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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글을 한편 썼다. 겨울이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즐겁다. 아래 글은 마을학회 일소공도에서 발행하는 마을 9호에 싣기 위해 쓴 원고이다. 물론 날것 그대로이고, 출판을 위해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참고로 읽어보시길 권한다.
농민이 바라보는 기후위기
- 우리는 진정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금창영(홍성/농부/마을학회 일소공도 운영위원)
어리석은 인간들아! 자연의 증오와 한을 너희가 알겠느냐?
미야자끼 하야오, [모노노케 히메]
◯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절
아흔이 넘은 동네 할머니가 계시다.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지가 3년이 넘었으니 이제 남은 생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동네에 깃들기 시작하면서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비록 그때도 유모차를 밀면서 다녀야 하는 7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발걸음이 경쾌하였으니, 한창 일할 때였다.
집안에 들어오시라 청하면 굳이 출입문 옆에 앉으셨고,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둘째를 어르면서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그 모습을 보면 할머니의 화려했던 시절이 그려졌다. 인근 도시인 보령에서 20대 초반에 시집 온 그날부터 실로 극악한 노동의 연속인 삶을 살았음이 분명함에도 그 미소는 아름다웠다.
이제 둘째는 여중생으로 인생의 화려한 시절을 살고 있지만, 할머니는 생애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 있다. 그저 할머니의 마지막이 좀 더 평안하길 바라면서 ‘할머니에게 농부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 기후위기?
이제 기후위기라는 말은 일반화되었다. 어느 누구도 기후위기가 과장되었거나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전지구적인 담론이 몇 년 사이에 논쟁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과 사회가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의 반증이다.
덕분에 낯선 자연의 모습이 이제 모두 기후위기의 결과가 되었다. 가뭄이나 태풍, 빙산이 녹는 것만이 아니라, 사막에 눈이 내리는 것도 기후위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만이 아니라 지식인, 종교단체, 하물며 중·고등학생들까지 탄소중립, IPCC, 온실가스배출계수 등 낯선 말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기후위기 상황을 오롯이 맞서야 하는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렇다 할 정리된 이야기나, 고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기후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일까? 어차피 원래부터 어려웠으니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별다른 대응책이 없어서일까? 주도적으로 이야기해봐야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서일까?
◯ 그냥 이도 지나가는 여름날의 바람일까?
곡물자급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농업이란 자고로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기본이니 열심히 증산하라고 하였다. 많이 생산하는 것이 절대 선이었으니 그에 맞추었다.
이미 우리나라 하우스 면적은 전세계 3위이다. 156,655,675평. 하지만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일본이 10,890,000평이니 우리가 14배나 많다. 시설은 극도의 생산성을 추구하는 농사방식이다. 더불어 시장이 요구하는 상품성에 대응하기 적절한 방식이다. 하지만 극도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의 농민들은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노지농사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부터 당근이나 양파, 배추, 감자, 콩 등 대부분의 작물에 물을 주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당연히 수확량과 상품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농민은 품위가 좋으며, 안정적으로 공급가능하며, 가격도 저렴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위험과 싸워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일상적인 기후위기와도 싸워야 한다. 이런 농민들에게 당신들이 지금 농사짓는 방식이 메탄을 다량 배출하고 있으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기능이 20배가 넘는다는 비난의 말이 들린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바로 농지태양광이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앞으로 재생에너지로 500GW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최소 300GW는 농지태양광으로 공급해야 한다. 그렇다면 약 39만ha의 농지가 필요하다. 추측컨대 태양광시설은 농지가격이 싸고, 발전조건이 좋은 논에 들어설 것이다. 현재 84만ha의 논 중에서 39만ha의 면적에 태양광이 들어서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는 이런 모습이 상상이 안되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알뜰하게 돈을 모아도 농지를 살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많은 농민들이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다. 부재지주는 분명 50%가 넘을 것이다. 온 세상이 탄소중립에 맞추어 돌아간다면 법을 바꾸어서라도 이들에게 좋은 조건의 발전수익을 보장해줄 것이다. 지금보다 적게는 4~5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의 수익이 보장된다. 어느 누가 이 흐름을 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농민들은 어찌해야 하나? 만약 농민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손해보지 않으려 한다고 비난하지 않을까? 이미 환경운동을 하는 이들도 결국 논에 태양광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한다.
나는 기후위기라는 말이 반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것이 두렵다.
◯ 누가 전문가인가?
여기저기서 기후위기 전문가들이 한마디씩 한다. 물론 기후위기시대에 어떤 농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회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작 현장에서 농사짓는 농민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익숙하다. 귀농·귀촌정책 세미나에는 연구자나 교수가 전문가이고, 귀농·귀촌자나 지역민은 참관자였다. 마을만들기를 하면 컨설팅업체가 전문가이고, 정작 농민들은 동원되는 이들이었다. 농업기술세미나에는 농촌진흥청 연구원이 전문가이고, 현장에서 직접 실행하는 이들은 교육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방식이 그대로 이어져 기후위기시대이니 농민들에게 토양계량제를 뿌리고, 퇴비를 충분히 부숙하고, 물을 절약하고, 폐영농자재를 소각하지 말고, 가축은 적정 사육밀도를 준수하라고 한다. 여전히 농민은 가르쳐야 할 대상이고, 지도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이다.
더불어 농림축산식품부나 농촌진흥청에서 나오는 기후위기 대책은 한마디로 가관이다.
첨부 그림 참조
남재철, 「탄소중립시대, 국가 기후위기 대응전략」, 제2회 농업기술혁신포럼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 농업 과학기술 혁신으로, 농촌진흥청. 2021.
연구와 개발, 시범사업, 투자확대, 양질의 Data 라는 이야기는 늘 따라온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이들은 지금의 상황을 오히려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탄소근본주의는 아니다.
이대로라면 언제가 될지 몰라도 농업의 각 행위마다 얼마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 수치화를 할 것이다. 그들은 이런 연구에 최적화되어 있고, 이런 연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말로 장식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것을 근거로 현장의 영농행위는 선악으로 구분될 것이다.
더불어 또다시 보조금의 풍년이 될 것이다. 물론 그 보조금도 받을 수 있는 농가에나 해당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선 무경운작업기 보조가 있지 않을까? 2021년 12월 현재 무경운파종기는 6,200만원 정도이다. 파종기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스마트팜에 이르면 작게는 2~30억에서 많게는 300억까지의 지원을 이야기한다. 농지는 줄어들 것이 명확하고, 식량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터이니, 좁은 농지에서 극도의 생산성을 가지는 스마트팜에 그 누가 반대할 것인가?
저탄소인증직불금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의 친환경인증체계가 생각났다. 친환경직불금을 받아본 이들은 잘 안다. 새파랗게 젊은 심사원은 늙은 농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도끼눈으로 찾는다. 한글을 몰라 영농일지를 쓸 수 없으면 친환경인증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은 절대 친환경농업을 권장하는 방식이 아니다. 혹 있을지도 모를 범법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100만원의 친환경직불금을 받아 인증비 60만원을 내고, 수질검사 2건에 30만원내면 남는 것도 없다. 거기에 납품잔류검사 건당 30만원씩 내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적자다. 친환경농업 예산 중에 직불금 예산이 40억이고, 자재보조가 1,800억이다. 이게 무슨 친환경농민 지원인가? 친환경자재업자에 대한 보조이다.
온실가스배출을 줄이기위해 무경운으로 1,000여평 밭에서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살아야하는 이에게 지불되는 저탄소직불금과 대형트랙터를 가진 이가 무경운파종기를 보조받아 구입하고, 보조받은 바이오차를 수만평의 농지에 뿌린 다음 풀을 키워, 보조받아 개량한 스마트축사에서 보조받은 저메탄사료를 먹으며 자라는 소들에게 급여하는 방식에 지불하는 저탄소직불금은 그 면적만큼 차이가 날 것이다.
◯ 위기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아! 그래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아무리 재난 상황이라도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평등이 평등하게 적용되고, 불공정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사회이다. 각자도생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삶에 바쁘다. 아흔살 할머니가 어찌 살았던 나와는 상관없다. 하지만 그를 비난할 권리 또한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우리 같이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논농사는 정말 지구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경축순환농업을 하라고 하여 퇴비를 넣었고, 볏짚을 환원하는 것이 순환의 원리에 맞다고 하여 그에 맞추려 노력했다. 논물을 가두는 것이 홍수예방과 생물다양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어떻게든 물을 가두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논에 물을 넣어두면 메탄 발생량이 늘어나니 물을 빼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논을 말렸더니 이제는 또다시 논을 말리면 아산화질소가 나오고, 이 아산화질소는 메탄보다 10배 이상 온실기능이 강력하다고 한다. 퇴비도 넣지 말고, 볏짚도 환원하지 말고, 탄소저장기능이 있는 바이오차를 사서 넣으면 이런 문제는 해결되는가? 이젠 쉽사리 믿기 어렵다.
더불어 소위 전문가들의 대안은 이해할 수 없다. 기후위기는 분명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이 소비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당연히 그 소비를 줄이는 방법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 대신에 저것을 쓰라고 말한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같이 솔직해지자는 것이다. 친환경농업을 하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고, 스마트팜을 하면 지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쉽게 이야기하지 말자. 정작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농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수 십년 지금의 방식을 이어온 어르신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며, 농지문제, 부부가 농사를 지어 1,000만원도 벌지 못하는 현실, 현장에서 농사지을 후계농이 없는 문제,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는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이제는 더 이상 지금처럼 해서는 안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땅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출발점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보다 지금 당장 위기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또다시 농민들을 동원하지 말고,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며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첫댓글 금창영님은 47년전
이 땅에 유기농을 처음 도입한 사단법인 정농회이사,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정농회보(2021)에 '누가 전문가인가' '다락골구름밭에서 온 편지''로 함께 실린 인연이 되어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