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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조와 현대시조
이봉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고시조는 창(唱)을 곁들인 문학과 음악의 종합예술이지만, 현대시조는 창이 탈락된 순수 문학이다. 현대시조는 시조창(時調唱)에 얹어 노래하기보다 시로 낭송(朗誦)한다. 간혹 노래가사로 쓰일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시조창이 아닌 현대 곡(曲)에 얹어 노래한다(예: ‘성불사의 밤’, ‘가고파’ 등).
문학 장르에서 시는 리듬(rhythm韻律)이 규칙적으로 고정된 정형시(定型詩)와 그렇지 아니한 자유시(自由詩)로 나누어지며 현대시조는 정형시에 속한다. 정형은 발음의 장단에 따른 음보정형과 글자 수에 따른 자수정형(음수정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음보정형은 고시조에 바탕을 두고 여러 학설로 분화되어 있으나 자수정형은 하나의 글자 수 집단 3434 344(3)4 3543으로 고정되어 있다. 자유시가 없던 시대의 시조는 음보정형으로도 족하나 오늘날의 시조는 음보정형을 넘어 자수정형까지 따라야 한다. 이 정형론은 평시조에 국한되고 자유시적인 요소가 혼재된 엇시조와 사설시조는 해당되지 아니한다.
한편 현대 한국시를 19C말 서양에서 도입된 자유시와 전통적인 시조로 2분하는 논자도 있으나, 이 분류는 시의 본질인 리듬(운율)의 규칙성 여부에 따르지 않고 역사성 또는 지역성에 따라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한,중,일 동양 3국에서는 정형시가 아니면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시가 도입되기 전, 즉 구한말 개화기 이전에는 중국 한시와 마찬가지로 조선에는 정형시뿐이었다. 이 고시조는 조선 중기까지 양반들의 전유물인 평시조형태로 존재하였으나 그 후 서민들의 욕구가 분출되면서 자유시에 가까운 엇시조나 사설시조가 등장하여 정형의 개념이 느슨해지다가 마침내 정형이 없는 서양의 자유시까지 도입되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고시조는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를 옮겨 현대시조로 다시 태어나 정형을 굳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현대시조를 시조창에 얹어 노래하는 것은 볼 수 없고, 똑 소리 나는 정형시가 아니면 굳이 시조를 찾을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혹자는 아직까지 고전적인 시조개념을 버리지 못하고 고시조에 있는 것이면 모두 현대시조에 원용할 수 있다고 한다. ‘고시조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면서 ‘시조는 정형이 필요 없다’고까지 한다. 또 어떤 이는 ‘현대시조는 시조문학이다. 정형시(고시조)가 아니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의를 하고 있다. 현대시조의 정형을 찾아 정격으로 써기 어려우니까 편법으로 형과 율을 깨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주장으로 들린다.
이하 최근 몇 달 동안의 시조 마당을 둘러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2012.10월호
이 달 호에 실린 시조 7편 중 정격시조는 한 편도 없다. [금주(禁酒)](박시교), [세월이 지나간 자리](홍병선), [벽화](조흥원) 등 3편은 음보정형은 지켰으나 자수정형에 못 미치지 고, [8월 방문](민병덕), [막사발](이용상) 등 2편은 음보정형마저 못 지킨 파형시조이다. [어느 눈먼 이의 노래.1](정형석)는 깨진 음보가 난무하는 5수 붙여 쓰기 1연 15행의 자유시이다. [은은한 녹차밭](진정채)은 더욱 가관이다.
(A)
은은한 녹차밭
진정채
차나무 사이 사이
수줍은 듯
고개숙인 고사리
앙증스럽게 앉아 있네 7479
아가 볼처럼
부드러운 차밭에
촉촉한 흔적
뿌리고 간 물안개 5757
가끔씩
뒤돌아보며
미소 짓고 사라지네. 3544
(B)
국화차를 마시며
임애월
한때 태양을 품었던 열망의 꽃잎들이
뜨거운 찻물 속에서 제 몸을 열었다
적당한 향기로 박제된 유년의 그림자
말라붙은 시간 속의 기억들 풀려 나온다
화려하지 않은 언어들이 고여 든 이파리
비릿한 초경(初經)의 향내 찻잔을 넘는다
나그네새들 지나는 계절의 길목마다
삭지 못한 심지 돋워 등불은 켜지고
창 밖을 떠돌던 바람도 날개를 접는 밤
누군가 두고 떠난 빛바랜 노래 한 소절
늦가을 새벽 그믐달빛처럼 고요해져
알맞은 온도의 그리움, 식도를 넘어간다
위 (B)는 자유시라고 하며 시 방(房)에 앉아있지만, 리듬, 모양, 어느 모로 보나 시조에 가까운 작품이며 내용 또한 좋다.
그러나 (A)는 시조의 자격으로 시조 방에 들어와 있지만, 산문 수준에 가까운 글자 수와 자유시(B)보다 못한 시조 리듬을 펴 놓고 시조잔치에 엇박자를 치고 있다. 도대체 어느 책에서 본 시조형인지 물어보고 싶다.
(2) 2012.11월호
시조 9편 중 [무대 아라리](조창환) 1편만 자수정형의 정격시조이다.
[가는 길에](許 壹), [아침 이슬에 피는 꿈](류성화), [터미널 흡연실](최용철), [자카란다(Jacaranda)꽃](조석연), [멎은 1초](천강래) 등 5편은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나 음보정형의 작품이고, [고독의 분해](한분순)는 음보정형에는 맞으나 이유 없이 2수를 붙여 놓거나 한 음보를 2행으로 갈라놓아 시조의 모양을 깬 파형시조이다.
[달맞이꽃](이수진)은 음보정형에도 못 미치는 파형시조이며, [색소폰 부는 남자](박순화)는 아예 시조정형을 모르고 썬 작품이다.
색소폰 부는 남자
박순화
잘숙한 허리를 감고
키스하며 색소폰 부는 남자여 3548
보채니 얼러 주고
자지러지니 달래 주누나
3455
제 멋에
취해 울어라
쓰러지도록 애무하리니. 3555
(3) 2012.12월호
시조 7편이 실렸으나 정격시조는 고사하고 파형음보, 수의 구별 없애기, 한 음보 빼먹기, 수마다 번호 붙이고 사족 달기 등이 난무하고 있다.
[춘래(春來)야](이충섭), [숲 속을 거닐며](김용진), [각연사 익은 오디](서석조) 등 3편은 수의 구별이 없고 깨진 음보도 많다. [가을 쑥뜸](공영해)과 [연꽃](이병준)은 각 수가 분명한 연시조이나 깨진 음보가 많고, [중환자실](이수문)은 둘째 수와 셋째 수가 1음보씩 빠진 11음보로 되어 있다.
[중환자실]둘째 수 중장: 드러릉드르릉/ 잠도 아닌/ 잠을 자네/ 644
셋째 수 초장: “이제는/ 의식이/ 없을 것입니다./” 336
금낭화 판타지아
윤금초
#1
봄날 어느 꿈결 같은 곤연(鯤淵) 연못 큰 돌 밑에
금빛 개구리 형용을 한 어린 금와(金蛙)* 나타났지
금낭화 흐드러진 거기, 꽃을 입고 납시었지.
#2
어깨 겯고 납신 뒤엔 가시버시 어우러져
이따금씩 살보시로 사추리께 걷는 건지
보게나, 뚝 뚝 흐르는 꿀물 칠갑을 보게나.
#3
뚝 뚝 흐르는 젖샘인가, 꽃부리 내어 밀고
육허기진 남정네의 살품 그리 들인 듯이
천지에 드러낸 소음순! 환한 적막 눈이 멀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 동부여를 개국한 해부루왕은 바위 밑에서 주워 온 금빛깔의 살갗에 개구리 닮은 금와를 데려다 기른 다음 태자로 삼았다.
우선 #기호와 숫자를 붙여 각 수를 독립된 시편처럼 보이게 한 것이 눈 설다. 3수는 서로 고리를 맺고 있어 따로 떼어 놓으면 제목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의미전달도 어려운데 무슨 이유로 번호를 붙여 구분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작품들보다 특이하게 보이려고 한 것인가?
이 작품은 금와왕설화(金蛙王說話)를 읽어 아는, 극소수의 독자를 위한 작품이다. 그래서 작품 밖에서나마 친절하게 배경설명을 해 주고 있지만, 작품 자체는 그만큼 의미전달이 미흡함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겠다.
뿐만 아니라 [(어깨를)겯다=얽다], [가시버시=여자남자, 부부를 낮추어 부르는 말], [살보시=여자가 중에게 몸을 바침을 뜻하는 저속한 말], [사추리=사타구니 살], [소음순=여자의 속 음부] 등 시어는 일반 독자가 쉽게 알 수 없는 말들이며, 알더라도 저속하여 제목의 금낭화에 대한 이미지를 음탕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둘째 수의[뚝 뚝 흐르는 (꿀물)]에 이어 셋째 수에서 [뚝 뚝 흐르는 (젖샘)]이 바로 나온 것도 껄끄럽다.
여하튼 이 작품은 깨진 음보가 많아 정격시조와는 거리가 먼 파형시조이며, 표기법과 내용이 거칠게 튀는 돌출작품이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2012 가을호>
시조 13편 중 9편은 시조형을 갖추었지만 [화전민에 대한 추억](조영일), [어느 다비식(茶毘式)](이무식), [별들 지다](최상호) 등 3편은 이유 없이 수를 붙여놓은 변형시조이며, [일생, 그 삶의 노래](鄭韶坡)는 아예 정형을 무시하고 혼자만의 길을 간 작품이다.
일생, 그 삶의 노래
鄭韶坡
앞 살다
먼저 가고
뒤저 나중 가는 사람
뒤 남아 뒤저 살다 앞 질러 가는 사람
온 가지 가지각색에 그 낳음 세 많구려
우리가 모두 얼며 함께 사는 세상살이
누가 옳고, 누가 그름 따지어 무엇 하리
뭉뚱여
옳고 그름을
한 데 모아 사루세
어화얼사 상사뒤야 이 논 저 논 함께 갈아
서로 일궈 농사 지어 거두어 한 데 모아
오손도손
형제 함께
의도 좋이
나눠 살세.
이 작품에서 3장 6구 12절을 찾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현대 정형시로서는 말 할 것도 없고 고시조의 어느 형에서도 비슷한 작품을 본 적이 없는 ‘나홀로 시조형’이다. 이런 작품이 중구난방으로 시조단에 난무하면 자유시와의 경계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시조는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마음이 이는 곳에 법(佛法)도 따라 노니네
서진송
타고난 업보만큼 쌓이는 무한 번뇌
참불법 무엇인가 참불심 무엇인가
대우주 티끌 한 점이 이내 육신 아닌가
죄업이 쌓일수록 흐르는 눈물줄기
속되지 아니하고 살기 힘든 사바세계
깨치고 또 깨우친들 구천지옥 면할까
사신장(四神張) 부릅뜬 눈 오금이 저려와도
산문(山門)밖 내딛으면 아비지옥 가는 발길
대관절 어쩌란 말인가 아둔함이 서럽네.
첫째 수와 둘째 수는 자수정형, 셋째 수는 음보정형을 갖춘 정격시조이다. 이런 작품만 시조단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은 헛된 망상일까?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우주와 나의 생을 반추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작품이다. [속되지 아니하고 살기 힘든 사바세계]는 ‘속되게 살 수 밖에 없는’ 바로 ‘우리들의 세계’가 아닌가? 속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구도자의 심정을 잘 그려내었다.
[사신장(四神張)]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사천왕(四天王)]으로 표기함이 보다 나을 것 같다.
(2) [현대시조]<2012 가을호>
최근 계간<현대시조>에 발표된 신작들은 다른 어느 문예지보다 정격시조가 많다. 수(首)의 구별이 뚜렷하고 자유시와 차별화된 음보정형의 시조가 대부분이며 완벽한 자수정형의 작품이 많아진 반면, 정형을 못 지킨 작품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몇 작품을 골라 예시한다.
가을 잠자리
金月漢
하르르 떨고 있는
투명한 날개짓으로
서늘한 연못가에
맴을 도는 잠자리 떼
한 여름
끝자락에서
점을 찍는 이 가을.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에 점을 찍는 잠자리들이 투명한 날개를 떨며 연못을 맴돈다. 초가을의 정취를 잘 그려 낸 음보정형의 깔끔한 시조이다.
파도
경규희
마당발 뒤꿈치 들고
앞으로 달리다가
몸 날려 불끈 솟는
높이뛰기 연습이다
해종일
되풀이해도
장대 높은 하늘이여.
시퍼런 눈독 들인
뭍을 향한 그리움에
밤새껏 흰 거품 물고
멀리뛰기 연습하다
번번이
엉덩방아 찧는
모래밭에 박수소리.
수의 구별이 뚜렷한 음보정형의 연시조이다. 마구 치솟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지는 파도의 마음까지 잘 묘사하였다. [(번번이 엉덩방아 찧는) 모래밭에 박수소리.]는 ‘박수소리가 뭍을 그리워하고 멀리뛰기 연습을 하고 엉덩방아를 찧는다’는 의미가 되므로 아주 잘 못 된 표현이다. [모래밭의 장난꾼] 정도로 하면 어떨까?
추억. 2
이유진
그윽한 풍경 소리
물결로 다가오고
앙가슴 틈사이로
달빛이 비껴들면
소슬한 가을바람에
실려오는 젖 내음.
창공을 내쳐 닫던
미완의 색동 꿈들
해거름 솔숲 길에
적시어 스며들면
남창南窓에 쪽배 띄우고
언제런가 그린다.
1자도 가감 없는 자수정형의 정격시조이지만, [남창南窓]의 표기 잘못으로 아름다운 시에 흠집을 내었다. 한자어는 ()에 넣어 표기하지 않으면 2번 읽으라는 뜻이 되며 국어기본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소슬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지난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 살아 나고 그리움이 더 해지는 심경을 잘 그려 내었다.
가을 하늘
박희옥
촉촉히
물이 들은
청자빛 고운 하늘
엄지 검지
원圓 만들어
힘차게 튕겨볼까?
쨍그렁
깨진 틈새로
쪽빛물이 흐를텐데.
역시 한자표기가 점수를 깎았다.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정형에는 손색이 없다. 새파란 가을하늘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쪽빛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광경을 잘 묘사하였다.
위 4편의 정형시가 [현대시조] 밭이랑을 북돋우고 있는 반면 한 편에는 미관을 해치는 잡초도 약간 있다.
아버지 스님
권오선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떠돌다가
산사의 풍경소리로 억겁의 연이 된
하룻밤 광연의 빛 잠겨버린 생명이여 3444
가슴은 그리움에 가시돋힌 흑장미
산사에 무릎 끓고 서성이는 나그네
당신의 아린 핏줄이 애증으로 탑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시조는 종장에 눈을 제대로 그려 넣지 못하면 반은 죽은 목숨이다. 이 작품은 첫째 수 종장이 정격을 벗어나 시조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돌
김정숙
어느 산야 떠돌다
야물어진
이 생명
부딪힌 동공끼리
손끝이 저려오다
그대는
홀연히 떠나 내 가슴에 파고들고
너를 향한 뜨거운 이 형상 가슴에 심어 두고 4634
또 하나 받침대로 서
섬김을 배운단다 3534
이 작품 또한 둘째 수의 초장이 정형을 벗어난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중장이 송두리째 증발되어 시조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12.9월 심사위원: 권갑하·이종문(대표집필: 권갑하)
<장원>
가을은 (김갑주)
달빛등 밝혀놓고 책 읽은 벌레 따라// 물감 들인 종이 위에 시를 쓰는 잎새 따라//
그리운 창을 못 넘고 널브러진 독백 따라// 기억의 실꾸리를 감아대는 침목 따라//
흑백필름 돌려대는 차창의 영상 따라// 진하게 보따리 푸는 간이역의 인정 따라//
가는 곳 알 수 없어 몸을 맡긴 발길 따라// 어둠 속 조리질한 잔별 건진 냇물 따라//
찬비가 가슴 적시는 낯선 곳의 불빛 따라//
<차상>
스마트 코리아 (정황수)
여기로 모이세요, 뒤처지면 손햅니다// 거리에 모든 것이 빈틈없이 짜여 있어//
언제든 찾으신다면 당신께 달려가요//
살며시 오세요, 안전띠는 필요 없고// 앞장 서 깃발 들면 팔로어가 모여요//
사각의 스마트폰은 항상 곁에 두세요//
오프라인 고집하면 거들떠도 안 봐요// 허리 굽은 어르신들 목에 걸린 아날로그//
소통도 디지털이라 골동품상 가래요//
인터넷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머리 터져 코 깨져도 꾹 참고 따르래요//
왼 종일 빠름빠름빠름 외치는 속도선(善)에//
<차하>
오후 세 시 (이은재)
앞산에 소풍 나온// 한 가족 뭉게구름
이내 맘 흔들어 놓고// 바람 끝 떠나간 뒤
천만근 눈꺼풀 위에// 부챗살 편 그리움
* 심사위원 심사평
김갑주의 ‘가을은’은 다른 작품에 비해 서정의 폭과 깊이가 느껴지고, ‘물감 들인 종이 위에 시를 쓰는 잎새’처럼 표현 감각이 남다르고 자연스럽다. 각 장의 끝에 배치된 각운이 다소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서정의 무게가 살아 있다.
차상 ‘스마트 코리아’는 이 시대의 오늘을 비판적으로 우려낸 작품이다. 구어체의 활달한 어법이 경쾌하다.
차하작은...오후 3시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면서 종장에서 깊이를 잘 담아냈다.
* 필자의 작품평
당선작 3편중에 정격시조는 없다.
장원작은 1연 9행의 자유시이다. 이유 없이 수를 붙여 시조의 모양을 없애고 오히려 독자들이 읽고 감상하기 어렵게 빗장을 질러 놓았다. 행마다 동원한 각운 [~따라]는 불필요한 시어의 남용으로 1자라도 아껴야 하는 시조에서 권장할 것이 못되고 작품의 가치만 떨어트릴 뿐이다.
차하작은 압축된 정제미(精製美)는 없으나 노래방의 대중가요처럼 편안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차세대 시조의 흐름에 앞장서는 역할이 기대된다.
차하작은 자수정형에는 못미치나 음보정형에 손색이 없고 나른한 오후 3시 뭉게구름이 떠나간 뒤 그리움과 졸음이 겹쳐 오는 기분을 담담하게 잘 그려내었다.
(2) 12.10월 심사위원: 오승철·이종문(대표집필 이종문)
<장원>
새우젓 눈물 (박찬덕)
서해의 어디쯤에 생의 그물 내려놓고// 독배마을 아지매의 짭조름한 사투리가//
갯벌에 속울음 낳고 하루해를 이고 간다//
옹암포구 어디든가 아비를 만나러 간 날// 토굴속 염장 질린 한 세월 곰 삭혀 낸//
밥상의 새우젓 보며 그 눈물을 생각한다//
사는 게 잡젓 같은 하치의 맛일지라도// 젓갈 냄새 찌든 삶이 육젓이 될 때까지//
눈물도 숙성이 되면 은빛 바다 되는 것을//
<차상>
외딴 봄날 (조정향)
황대산 계곡아래// 숨은 듯한 외딴집///
그 뒤 곁 오동나무// 청보라 꽃 서러운데///
막막한// 봄날의 적막 숨 멎은 채 서 있다.///
물소리 바람소리// 결 따라 울먹이고///
외로운 낮달 혼자// 오도 가도 못하는데///
봄 가고// 꽃 떨어지면 몸져누울 이 산골.///
<차하>
아버지의 일기 (김영순)
일출봉과 마주한 우도봉 벼랑 끝엔// 낙서며 그리움이며 애써 지운 흔적 있다//
‘지 마세’ 누가 지웠나// ‘넘어가 요’만 남았다//
‘넘어가 요’ 그것은 낭떠러지일 뿐이지만//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더 가고 싶어지는
그 선을 넘고 나서야 비로소 가을이 온다//
나를 넘고 가라// 산 넘고 물 건너가라// 육지로 첫 발령 난 딸애를 보낸 그 밤//
아버지 꿩울음 일기 술로 익는 밤이었다//
* 심사위원 심사평
‘새우젓 눈물’은 어려운 상황을 아프게 견뎌내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차분하게 직조해낸 가작이다. 시적 화자의 나지막한 어조와 안정된 가락이 시상과 매우 잘 어울리는 데다, ‘눈물’을 ‘은빛 바다’로 ‘숙성’해 내는 서정의 건강성이 미덥기도 하다.
‘외딴 봄날’은 ‘외로운 낮달 혼자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산속 외딴 집의 숨 막힐 듯한 봄날의 적막이 손가락 끝에 잡힐 듯하다. 다만 자연을 노래하더라도 사람의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현실성이 좀 가미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버지의 일기’는 보다 성숙된 삶을 살기 위해서, 위험한 벼랑을 넘어가고 있는 딸애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포착됐다. 육화된 가락과 압축된 표현으로 시적 밀도를 더욱더 높여나갔으면 좋겠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음보정형을 갖춘 작품으로 어촌 아지매의 어려운 삶을 잘 그려내었다. 특별히 접히는데 없이 편하게 읽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차상작은 수의 구별을 없애고 6연 12행의 자유시를 흉내 내었다. 수를 나누고 2개의 깨진 음보를 수리하면 내용도 무난하고 자수정형에 맞는 정격시조가 될 수 있는데 아깝다.
차하작은 ‘넘어 가지 마세요’에서 ‘지 마세’가 지워져 넘어가라고 한, 어느 벼랑 끝의 경고문을 보며 육지로 넘어간 딸애를 생각하는 심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일출봉, 우도봉 등 독자들이 모르는 지명을 등장시키고 어렵게 경고문을 풀어간 첫째 수가 선뜻 손에 잡히지 않으며 다음 수도 시적 논리가 맞지 않아 독자는 애를 먹겠다.
(3) 12.11월 심사위원: 오승철·이종문(대표집필 오승철)
<장원>
우항리*일박 (용창선)
수억 년 전 돌의 몸에// 걸어 들어간 발자국은// 흩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껴안고 있다.//
단단한 돌의 심장에 물집 잡힌 그리움//
파도가 다독이는// 오래된 실밥자국// 움푹 팬 눈물이 내게도 있었던가.//
한 꺼풀 시간의 속살이 상처들을 잠재운다.//
먼 곳의 우레가 선사(先史)를 건너올 때// 눈물도 산을 깎아 벼랑을 만드는가.//
직립한 등뼈가 서러워// 잠 못드는 우항리.//
* 우항리: 전남 해남군 우할리 공룡발자국 화석지
<차상>
까치밥 (여환탁)
가파른 하늘 길을 엉기적 기어올라// 비스듬 가로누운 우듬지 허리춤에//
등근 듯 어리비치는 저녁놀의 짝사랑//
꿈에도 내리사랑 수척한 가지가지// 손 놓친 자식들은 눈앞에 심심한데//
봉긋이 올라가 붙은 늙은 어미 젖무덤//
못다 한 이 계절이 볼모로 눌러 앉힌// 여남은 잎새 사이 갈바람이 내리질러//
기우뚱 때까치꼬리 안타까운 저물녘//
<차하>
숨비소리 (강봉수)
칠성판 등에지고//
이어도 찾아 간다///
김녕바당//
두럭산//
하도바당//
소섬 넘어///
호//
오//
이//
자맥질 소리//
저승 다녀온 이승의//
숨/// 1115531
* 심사위원 심사평
우항리에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물집 잡힌 그리움과 산을 깎아 벼랑을 세우듯 직립의 등뼈를 세운 공룡의 모습이 상상력으로 맞닿아 있다. 상상력이 돋보인 용창선씨의 ‘우항리 일박’을 장원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차상은...해가 저물 무렵 고향의 수척한 감나무 가지에 몇 알 남은 까치밥에서 어머니가 자식들을 헤아리는 마음과, 인간이 까치를 헤아리는 마음이 하나가 된다.
차하는...잠수(潛嫂)들의 물질 장면을..제주 토박이의 눈으로...요령 있게 형상화했다. 제주 사람이 아닌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로 풀어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정형에 맞는 3수 연시조이다. 내용은 바닷가 암반에 새겨진 공룡발자국을 보고 그에 얽힌 사연을 상상하며 일박(一泊)한 경험담이다. 그러나 [돌의 심장에 물집 잡힌 그리움], [움푹 팬 눈물], [시간의 속살], [잠든 상처] [산을 깎아 벼랑을 만드는 눈물] [서러운 등뼈] 등 추상적이고 시적 논리가 결여된 시어들이 난무하고 있어 작품을 음미하기 어렵다.
차상작은 1자의 가감도 없는 자수정형의 정격시조이다. 그러나 [엉기적] [비스듬] [기우뚱] 등 시어는 [엉기적거리다] [비스듬하다] [기우뚱하다] 등의 어근이므로 어색하다.
차하작은 일부러 음보를 깨고 자마다 행을 달리한 종장이 몹시 거슬린다. 이런 멋이라면 자유시 방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 [김녕바당] [두럭산] [하도바당] [소섬] 등 불필요한 지명이 과도하게 동원되어 제주의 지명과 토속어를 모르는 일반 독자에게는 거부감만 불러 오겠다. (끝)
* 현대시조 2012년 겨울호에 게재
첫댓글 훌륭하신 평,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