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얘기를 듣기는 한다) 아무래도 감기는 겨울에 잘 걸리기 마련이다. 심할 경우 겨울 내내 감기와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를 회상해 봐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겨울을 넘긴 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행이 올 겨울엔 아직 감기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런데 어쩌면 이번 겨울은 감기에 걸리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밖에 다닐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실내는 너무 춥지 않게 유지하면 감기에 걸릴 확률이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감기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오는 걸 꽤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외부 찬 공기를 직접 들이쉬지 않아 콧속(비강) 온도가 내려가지 않게 하는 것도 감기예방에 한 몫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강의 상피세포가 대표적인 감기바이러스인 라이노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선천면역반응이 일어나 바이러스를 무찌른다. 그런데 찬 공기를 직접 들이쉬어 비강 온도가 낮아지면 이 과정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기바이러스가 세포표면의 수용체(LDLR)에 붙으면 세포막이 함몰한다. 캡시드 안에서 빠져나온 바이러스 게놈은 이중가닥이 되면서 증식 사이클에 들어간다. 이때 선천면역계의 RLR이 이중가닥을 감지하면 미토콘드리아에 붙어있는 MAVS를 활성화하고 이어서 인터페론을 비롯한 선천면역계 유전자들이 발현한다. 그 결과 자연살해세포 등 여러 면역세포들을 끌어들여 바이러스를 퇴치한다. ⓒ 강석기
33도에서는 면역반응 크게 떨어져
겨울철 찬 공기를 직접 들이쉬면 비강 온도가 33도까지 떨어진다. 이 경우 주요 감기바이러스인 라이노바이러스(rhinovirus)가 기도(airway)의 상피세포에 감염해 쉽게 증식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반면 비강 온도가 정상체온인 37도일 경우는 바이러스 증식이 억제된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미국 예일대 연구자들은 온도가 감기바이러스 활성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숙주인 인체 세포의 항바이러스 활성에 영향을 미쳐 이런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감기바이러스가 생쥐의 기도상피세포에 감염되게 변이체를 만들었다. 각각 33도와 37도에서 배양하는 생쥐 기도상피세포에 감기바이러스를 접종한 뒤 증식 정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37도에서는 증식이 억제됐지만 33도에서는 빠르게 증식했다.
감기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각 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비교한 결과 37도에서는 선천면역계 관련 유전자들이 크게 활성화된 반면 33도에서는 발현이 미미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본 결과 감기바이러스 감염이 RLR 경로를 통해 인터페론 유전자 발현 같은 선천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RLR 경로는 세포에 침입한 감기바이러스가 증식할 때 만들어지는 RNA이중가닥을 인식해 활성화된다. 참고로 라이노바이러스는 축구공 형태의 단백질 캡시드 안에 RNA양성단일가닥 형태의 게놈이 들어 있다. 바이러스가 세포표면에 달라붙으면 세포막이 안으로 함몰되면서 세포 안으로 들어온 뒤 캡시드 안의 게놈이 빠져나와 증식하고 수많은 바이러스로 조립돼 다른 세포를 찾아 나선다.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대량으로 만들어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적응면역계가 작동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우리 몸은 침입한 병균을 즉각 무찌를 수 있는 선천면역계를 갖추고 있다. 비강 기도상피세포가 감기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선천면역계가 제대로 작동하면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조기에 막을 수 있어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된다. 아무리 조심해도 감기바이러스와의 접촉을 100% 차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는 감기에 걸리고 누구는 안 걸리는 것은 바로 선천면역계의 대응력 차이 때문이다.
스트레스나 만성질환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처럼 세포의 온도 자체가 면역반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사실이다. 그럼에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어 연구자들은 이를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