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교회 전경>
갈릴리 이야기
제1화 (갈릴리로 가라!)
2011년 5월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 잔인한 달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가기 시작한 자그마한 회사에서 스스로
퇴사를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1년 5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생소하던 전기 분야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기술을 조금씩
습득해 가고 있었으며,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기에 더더욱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나이 50이 넘어 젊은 직원들과 현장에서 같은 조건으로 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진행되던 목 디스크가
말썽을 부린 것이다.
5월 초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앞둔 시간.
갑자기 어깻죽지에 통증을 느끼면서 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이었다.
출근 후 외출을 내고 선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진찰을 한 결과
목 디스크가 의심된다는 소견과 함께 정밀 검사를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일이 바쁜지라 쉴 수가 없어 응급치료만 받고 다른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으로 합류했지만, 통증이 쉬 가라앉지 않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일 동안 젊은 직원들의 배려로 쉬운 일 만 거들었지만 도저히
일을 계속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둔산동에 있는 척추 전문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정밀 검사 결과 목 디스크와 척추 디스크가 진행 중 이었으나 다행히
초기여서 주사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1주일 동안 입원하면서 치료와 재활운동을 하였지만 도저히 일을
계속 할 수는 없는 상태라서 부득이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다.
안정적이던 공무원 생활을 마다하고 명예퇴직 한 후 11년여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실패의 연속이었고, 그로인해 가정도
깨어진 체 홀로 힘들게 연명해 왔는데 어려운 질병까지 얻게 되니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죽고만 싶었다.
며칠 동안 대청호반을 배회하면서 인생살이가 왜 이렇게 잘못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모아둔 것도 없는데 몸까지 아프니 무슨 재주로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인지?
누군가 나를 구원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지은 죄가 커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인지?
생각은 꼬리를 물었지만 해답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가슴속에 늘 부담으로 남아있던 신앙문제가
제일 먼저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처음 신자 시절 순수했던 믿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세상살이 핑계로
교회 생활을 게을리 한 지 몇 년이 되었는지?
이제는 더 이상 물러 설 자리가 없다.
오직 기대고 의지 할 분은 한 분 뿐이다.
내 마지막 남은 시간을 그분께 의탁하자.
결론에 이르자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죽을 수밖에 없던 탕자를 용서하시고 다시 살려주셨으니 내가
갈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아담하고 가족 같은
교회를 찾기 위해 대청댐 인근을 돌아다닌 지 일주일 만에 마음에
드는 작은 교회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아니 찾아낸 것이 아니라 계시를 들은 것이다.
‘갈릴리로 가라!’
대전광역시에서 대청댐으로 가는 언덕아래 자그마한 마을이 있고
그 마을 입구에 어릴 적 보았던 종탑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교회 이름이 ‘갈릴리 교회’였다.
처음 찾아갔을 때 평일 이라 인적이 드물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덕위에 위치한 덕분에 대청댐 물이 저만치 보이고, 모내기 한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고, 뒷산에서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울어대니 자칫 고향 마을에 온 착각에 젖어들기에 충분했다.
교회 주변에 있는 집으로 가니 울타리도 없고 텃밭에 상추며 오이.
고추가 심어져있는데 8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상추를 뜯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에 여차 저차해서 교회를 찾고 있다고 하니
잘 오셨다고 하면서 점심을 먹고 가라고 억지로 집 안으로 안내를
했다.
자기는 갈릴리 교회 ‘김권사’라고 소개하면서 자기 집에서 교회 다니는
할머니 몇 분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80에서
90세 되는 할머니 여섯 명과 60세 쯤 되어 보이는 여자 한명이
식사를 하기위해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한사코 사양하는 나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면서 기어이 수저를 쥐어
주기에 부담은 되었지만 맛있게 점심을 얻어먹었다.
커피까지 대접하면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에 간단하게 현재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목사님 연락처를 물었다.
돌아오는 주일에 꼭 나오라는 당부를 뒤로하고 권사님 댁을
나서면서 이곳에서 마지막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무엇이 이 작은 교회로 나를 인도한 것인지 그 때는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갈릴리로 가라’는 그 분의 명령이었다.
<김권사님 댁 : 교회 바로 옆 건물>
<교회에서 내려다 본 전원 풍경>
첫댓글 어머~
마을이 넘 예뻐요.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
무슨 일을 계획하고 계실거예요.
세상, 명예, 돈..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건강까지 잃으시면 안되요.
건강을 꼭 챙기시고
주님만 따르시면 평화와 또 다른 길이
열릴겁니다. 제가 잠시 만났던 주님은
늘 제곁에서 저를 인도하고 계심에
이젠 부러울 것이 없어요.
그분만 따르시면 되요.
그분 안에서 얻는 평화는
누린 사람만이 알 수 있지요
인생에서 산꼭대기에 올라야만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인 줄 알지만
정말 그 산을 오르는 동안이 행복임을
빨리 깨치셨으니 아멘입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주님 사랑 전하며
고요를 느끼시라고 부르신 것 같아요.
홧팅입니다.^
이 글 계속 올려주시어요.
진정성있는 진솔한 이야기..
우리들이야기로 옮깁니다.
우리들이야기에 계속 이어서
올려주시면 감사.^^
고마워요!
세상사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쓰고 싶었네요.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아요.
틈나는대로 올리리다!
요즘 체력이 안되는지
여러가지 일을 하는 날은
맥을 못춰요.
입술이 부르터서 약 바르고
자려다가 들어왔는데...
힘내고..즐겁게 삽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