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送舊迎新)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 후한의 반고가 편찬한 한서(漢書)에 쓰인 송고영신(送故迎新)은 구관을 보내고 신관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아무튼 구관을 보내야 그 빈자리에 신관을 맞이할 수 있듯이 묵은 해를 보내야 새해를 맞이 할 자리가 나기 때문에 신진대사의 관점에서는 송고영신이나 송구영신을 같은 뜻으로 받아 들여도 무방 할 것 같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적은찬(適言讚)이라는 글이 있다. 이글은 삶이 쾌적해지기 위해 지켜야 할 여덟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적언찬(適言讚)의 여섯번째 단계가 누진(耨陳)즉 낡아 진부한 것을 덜어내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것을 가득 채우는 신진대사의 단계인데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교수 신문은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50.9%(476명)가 과이불개(過而不改)즉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올해의 사자 성어로 뽑았다고 이달11일 밝혔다.
과이불개(過而不改)은 논어 위령공편 29장에 나오는데 해당 글의 전후 문장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잘못이라고 한다.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올해의 사자 성어로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 리더십연구소장)은 “우리나라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논어 학이(學而)편과 자한(子罕)편에 각각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즉 ‘잘못을 하면 고치기를 꺼려 하지말라’는 말이 거듭 나온다. 또 이인(里仁)편 7장에 인지과야(人之過也),각어기당(各於其黨),관과(觀過),사지인의(斯知仁矣)즉 ‘사람들의 잘못은 각기 그 부류에 따라 다르다. 어떤 잘못인지를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부분은 한 사람의 잘못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헤아려 볼 수 있다고 지적한 중요한 말이다.
논어 자장(子張)편 8장을 보면 자하왈(子夏曰) 소인지과야필문(小人之過也必文) 즉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꾸며 댄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신이 아닌 사람인 이상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소인들은 자신의 잘못이 명백한데도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변명하고 꾸며 대며 발뺌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 가 지은 ‘후회의 재발견(The Power of Regret)’에 의하면 인간의 후회는 크게 네 가지그룹으로 구분한다:
○기반성 후회(Foundation Regrets)
○대담성 후회(Boldness Regrets)
○도덕성 후회(Moral Regrets)
○관계성 (Connection Regrets)
기반성 후회는 교육, 재정, 건강 등 삶의 안정적 기반과 관련된 후회를 포함한다. 예를들면 공부를 게을리 하다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거나, 평소 과소비를 하고 저축을 하지 않거나, 건강에 좋지 않는 습관이 삶의 기반을 흔들어 미래 삶의 전망이 우리의 희망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불확실 할 때 필연적으로 후회가 따른다.
대담성후회는 삶의 안정적 인 측면만 강조하다 과감하게 도전할 기회를 흘려 보냈을 때 세월이 지난 후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여 성장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도덕성후회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도 불구하고 일시적 유혹이나 이기심에 빠져 의를 저버리고 잘못된 선택하거나 행동하여 자신의 선함을 굽힐 때 후회가 쌓인다.
관계성 후회는 일체감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간관계를 등한시 할 때 발생한다. 배우자, 파트너, 부모, 자녀, 형제자매, 친구, 동료와의 관계가 단절될 때 후회가 발생한다. 이관계들이 흐트러지거나, 사라지거나, 발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지속적인 상실감을 느낀다.
위의 네가지 범주의 후회를 요약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 할 수 있다:
○기반성후회에 대한 반성: 삶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지금 부족을 느끼는 부분(교육, 물적풍요, 건강 등)에 투자를 했더라면 지금 보다 훨씬 삶의 기반적 안정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라는 진한 아쉬움.
○대담성후회에 대한 반성: 기회가 왔을 때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했더라면 더욱 성장했을 텐데 라는 진한 아쉬움.
○도덕성후회: 순간적인 이기심이나 유혹을 물리치고 옳은 일을 했더라면 선(善)과 덕(德)에 부끄럽지 않은 처신을 했을 텐데 라는 진한 아쉬움.
○관계성 후회: 만난을 무릅쓰고 부모형제 가족 친지 그리고 사업의 파트너에게 에게 손을 내밀었더라면 사랑으로 결속된 우정과 가족관계를 누렸을 텐데 라는 진한 아쉬움.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기 쉬운 후회 가운데,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가 제시하는 열가지 해서는 안될 후회를 다니엘 핑크의 네가지 후회의 범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1.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즉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 (관계성 후회)
2.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疎後悔) 즉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 후회한다. (관계성 후회)
3. 소불근학노후회(小不勤學老後悔) 즉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 (기반성 후회)
4.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 즉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 후회한다. (기반성 후회)
5.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後悔) 즉 재산이 풍족할 때 아끼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후회한다. (기반성 후회)
6.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 즉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 (기반성 후회)
7.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墙盜後悔) 즉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후에 후회한다. (기반성 후회)
8. 색불근신병후회(色不謹愼病後悔) 즉 색을 삼가하지 않으면 병든 뒤에 후회한다. (도덕성 후회, 기반성후회)
9.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 즉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후회한다. (도덕성후회, 관계성 후회)
10.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 즉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후회한다. (관계성 후회)
이덕무가 적언찬(適言讚)에서 기술한 삶이 쾌적해 지기위해 지켜야 할 여덟단계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단계는 식진(植眞)즉 참됨을 심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장과 가짜가 판치는 오늘날 진정성과 진짜의 존재 가치는 희소함으로 그 가치가 무엇에도 비 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둘째 단계는 괌명(觀命)이다. 즉 운명을 살핀다는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은 마음을 갖는 태도를 말한다. 셋째 단계는 병효(病效)즉 마음을 다스려 잡다한 것에 현혹됨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네번째 단계가 둔훼(遯毁)즉 헐뜯음으로 부터 멀리 달아 나는 것이다. 경쟁의 세계를 떠나. 다섯번째 단계는 이령(怡靈)즉 정신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작용이 필요하다. 여섯번째는 앞서 설명한 누진(耨陳)이다. 일곱번째 단계는 간유(簡遊)즉 교류하는 벗을 잘 가릴 필요가 있다. 여덟 번째 단계는 희환(戲寰)즉 우주 안에서 즐기며 노니는 것이다. 위 여덟단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 삶을 즐기고, 내 분수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선비 이덕무의 말은 이상적이지만 무조건 다 따라 하면 요즘 세상기준으로는 무사태평 또는 무능하다는 평을 들을 공산이 크다. 이덕무의 쾌적한 삶을 얻기 위한 여덟단계는 오늘날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완벽하게 이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이 시점에서 매일매일 생존을 확보하면서 후회를 줄이고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는 실천적인 사자성어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자가 뽑은 사자성어는 임사이구(臨事而懼)입니다.
논어 술이(術而)편에 임사이구(임사이구)와 연관된 공자와 제자들과 대화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술이편 제10장을 전부 인용합니다:
원문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자위안연왈 용지즉행
舍之則藏
사지즉장
惟我與爾有是夫!
유야여이 유시부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자로왈 자행 삼군 즉수여
子曰: 暴虎憑河,死而無悔者, 吾不與也
자왈 폭호빙하 사이무회지 오불여야
必也臨事而懼,
필야 임사이구
好謀而成者也.
호모이성자야
번역 (전광진교수가 드라마로 엮은 우리말 속뜻 논어 147쪽 및 148쪽 참고)
(안연, 자로와 함께 셋이서 학당 뒷마당을 거닌다.)
공자, 안연에게 말한다. (안연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등용해 주면 깊은 뜻을 펼치고,
내쫓으면 깊이 숨어 지내는 것은,
오직 나와 그대 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로, (시샘이 난 듯, 생뚱맞게 불쑥 나서며)
선생님이 삼군을 거느린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습니까?
공자, (과격한 자로를 은근히 비꼬는 말투로)
범을 맨손으로 때려잡겠다고 나서며, 강을 맨발로 건너겠다고 날뛰다가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와는 내가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에 임하여 겁을 낼 정도로 신중하고,
(미리미리)잘 도모하여 (끝내) 성공시키는 자와 함께 할 것이다.
일에 임하여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자기기만을 하며 주위사람에게 기대감으로 달뜨게 하다 실패하거나 낭패를 당하면 후회 막심이다. 공자님의 말씀 대로 일에 임할 때는 반드시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온갖 노력을 다하여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다짐을 해야 할 것 같다. Just Do It! 만으로 만사형통을 바라는 자기기만은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구습이 아닐까 싶다.
임사이구(臨事而懼)의 정신무장으로 후회 없는 2023년 계묘년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