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업 절반 이상 轉職 지원하는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 도입 퇴직자에 대한 인식 변화로 호황
분노로 어리석은 행동하지 않게 잘 달래고 새 직장 찾도록 도와줘야
한국, 노동유연성 낮아 활성화 안돼
지난해 말 미국의 뉴스 블로그 사이트인 밸리웩(valleywag)에는 1500명 감원(減員)에 들어간 야후의 해고 절차 지침 중 일부가 파워포인트 문서로 유출됐다. 5장으로 이뤄진 이 문서에는 상급자가 해고 대상자에게 말을 걸 때부터 사무실을 나서게 할 때까지 모든 지침이 적혀 있었다.'해고 대상자와의 만남은 15분을 넘지 마라',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마라' 등 행동 요령은 기본이다. 해고 대상자와 대화할 때의 구체적인 어법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처음 해고 대상자에게 말을 건넬 때는 "○○씨, 와줘서 고맙네,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회사 이야기가 좀 있네"라고 말하라는 식이다.
이 사례는 미국 기업들이 그만큼 해고 대상자 관리를 위해 꼼꼼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야후의 문서가 유출된 밸리웩측은 "이 문서는 야후의 해고 절차가 악독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야후가 실망스럽게도 일반 회사에 가깝다는 걸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렇게 해고·퇴직 대상자의 심리적 충격을 덜어주고, 전직(轉職)을 지원하는 관리 서비스를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전직 지원)'라고 한다. 인사컨설팅업체 리헥트해리슨(Lee Hecht Harrison)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업의 절반 이상이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도입했다. 그만큼 해고·퇴직 관리가 일상화된 것이다.
기업들은 자체 조직을 두거나,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고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실행한다. 야후의 경우 라이트 매니지먼트(Right management)라는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팅 업체가 관여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팅이 미국 언론으로부터 '죄악의 산업'이라고 매도당한 데 비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최근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는 말 그대로 '활황'을 맞고 있다. 인사 컨설팅 회사인 리헥트해리슨이 지난해 900여개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웃플레이스먼트를 도입한 회사가 전체의 55%에 달했다. 2001년의 39%보다 16%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팅업체들도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에이어스그룹(Ayers Group)이 담당한 전직 지원 건수는 전년에 비해 75% 급증했다. 라이트매니지먼트는 지난해 가을 분기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했다. 키스톤 파트너스의 한 파트너는 "사상 최고로 바쁘다"고 말했다. 최근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가 활황을 누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에이어스그룹에 따르면 최근의 감원과 전직 바람은 9·11테러 당시 찾아온 경기 침체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지난해 1월 4.9%이던 미국 실업률은 올 4월 8.9%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기업들이 퇴직자에 대한 인식을 새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고용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자사 퇴직자가 실업자로 계속 남아있을 경우 사회적인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압박을 받게 됐다.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퇴직자가 앙심을 품고 부정적인 기업 정보를 퍼트릴 가능성도 커졌다.
보안 업체인 시만텍이 퇴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9%가 퇴직할 때 고객 명단과 같은 회사 정보를 가지고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그런 정보를 가지고 나오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고 했다. 또 회사 정보를 가지고 나왔다고 답변한 사람 중 61%는 회사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고 응답했다.
■'디테일'과 '교육'으로 직원 마음 달랜다
기업들은 적절한 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을 짜는 데 골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언 텍세이라라는 야후 전 직원의 사례를 통해 최근 기업들이 아웃플레이스먼트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지 보도했다.
텍세이라씨는 지난해 12월 야후의 구조조정 때 일자리를 잃었다. 상급자는 텍세이라에게 "회사가 자리(position)를 좀 줄이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없어지는 자리 중에 당신 자리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모두 지침에 따라 세심하게 선택된 표현들이다.
짧은 대화 뒤에 텍세이라는 방을 옮겼다. 그 방에는 함께 감원된 직원 두 명과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턴트가 있었다. 컨설턴트는 퇴직 이후 할 일을 간단히 정리했다. 전직에 관련된 질문도 받았다. 감정 표현은 자유로웠다.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도 된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업계는 이를 '김빼는(steam-off)' 과정이라고 부른다. 분노로 퇴직 대상자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1~2일 뒤에는 컨설턴트가 이력서 작성, 실업 급여 등에 대한 세미나에 초청했다. 분노가 가라앉은 뒤 이성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에이어스그룹에 따르면 시외에 자리 잡은 일부 기업은 퇴직 통보를 받은 직원이 정신적 충격 속에서 교통 불편을 겪지 않고 일찍 귀가할 수 있도록 차량과 운전사를 제공한다. 퇴직자는 물론 퇴직자의 배우자까지 함께 카운슬링을 해주는 경우도 많다. 실직 후 가족의 지원이 없으면 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는 데 도움이 되도록 온라인 교육도 제공한다. 기초적인 컴퓨터 교육부터 과학, 회계 등 장르도 다양하다.
고령 퇴직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보다 어린 면접관 앞에서 자신을 어필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에이어스그룹은 고령 퇴직자가 면접관 앞에서 ▲나이를 극복할 만큼 열정적이어야 하며 ▲'충성스러운(loyal)'이나 '헌신적인(dedicated)'과 같은 구세대스러운 단어를 피하고 ▲젊은 세대가 짧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을 조언한다. 또 ▲링크드인(linkedin)을 비롯한 인맥 사이트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자신의 장점에 대해 써서 홍보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아웃플레이스먼트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오해해선 안 되는 것은 아웃플레이스먼트가 모든 퇴직자에게 새 직장을 찾아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아웃플레이스먼트 컨설팅 업체를 헤드헌팅 업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웃플레이스먼트는 교육이나 카운슬링을 통해 퇴직자가 새 직종에 지원할 경쟁력을 만들어 주는 게 목표이다.
■아시아에선 대중화 늦는 이유
아웃플레이스먼트는 미국 기업을 시작으로, 점차 세계로 퍼지고 있다. 다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직 다른 지역만큼 아웃플레이스먼트가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전직이 제도적이나 문화적으로 미국만큼 자유롭지 않아, 교육이나 카운슬링만으로는 전직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에이어스그룹은 한국 기업의 경우 초보적인 카운슬링 서비스만을 포함한다고 해도 아웃플레이스먼트의 보급률이 20%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가 크고 노동 유연성이 낮다"며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제의해도 직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센티브와 안정성 면에서 전직 시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한 대기업에 그대로 남으려 한다는 것.
따라서 아시아의 특수성을 감안한 맞춤형 아웃플레이스먼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동훈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취지는 좋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아웃플레이스먼트가 전직에 100%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아웃플레이스먼트 시스템을 만들어 보다 활발한 전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