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 정준일
지도 단속차 방문한 사무실
외벽부터 내부 시설, 집기까지 모두가
단정하고 깔끔하기만 한데, 칼날 같은 그녀들
시간 약속도 없이 방문하냐고 날을 세운다
불시단속이 원칙이라고,
부득이한 방문이라고 열 올려 설명하다
서서히 약이 오르고 화가 치미는데
이렇게 귀한 인연이 다 있나
내 얼굴 한참동안 맴돌던
하루살이(혹은 날파리 -정확한 이름을 몰라 미안하다) 한 마리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다
목구멍에 부딪히는 이물감
컥, 컥 목을 긁어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어머! 한 여인 놀라고
입 큰 나는 창피하여 얼버무린다
한 마리밖에 없는 파리 혼자 먹어 죄송합니다
순간 두 여인 키들키들 소리 죽이다가
이거라도 한 잔 드셔요. 주스를 내어 온다
차갑게 얼어가던 점검자와 피점검자
부드럽게 녹는다
점검자와 피점검자 사이에는 수직적인 이해 대립이 있습니다. 아니, 이해가 존재화된 대립입니다. 그래서 "불시단속이 원칙이라고,/ 부득이한 방문이라고 열 올려" 설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 한 마리의 등장이 그런 존재를 졸지에 무너뜨립니다. 본의 아니게 가졌을지도 모르는 점검자라는 존재를 깨뜨려 그냥 인간이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자 말에 날을 세우던 여인들도 "이거라도 한 잔 드셔요. 주스를 내어 온다"가 되고, "차갑게 얼어가던 점검자와 피점검자/부드럽게 녹는다"의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를 보고 있노라면, 수직을 수평으로 바꾸는 상황 변화는 이해를 누그러뜨리는 정도에서 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이해의 시선을 흩뜨리는 데서, 그리고 인간적인 면을 드러낼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부드럽고 친절한'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수평적 관계를 내보이지 못하면 여전히 이해로 대상화된 만남일 뿐입니다. 화자는 그런 깨달음을 주었던 하루살이의 죽음을 '어떤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어떤 죽음'이라는 말은 비장미를 강제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서정의 정황에서는 오히려 그런 말이 갖는 비장미를 희화시켜 새로움을 만듭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노라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무거운 역사를 살아온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변화의 실천은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가능하면 모든 관계에서 인간적인 면이 살아나게 하는 '흩뜨리고-수평적으로 만들고-덧씌워진 것을 벗겨 가볍게'하는 실천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갑자기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기억에서 흐릿해진 말이 떠올랐습니다.
-글/ 오철수 시인
첫댓글 이곳 시향방 68번 <이장근 詩「고맙다, 뱀아!」-놀이 혁명의 모형을 보다>의 맥락에서 시를 읽었습니다. 꼭 참고하셔서 아모르파티적 실천에서 중요한 요소를 하나 찾아 가지십시오. 저는 오늘도 술로 보내야할 것 같습니다.^^ <정회원신작시>방에 <드라마 촬영장면을 보며>라는 좋은 시 한편 올라왔어요....야호!
그리고 정준일! 나는 네가 사내다운 서정을 가진 몇 안 되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 시사에서 너에게 모범되는 서정을 구사하는 인물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모범도 없다. 너는 그저 너를 완성하는 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시가 잘 안 되더라도 너는 순전히 너의 서정만의 길을 가야 한다. 가끔 예술성이라는 말이 널 골치 아프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화된 남자'의 예술성과 '껄덕되게 사는 놈'의 예술성은 다르다. 왜, 쭝국영화 <폐왕별희>인가 하는 것 본 적 있는가? 거기에서 장국영의 역이 보여준 예술성이 있고, 그 파트너였던 싸내가 보여준 예술성이 있다. 예술성 일반은 없다.
허걱! 이 시를.... 감사합니다. 서정이 별난 것인지, 말법이 거친 것인지 아직도 감이 잘 안옵니다.
아니 형...이 시는 참 좋은 시였는데요...흐르고 있는 서정이 모든 것을 넘어섰거든요^^
사실 저 시를 처음 읽었을 땐, 한 마리 별 것..저 날파리 땜에 '차갑게 얼어가던 점검자와 피점검자/부드럽게 녹는' 희화화 1 에 대한 것 만 읽고 핫핫핫! 대기만 하였더랬습니다. 어떤 '죽음'에 대해선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지요. 오늘,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네요^^ 엉뚱한 공무원, 준일 시인만의 독특한 서정에 미소짓습니다^^*
표현이 부족하지요? 작은 죽음이 공간을 변질시켜버리더라고 쓴 것인데, 충분히 표현되지 못하여 샘께서만 그것을 읽을 수 있었던것 아닐까 했습니다.
이 시를 읽고 어떤 분이 한말---왜 좋은 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를 읽은 모든 사람이 깔깔대고 웃었다. 그리고 도대체 워떤 시인이냐고 아주 관심있는(이것이 인간적인 모습이리라!) 표정으로 묻더란다. 그 바쁜 사람들이!.....이미 이 서정이 <부드럽게 녹는다>가 무엇인지 구현한 것이겠죠?
어떤 상황에서든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열리고 유쾌한데 이리님도 그러시죠? '문학적 옷 입히기'의 겉 멋에 사로잡히지 않고 묵묵히 제 서정을 찾아가는 이리님이 이쁘다요.
'어떤죽음'이 서로를 화해하게 했군요?^^ 우리 삶에도 그 '어떤죽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때론 내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론 상대방이 그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전혀 관계 없을 듯한 제3자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어디 사람뿐이겠습니까? 한마리 날파리조차도 그 큰 역할을 다 하는데요...그런 시선으로 본다면 어찌 이 삶을 , 이 모든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서로 화해하며 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맞아요.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다가 미물의 죽음 하나에 달라질 수 있다면, 미리 서로를 바라볼 여지를 남겨놓고, 상대방을 만나면 훨 평화로운 세상이 되겠지요
그거여 바로..ㅎ '서로를 바라볼 여지를 남'길 수 있게 '어떤 죽음'이 역할을 했다는 거쥐..ㅎㅎ 불편할 수도 있을 관계를 부드럽게 맹근 거..날파리는 매개이고 준일이는 촉매이고..캬캬^^
한 마리밖에 없는 파리 혼자 먹어 죄송합니다 ^^ 이런 유머에 부드럽게 녹을 수밖에요. ㅎㅎ 지도 단속하러 나갈 때 그분들 기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교육 받으셨죠? 위반하고도 딱딱하게 나오면 더 정확하게 보게 되던데...ㅋ 그 음료도 마시면 안 되지만 어쩌겠어요. 일단 목을 축여서 넘겨야 되니...^^
기왕이면, 저렇게 죽고잡다.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여인네는 결벽증에 신경증까지 있는지 내가 위에서 먼지만 털어도 독기를 새우고 난리였다. 자기 집 방충망에 먼지가 묻는다나! 아니, 그깟 먼지 좀 버렸다고 사람을 무슨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다니! 또 무슨 큰 소리라도 났다하면 인터폰을 눌러서 잔소리를 해대는 게 아닌가. 한번은 그 일로 대판 붙었다. 물론 내가 깨갱 했다. 하이고, 어찌나 말을 잘 하던지. 양팔을 옆구리에 끼고 두 다리를 짝 벌린 채 서서 무섭게 쏟아내는 말들은 실로 압권이었다.
내 눈 주의에 알짱거리는 날 파리라도 있었다면 날름 집어삼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해서 잠이 안 왔다. 이 여자 코를 어떻게 하면 납작하게 해 줄까 하루 종일 골똘했었다. 확! 불을 싸질러 버릴까? 아니면 청부업자에게 손 좀 봐달라고 할까? 힝! 그런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커다란 수박 한 덩이를 낑낑 사 들고 그 집을 방문한 뒤의 일이지만. .
파리 목숨을 의로운 죽음으로 승화시킨 준일님, 팽팽한 긴장을 부드럽게 녹이는 여유로운 모습, 하나 밖에 없어 귀한 걸 나누어 먹으려는 고운 마음(?)도 함께 접수합니다.
준일이를 생각하고 시를 다시 보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본인은 전혀 웃지도 않으면서 한번씩 웃기는 이상한 공무원이 파리 한목숨 보시받고 이렇게 큰 보시로 답하니 그 죽음이 헛되지는 않았네 그파리가 다른 단속반에 들어갔으면 더 열받아서 딱닥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목 속에서 만난 귀한 인연, 사태의 국면을 바꾸어주는 귀한 인연, 살면서 기다리게 되죠.
준일이 서정이 전과 같지 않아 잘 적응은 안 되지만 .. 좀 엉뚱하기도 하고.. 존중은 하지만.. 내가 늦은 이유 ^^
'수직을 수평으로 바꾸는 상황 변화는 이해를 누그러뜨리는 정도에서 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이해의 시선을 흩뜨리는 데서, 그리고 인간적인 면을 드러낼 때 가능한 것'!!!! 준일시인의 시는 투박하면서도 솔직한 면이 매력인거 같아요^^
딱 이만큼만한 상황극을 연출하고 싶어지네요. 아마도 연습은 미리 꽤나 해야할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