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2005년 8월 19일,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수도원에서는 월간 <어린이와 문학> 창간 기념 여름 연수가 한창이었습니다. 주제는 ‘우리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길’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일하느라 놀지 못했는데, 1990년대 이후 아이들은 일이 아니라 공부 때문에 놀 수 없었습니다. 놀 시간도, 같이 놀 아이도, 뛰어놀 장소도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어린이문학은 어떻게 담아내고 있고, 담아낼 것인가가 그날의 주제였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모였고, 1박 2일 동안 거침없고 쉼 없는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밤샘 뒷풀이도 이어졌습니다. 그 열기와 의지는 고스란히 월간 <어린이와 문학>의 동력으로 작동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20년!
흔히 하는 말로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이 인류는 우주선을 타고 나가 우주를 유영하고, 택시가 하늘을 날고, 물류창고에서는 사람 대신 로봇이 정교한 분리, 운반, 적재 작업을 합니다. 글도 그림도 작곡도 생성형인공지능이 척척 복사하고 조립하며 만들어냅니다. 사물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사람 역시 인터넷 세상에서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어린이청소년문학도, 출판 환경도 달라졌습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신자유주의 교육 문화 환경 속에서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역사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대통령이 촛불의 힘으로 탄핵되어 끌어내려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대면하는 게 귀신보다 무서운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을 가로질러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들어 교실이 넓어져 갑니다.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와 문학>도 ‘월간’에서 ‘계간’으로 바뀌었고, 운영위원장과 편집주간 역시 열 차례 바뀌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잡지는 이번 겨울호까지 189호까지 나왔고, 189번이나 변화를 앞서가려고, 또는 따라가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많았습니다. 이에 지난 10월 4일, 권혁준 운영위원장과 김하은 편집주간을 위시하여 그간의 운영위원장 편집주간들이 모여 확대운영회의를 개최하여, 기존의 관행을 따르기보다는 달리던 기차를 잠시 멈춰 세운 후 진지하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새로이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0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어린이와 문학>은 189호를 끝으로 잠시 휴간합니다.
189호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어린이청소년문학인들이 작품을 보내주셨고, 인터뷰에 응해주셨기에 본지는 여지껏 때를 거르지 않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잡지가 나오면 읽어주고 참여하고 격려해 준 구독회원과 후원회원이 있어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어린이와 문학>은 2005년에 창간할 당시 발행인이 서정홍 시인이었다가, 김진경 시인(동화작가, 교육운동가)에서 임정자 동화작가로 바뀌었습니다. 발행인은 딱히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편집권을 보호하고 사업자로서 부담해야 할 일들을 담당했습니다.
2년마다 상임운영위원회에서 협의하고 합의하여 새로운 운영위원장과 편집주간을 세웠습니다. 1기 이재복(운영위원장) - 임정자(편집주간), 2기 송언 - 장주식, 3기 이중현 - 공지희, 4기 김상욱 - 임어진, 5기 배봉기 - 김리리, 6기 박상률 - 이병승, 7기 장주식 –오시은, 8기 김환영 - 장세정, 9기 유영진 - 김재복, 10기 권혁준 – 김하은이 그들입니다.
운영위원장과 편집주간이 바뀌면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상임운영위원, 기획위원, 편집부원들도 새로 구성하였습니다.
이분들은 무급봉사를 하면서도 때맞춰 여름연수, 대토론회 등을 진행했고, 각종 소모임을 운영하며, 온 힘을 다해 잡지를 만들어왔습니다. 어린이청소년문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일했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갑작스런 휴간 소식에 많이 놀라셨을 구독회원, 후원회원 님들께 많이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모색을 위한 진통이려니 여기시며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린이와 문학>은 창간 이후 20년 만에 다시, 현재를 진단하고 새로이 나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진지한 모색의 끝이 화려한 복간호일지 찬란한 종간호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 추가 밝힘
1. 확대운영회의는 휴간 이후 모든 논의를 발행인 임정자에게 맡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 2025년부터 어린이문학상과 신인평론가상은 쉽니다.
3. 한낙원문학상은 사계절에서 맡아 운영합니다.
4. 어떤 형태로 복간될지 알 수 없어 구독회원들께는 남은 구독료를 돌려드릴 것입니다.
휴간을 결정하니 그 뒤처리가 많고 복잡합니다. 어쩔 수 없이 10기 편집진에게 위임하며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발행인 임정자 드림
첫댓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10기편집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는 겨울호 편집 중이고요, 한낙원 과학소설상 시상식 및 어린이와 문학상, 그리고 총회가 12월 26일 오후 6시부터 플랫폼 P에서 열립니다.(홍대입구역 근처) 웹자보 나오기 전에 미리 알려드리오니, 오실 분들은 미리 시간 비워두세요.^^
휴간소식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간 어려운 살림에 무급봉사 해주신 모든분께 감사드리며
길지 않은 휴간에 기쁜 소식이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써니써니 이정희
고맙습니다.
올 봄 저에게 정말 큰 영광과 기쁨을 주었던 어린이와 문학 다시 복간할 수 있는 날 고대하며 기도할게요.
잡지를 만들고 이끌고 유지하려고 애썼던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귀한 잡지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조금 슬프지만 ㅜㅜ
또 다시 만날 날이 올거라 기대합니다.
예, 선생님. 선생님의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열심히 쓰기로 해요!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휴간이 잠시 숨고르고 다시 달리는 준비기간이길 바라며 이런 안타까운 결정을 내리기까지 여러 가지 애쓰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거의 20년간 무급봉사로 일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린이와 문학》 덕분에 어린이를 공부하고 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휴간이라는 말은 너무 충격적이지만, 새로이 나아갈 길이 활짝 열리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