스로 그 말씀이 당신의 영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며 그런 다음 성령께서 당신을 가르치시도록 허락해야만 합니다(You must personally get the Word into your spirit and then let the Holy Spirit teach you).
이것이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함으로써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워야 한다고 유다가 말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꺼이 자유롭게 우리의 몸을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드리고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우리에게 계시하기 시작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인내하는 시간을 들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데 필요한 믿음을 우리의 심령 안에 풀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갈망
거듭난 이후로 늘 나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열망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능력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였습니다.
'주님, 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갈망하지 않지요? 내가 그 사람들과 다른 것은 기적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나의 삶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 때문인가요?' 나는 이렇게 궁금해 하곤 했습니다.
내가 처음 거듭났을 때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나 갈망했던지 내가 조금이라도 더 능력 가운데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은 것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내 속에 있는 이 갈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다는 약속은 무엇이든지 실천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물었습니다.
"자네가 치장하고 있는 보석 때문이야."
"아니 그럼 내가 이 보석을 치워버린다면 내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바로 그거야"
나는 보석을 치워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보석을 걸고 있었을 때에는 보석을 차고 있는 무능력한 사람이었고 보석을 치운 뒤에는 보석을 걸고 있지 않은 무능력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보석을 차고 안차고는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오레곤 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다른 그룹의 믿는 사람들과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자네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고 있지 못한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지요?"
"자네 어떤 식으로 침례를 받았나?"
"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 속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것 보게. 당연하지!" 그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자네는 세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네!" (이 특별한 그룹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그 이름은 예수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침례를 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듯이 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가운데 그 시점에서 나는 내 삶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능력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침례를 받아야 된다고? 어디서 받는지 장소만 알려 주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던 곳은 해발 4,800 피트나 되는 오레곤 주였고 때는 한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었고 땅은 얼어 있었고 두 개의 호수는 모두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호수 위쪽에 모닥불을 펴 놓고 난 다음 우리 그룹은 두 호수 사이에 벌목한 통나무를 나르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얼어붙는 물 속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설교자와 내가 제일 먼저 이 얼음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너무나 무지해서 따뜻한 목욕탕 물에서 침례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얼마나 차가운 물이었는지 나의 다리가 시퍼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얼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물 밑으로 들어가서 다시 침례를 받음으로써 내 삶에 더 많은 능력을 갖게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설교자가 물었습니다. "준비되었습니까?"
이를 덜덜 떨면서 "네, 침례 해 주십시오" 라고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얼음물에 집어넣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 후 몇 달 안에 나는 내가 그 얼어붙는 물에 잠겼다 나오기 전에는 세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능력 없는 오순절파 소년이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 설교자가 나를 그 얼음물 속에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준 후에도 나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 받은 능력 없는 오순절파 소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 놓는 결정적인 열쇠에 대해서 배운 날, 즉 내가 '하나의 영적인 법칙을 발견했던' 그 날이 올 때까지 아무 차이도 없었습니다.
"오, 로버슨 형제. 자네가 내게 어떻게 능력 가운데 살 수 있는지 가르쳐 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 이름이 수지 월페이퍼든지 조 퍼블릭이든지 관계없습니다. 이 열쇠는 특별히 선택된 소수만을 위해 예비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이 책을 읽으면 예수님께서 당신이 무엇으로부터 구원 받았다고 말씀하셨던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빠져나와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삶 가운데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들 안으로 어떻게 걸어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