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의 한자 때문에, 오늘도 `기역'이어야 하는가?
공곡/이원근(수필가)
2026년은 여러모로 뜻깊은 해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면서,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처음으로 ‘가갸날’을 만들어 기념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한글을 돌아보고 그 정신을 새롭게 되새기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그런데 이 뜻깊은 해에 반가운 소식 하나를 접했다. 한글 자음 ㄱ·ㄷ·ㅅ의 이름을 지금의 ‘기역·디귿·시옷’에서 ‘기윽·디읃·시읏’으로 바로잡자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기역을 기윽으로 바꾸는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오는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관련 성명을 발표한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나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세 글자의 이름이 늘 마음에 걸렸다. ㄱ·ㄷ·ㅅ의 이름을 쓰라는 시험에 ‘기윽·디읃·시읏’이라고 썼다가 틀린 적이 있다. ‘니은·리을·미음·비읍·지읒’은 글자의 모양과 이름이 일정한 원칙을 따르는데, 왜 유독 세 글자만 ‘기역·디귿·시옷’일까. 어린 마음에도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정해진 이름이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
더구나 우리는 그 예외의 이유도 알고 있다.
1527년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한글 자모의 이름을 정할 때,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 소리를 설명해야 했다. ㄱ은 끝소리를 나타낼 적절한 한자가 없어 役(역)을 빌려 ‘기역’이 되었고, ㄷ과 ㅅ은 각각 `끝'을 뜻하는 `末(귿)'과 `옷'을 뜻하는 `衣(옷)'의 새김을 빌려 적었다.
당시에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한자를 빌려야 했던 시대의 제약이 사라진 뒤에도 그 흔적을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늘날 우리는 ‘윽·읃·읏’을 아무런 제약 없이 한글로 적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글의 원칙에 따라 ㄱ은 기윽, ㄷ은 디읃, ㅅ은 시읏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가.
예외를 설명하는 데 한글 교육의 시간을 쓰고 있다
한글의 위대함은 원리에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알며, 자음과 모음의 구조까지 설명할 수 있는 문자다. 그래서 어린아이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자음의 이름을 가르치면서 예외 세 가지를 따로 외우게 한다.
“ㄱ은 기역, ㄷ은 디귿, ㅅ은 시옷이다.”
아이에게 “왜요?”라고 묻는다면 결국 역사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한글의 규칙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규칙 밖에 있는 세 글자를 암기시키는 모순이다.
이제는 이 예외를 없애도 된다. 아니, 없애야 할 때가 왔다.
“둘 다 쓰자”는 말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기역·디귿·시옷’을 인정하면서 ‘기윽·디읃·시읏’도 함께 쓰게 하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혼용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의 제도화이기 때문이다.
두 이름을 함께 인정하면 학교에서는 두 이름을 가르쳐야 하고, 교과서와 시험에서는 어느 이름을 기준으로 삼을지 다시 정해야 한다. 사전과 공공문서에서도 두 이름이 함께 살아남는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불필요한 규칙을 남긴다.
“둘 다 맞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한글의 원리를 단순하게 만들자는 개혁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개혁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하는 것이다.
불편한 두 기준을 만들어 놓고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늦출수록 바꾸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 잘 써 왔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면 세상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어도 살아 있는 약속이다. 더 합리적인 원칙이 있다면 시대에 맞게 고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이다.
10년 뒤에도 “언젠가는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20년 뒤에도 “이미 너무 익숙해졌다”고 말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지금 어린 세대에게 기윽·디읃·시읏을 가르치기 시작하면 그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이름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기역·디귿·시옷’이 지금의 옛 표기처럼 역사적 흔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변화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결단이다.
2026년은 그 결단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해다.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다. 동시에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처음 ‘가갸날’을 정해 한글을 기념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글을 기념하는 해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글의 우수성을 되풀이해 칭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글의 원칙에 맞지 않는 오래된 예외 하나를 바로잡는 일도 한글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500년 전의 사람들은 한자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한글로 쓰면 된다.
한글로 설명하면 된다.
한글의 원칙으로 이름을 정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해야 한다.
역사적 이유가 사라진 예외를 계속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더 단순하고 일관된 원칙을 물려줄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역은 기윽으로,
디귿은 디읃으로,
시옷은 시읏으로.
처음에는 낯설 것이다. 당연하다. 모든 개혁은 처음에는 낯설다.
그러나 몇 년 뒤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윽, 디읃, 시읏”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바꾼 것은 한글의 역사가 아니라, 500년 동안 이어져 온 불필요한 예외 하나였다는 사실을.
500년 전에는 한자 때문에 기역이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은 한글 때문에 기윽이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혼용으로 타협하지 말자.
예외를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도 말자.
한글의 원칙대로, 지금 바꾸자.
첫댓글 ㅡ 권기호
좋은 정보 감사!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ㅎㅎ
ㅡ 김진태
한글을 사랑하는 공곡어른 존경합니다 .
ㅡ 김종환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꾸는 위대한 민족이니 무엇인들 못 바꾸겠는가?
한글날 100돌
훈민정음 580돌
세종은 어느 기념식에 참석하실까?
한글날은 10월 9일
훈민정음 창제절은 583돌
10월 10일로 하여 2일 놀면 좋겠습니다^^
세종대왕님께 여쭈어 봅니다.
정말 한글을 만드셨습니까?
아니지요?
훈민정음만 창제하셨다고요!
ㅡ 김형달
공곡양반은 생각이 남다르네. 좋은 글 새롭게 새기게 되네요. 누가 그렇게 제안하겠나?
ㅡ 홍춘자
이원근님의 아름다운 수필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옛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봇도랑길을 걸으며 어쩜이리도 많은 생각들을 끌어낸 글을 쓰실수 있는지 감탄합니다.
문운이 더욱 펼쳐 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ㅡㅡ 정성 어린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평범한 길도 어떤 마음으로 걷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와 이야기를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옛사람들의 땀과 지혜가 깃든 봇도랑길에서 얻은 작은 생각들을 글로 나누었을 뿐인데, 이처럼 따뜻하게 읽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