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곶감
덕산 면민들의 연소득은 인근 지역의 진주시민들보다 높다. 지리산 자락 끝 자그만 분지 마을 덕산이 이렇게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곶감 덕분이다. 맛과 품질에 있어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덕산 곶감은 산청군 덕산 지역에서 고려시대부터 재배해 오던 고종시라는 떫은 감을 재료로 하여 만든다. 덕산 곶감을 고종황제에게 진상하면서부터 감나무의 이름을 고종시라 부르게 되었다. 최근에는 지리산 지역에서 자란 고종시 감나무를 경복궁과 청계천 약초동산에 식재하여 지리산 덕산 곶감의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고종시를 원료감으로 하여 만든 덕산 곶감은 지리산의 맑고 찬 청정기류로 말린다. 낮과 밤의 큰 기온차를 이용하여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향과 당도와 색택이 뛰어나게 된다. 또한 껍질이 얇고 씨가 적어 먹기가 편함으로 최근 수요가 증대되고 있으나 수작으로 인한 생산량의 한계로 시장은 덕산 면민에게 유리하게 서고 있다. 곶감이 나오는 계절이면 덕산 시장은 파장을 잊은 채 불야성으로 밤을 지새우곤 한다.
분지 형태의 덕산에 올 여름은 늦더위가 유난했다. 한 여름은 잦은 비로 곡물의 결실이 더디었으나 초가을 늦더위로 실과들은 그런대로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 고종시 역시 봄의 수분은 적었으나 결실기에 알들은 가득 차 있었다. 대과의 곶감 재료로 충분한 크기였고 속살도 조밀하여 품질이 뛰어났다.
11월이 되자 마을은 곶감작업으로 분주했고 날씨는 계속 늦더위로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서울은 기상관측 이후 11월 최고 기온인 섭씨 27도를 기록했고 단풍은 남하 속도를 더욱 죽이고 있었다. 음력설이 열흘 정도 빠른 내년 달력을 보며 마을사람들은 곶감작업에 속도를 가중시켰다. 곶감 최대 성수기인 음력설 보름 전을 출하시기로 맞추기 위해서이다. 최대 60일 건조 기간을 따지면 11월 중순 안으로 감깎기 작업이 끝나야 하므로 예년보다 다소 일찍 시작한 집도 있었다.
곶감도 여느 식물 농사와 마찬가지로 생산 과정에 그 지역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껍질을 깎고 말리는 동안 온도는 옷깃을 여밀 정도 차가워야 하고 습도는 건조주의보가 내릴 정도 메말라야 한다. 그 조건에 맞는 때가 11월 초순이고 그래서 해마다 11월이 되면 이 지역은 한 해 농사의 고비가 될 곶감 건조에 온 식구가 매달린다. 습도가 높으면 감이 물러 떨어지고 온도까지 오르면 곰팡이균이 붙기 때문에 일기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문제는 일찍 시작한 집들로부터 차례로 나타났다. 늦더위에 잦은 비로 고온다습이 원인이 되어 곰팡이병이 창궐한 것이다. 푸른 병반의 점들이 꼭지 부위에서 드러나더니 이내 전체가 까맣게 곰팡이로 덮이는 것이다. 성숙한 균은 바람에 날려 쉽사리 전체에 퍼지니 피해는 한 농가에서 전체 농가로 순식간에 번지게 되었다. 일기는 불순하여 흐린 날씨에 잦은 비까지 뿌리니 수분을 먹은 감들이 걸이에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내 바닥은 썩은 감들의 무덤이 되었고 그걸 치우는 농부의 얼굴은 궅어 있었다. 일곱 동을 버린 집이 나왔고 열두 동을 치운 집이 나왔다. 곶감 만 개를 한 동이라 부르니 칠천만 원을 버렸고 일억 이천 만원을 날렸다. 습한 늦더위가 덕산마을의 연소득을 절반이나 날려보내게 해 버린 것이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에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감나무 그루마다 쏟은 일 년 동안의 온갖 정성이 한 보름 일기불순으로 물거품이 되는 현실 앞에 농부들은 넋을 잃고 있었다. 자살한 농부가 나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식당과 술집들은 일찍 불을 껐고 마을은 가라앉아 밤이 조용하였다. 다행히 늦게 감을 깎은 집들은 피해가 적었으나 달가운 표정을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마을은 침울 속에 빠져 거리는 비어 있었고 그들은 언행에 신중을 기했다.
자연재해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여러 방면으로 연구를 하였다. 농약을 만들어 해충을 퇴치했고 비료를 개발하여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비닐하우스를 제작하여 계절을 벗어난 작물을 생산했고 저온시설이나 건조기 등을 개발하여 장기 보관 및 빠른 가공품을 만들었다. 대량 생산을 통한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형태가 농사에도 적용이 되었다.
맛이 좋아 귀한 대접을 받는 곶감도 대량 생산의 단계에 접어들려 하고 있다. 곰팡이 접근을 차단하고 건조기간을 단축시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곶감 전용 건조기가 개발되어 나온 것이다. 한 동 정도의 깎은 감을 4~5일 만에 건조시킬 수 있는 대용량 시설건조기가 시중에 나왔다. 자연건조의 불편함이 해소되고 많은 양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는 공장 형태의 시설인 것이다.
눈치만 보고 있던 덕산 주민들도 이번 피해를 당하고부터 곶감 건조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상황 판단이 빠른 일부 주민은 발 빠르게 건조기를 넣었다. 남은 감이라도 생산을 해야 했고 그것은 주요 고객으로부터 미리 받은 주문에 응하는 신뢰 차원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덕산 곶감도 이제 기업화 단계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고추 건조기가 나오면서 태양초가 사라졌듯이 곶감도 건조기에서 생산되면 천연 건조의 곶감은 사라질 지도 모른다. 덕산 곶감의 독특한 맛과 향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고 대신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장 곶감들이 시장을 장악할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른다.
덕산 곶감은 조식 선생의 산천재와 함께 덕산 지역의 특색을 살려 내는 명물이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유해야 할 지역 특산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공장 곶감은 대량 생산으로 이어질 것이고 공급 물량 확대로 가격은 떨어질 것이다. 자본주는 공장을 더욱 확대할 것이고 소량 생산의 농가는 가격 경쟁력에 밀려 도태될 지도 모른다. 진영 단감이 제주도에서도 생산되듯이 덕산 곶감도 이제 도시의 공장에서 생산될 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계속 농촌을 떠나고 있다. 그 이유를 알만도 하다.
2011. 11. 20
초암/권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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