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산(壯泰山/떡갈봉, 374m)-안평산(安平山, 470.2m)
산행일 : ‘15. 5. 7(목) 소재지 :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동과 충남 금산군 진산면·복수면의 경계 산행코스 : 장태산휴양림→팔마정→형제산(兄弟山, 302.2m)→해태산(海苔山, 341.6m)→장태산 떡갈봉→안평산→용태울저수지→휴양림(산행시간 : 3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강송산악회
특징 : 떡갈봉과 안평산은 도심(都心) 근교에 소재한 덩치가 제법 우람한 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때가 묻지 않아 수림(樹林)이 매우 울창한 편이다. 이는 계룡산이나 서대산, 식장산 등 인근의 이름난 산들의 유명세에 가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산세(山勢)도 인근의 다른 산들에 비해 한참이나 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부쩍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산보다는 산자락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을 찾아왔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만큼 ‘장태산 자연휴양림’은 다른 휴양림들에 비해 색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임창봉이라는 독림가(篤林家)가 사재(私財)를 털어 식재(植栽)를 했다는 이 숲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자연휴양림으로 문을 열었으나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가 지난 2002년 대전시가 인수해 2006년 4월에 새롭게 개장했다. ‘메타세쿼이아 숲’이라는 특출한 조건에다 스카이웨이(sky-way) 등 각종 색다른 시설들을 더함으로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산행들머리는 장태산휴양림 주차장(대전시 서구 장안동) 호남고속도로 서대전 I.C에서 빠져나온다. 이곳에서 '장태산 15km' 이정표를 따라 대전역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가수원네거리에서 우회전한다. 여기서 8km정도 직진하다가 흑석네거리에서 좌회전해 10분 정도면 휴양림에 닿는다. 이곳 장안동은 장엄하고 아름답게 뻗친 아름다운 산줄기 속에 마을이 생겨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난을 피해 장군봉 아래 베틀굴에 숨어서 3년 동안 베를 짜며 살다가 전쟁이 끝난 후 지금의 원장안에 터를 잡고 편안히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說)도 있으니 참고할 일이다.
▼ 주차장에서 내리면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들이 길손을 맞는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오른 것이 한마디로 장관이다. 메타세쿼이아를 맨 처음 만났던 곳은 담양, 여행 사진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풍경이었다. 도로의 양 옆으로 줄지어 늘어선 그 빼어난 자태에 반해 오랫동안 말을 잊었을 정도로 메타세쿼이아와의 첫 만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추억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 속에 여운으로 남아있다.
▼ 산행은 휴양림주차장에서 들어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가면서 시작된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광활(廣闊)하다는 숲이 저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오늘 걷게 될 산행코스가 그러하다니 어찌하겠는가. 산행 후에 주어진다는 30분 정도의 ‘여유시간’으로 위안을 삼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3~4분쯤 걸어 나오면 동림가든 앞 삼거리에 이르게 되고, 팔마정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질울다리’를 건너야 한다. 삼거리에 세워진 이정표(흑석리역 4.8Km/ 장태산 0.6Km)에는 나와 있지 않으니, 이정표는 제켜놓고 대신 곁에 있는 업소들 안내판에서 ‘장군암 굿당’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참고로 ‘질울’이란 ‘마을이 긴 골짜기에 있다’는 뜻의 ‘길울’이라는 낱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것이 구개음화되어 ‘질울’ 또는 한자어로 ‘길곡(吉谷)’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 팔마정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도로임에도 고즈넉하다. 차량통행이 거의 없이 한적한데다 왼편에 아름다운 풍광까지 펼쳐 놓은 것이다. 메타세쿼이아에게 한쪽 면을 내어준 용태울저수지가 만들어내는 풍광이 그만큼 빼어나다는 얘기이다. 오늘의 산행거리가 10Km인 점을 감안하면 속도를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삼거리에서 3~4분쯤 걸으면 도로를 내느라 능선을 마치 협곡(峽谷)처럼 움푹하게 까놓은 곳이 나온다. 끊어진 능선은 구름다리로 연결시켜 놓았다. 올려다 본 다리의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 구름다리 아래를 통과하면 능선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정표 : 팔마정 0.1Km/ 장태루 전망대 0.5Km/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계단이 도로의 양쪽으로 두 개나 나있다는 게 문제다. 진행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곧장 형제산으로 오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른편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면 되고, 만일 팔마정에 들렀다가 형제산으로 가고 싶을 경우에는 다소 완만하게 보이는 왼편의 나무계단을 따르면 된다.
▼ 왼편으로 들어서서 4~5분 정도 오르면 반듯하게 지어진 4각의 정자(亭子)가 나타난다. 팔마정(八馬亭)이란다. 정자의 이름은 요 아래 용태울저수지 일대에 있었다는 ‘팔마’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팔마마을(八馬洞)은 안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여덟 마리의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八馬飮水形)’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90년대에 세워진 정자가 있었으나 안전문제로 2006년에 철거되었다가 기성동 주민들의 건의로 2011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팔마정에서는 용태울저수지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약간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골짜기를 꽉 메운 메타세콰이어가 나름대로 멋을 자랑하고 있다. 조금 더 왼편에서는 잠시 후에 오르게 될 형제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 팔마정에서 능선을 따라 3~4분쯤 걸으면 아까 얘기했던 구름다리가 나온다. 길지도 그렇다고 높지도 않은 이 다리는 출렁다리로도 불린다. 다리를 건널 때 흔들거리는 것이 은근히 스릴(thrill)을 느끼게 만든다는 얘기일 것이다.
▼ 구름다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그것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거기다 중간에는 바윗길까지 나타난다. 이런 악조건이 못내 버거웠던지 산길은 침목(枕木)과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오르는 중에 조망처 한 곳을 만나게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끊임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거리가 짧아 15분 후에는 형제산의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 웬만한 헬기장 보다 더 넓은 형제산 정상에는 벤치와 ‘등산로 안내판’ 그리고 이정표(전망대 1.2Km/ 형제바위 0.13Km/ 팔마정 0.8Km)만이 세워져 있을 뿐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새마포산악회에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형제산은 산의 두 봉우리가 마치 두 형제처럼 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형제산 다음 차례는 전망대, 그러나 가는 길을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될 일이다. 전망대로 올라가기 전에 꼭 들러봐야 할 곳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오른편 130m 아래, 시간상으로는 4~5분쯤 되는 거리에 있는 형제바위다. 휴양림 인근에서 유일한 바위 암릉지대인 형제바위는 커다란 두 개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두 바위 사이로 장태산 휴양림의 상징인 메타세쿼이아 숲과 스카이타워가 잘 바라보이는 곳으로 사진 찍기 안성맞춤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데크전망대의 한쪽 모서리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라고 적힌 안내판까지 세워 놓았다.
▼ 형제산에서 전망봉까지는 금방이다. 잠깐 안부로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놓인 가파르고 긴 나무계단을 오르면 4~5분이면 ‘이동통신 중계탑’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전망봉 위에 올라설 수 있다.
▼ 전망봉에는 ‘이동통신중계탑’ 외에도 전망대 역할을 하는 장태루(壯泰樓)라는 이름의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정자 하나로는 부족했던지 그 앞에다 데크를 따로 만들어 조망(眺望)을 돕고 있다. 전망대에 서면 북동쪽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용태울저수지와 팔마정이 내다보인다. 그러나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다. 잠시 후에 한결 뛰어난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장태루에서 해태산으로 향한다. 이정표(관리사무소/ 형제바위)가 가리키고 있는 관리사무소 방향이다. 관리사무소로 연결되는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팔층석탑(八層石塔)이 자리 잡고 있는 널따란 분지(盆地)에 이르게 된다. 분지의 북서쪽 귀퉁이에는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벤치와 앙증맞은 그네까지 갖춘 쉼터를 겸하고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갈 일이다. 이곳에서의 조망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아까 장태루에서와 같이 용태울저수지와 팔마정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넓이는 훨씬 더 넓어졌다.
▼ 조망을 실컷 즐겼으면 다음은 해태산이다. 그런데 해태산으로 가는 길 찾기가 만만치가 않다.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몇 번에 걸쳐 갈림길을 만나게 되지만 이때 만나게 되는 이정표들 어느 것에도 다음 행선지인 해태산이나 떡갈봉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결하는 방법은 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숲속의 집’ 방향을 찾거나, 이정표마저 없을 경우에는 나뉘는 길 중에서 보다 너른 길을 선택하면 된다. 그렇게 10분 정도 걷다가 ‘숲속의 집’을 0.25Km 남겨 놓았다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 곳에서 왼편 능선으로 난 임도를 따르면 된다. 물론 이곳의 이정표에도 해태산이나 떡갈봉의 방향표시는 없으니 주의할 일이다.
▼ 능선으로 난 임도로 올라서면 잠시 후에 긴 나무계단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이정표(떡갈봉 1.06Km/ 숲속의 집 0.3Km, 관리사무소 1.08Km/ 전망대 0.82Km)와 ‘등산로안내도’가 세워진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떡갈봉이라는 이름이 이정표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분기점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마 주능선에서 휴양림을 안고 있는 작은 능선이 갈려나간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 이어지는 능선은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러나 떡갈봉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그 오르막이 점차 길어지고 또한 가팔라진다. 그러다가 로프까지 매어질 정도로 가팔라진 다음에야 떡갈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형제산 정상에서 42분, 산행을 시작한지는 1시간20분이 지났다. 참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떡갈봉으로 올라오는 길에 해태산이 어디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해태산 정상’이라는 그 어떤 표시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나 정도의 아마추어(amateur)들은 그 누구라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해태산은 못 찾았어도 산에 대한 얘기는 짚어보기로 하자. 예로부터 해태산 부근 마을에서는 화재(火災)가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산봉우리가 마치 불꽃처럼 생긴 화태산 때문이었단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큰 물 단지를 묻고 그 물속에 간수를 넣은 작은 병을 함께 넣어 두고 산 이름도 화태산에서 해태산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 떡갈봉 정상은 떡갈나무에 둘러싸여 조망(眺望)이 일절 트이지 않는다. 그리고 두세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이정표(안평산/ 극남점/ 휴양림 숲속의 집) 하나만 달랑 세워져 있을 뿐이다. 이곳이 정상이라는 흔적을 남겨놓지 않기는 이정표도 매한가지 이다. 다시 말해 이곳이 떡갈봉 정상이라는 공식적(公式的)인 표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이다. 다만 ‘떡갈봉 정상입니다. 건강하세요.'라고 쓰인 가로 80cm 세로60 cm 정도의 파란 양철판(洋鐵版)만이 바닥에 놓여있을 따름이다. 서정(曙井)이라는 이름(또는 號)의 독지가(篤志家)가 제작한 모양인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이곳이 장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떡갈봉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곳 휴양림 주변에는 장태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없다. 아이러니(irony)한 일이지만 휴양림에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가 형제산이고 인근에 해태산과 안평산 등이 있을 따름이다. ‘장태산 휴양림’이라는 이름은 휴양림을 처음 만든 임창봉씨가 ‘장대하고 큰 산’이라는 뜻으로 지어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地圖)에서는 아직까지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산의 이름을 개인이 맘대로 붙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 안평산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길가에 매어진 로프에 의지해서야 겨우 내려설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길이다. 내리막길은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용태울저수지 갈림길’(이정표 : 안평산/ 용태울저수지, 길곡/ 떡갈봉)을 지나서도 계속된다. 그러다가 떡갈봉까지 오르면서 높였던 고도(高度)를 다 까먹은 뒤에야 겨우 길을재에 내려선다. 떡갈봉에서 20분 정도 되는 지점이다. ‘맨발’이라는 분이 매달아 놓은 표지판이 이곳의 지명이 길을재임을 알려주고 있다. 비록 이정표는 없지만 사거리인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용태울저수지가 나오고, 오른쪽 방향은 진산면 막현리(금산군)로 연결된다.
▼ 길을재에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 15분 후에는 이름 없는 고갯마루를 지나게 되고, 산길은 이곳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곧바로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之)자를 그리고 나서야 위로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거리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이다. 고갯마루에서 12~3분이면 ‘분기봉 삼거리’에 올라서기 때문이다. 안평산 정상은 이곳의 오른편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산 지점으로 잡은 용태울저수지는 왼편, 안평산을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함은 물론이다.
▼ 분기봉 삼거리에서 얼마간 더 오르면 산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바위지대로 연결된다. 그리고 바윗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10분 남짓 후에는 안평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 두세 평도 못 될 정도로 비좁은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삼각점(금산 21)과 이정표(조중봉, 장안봉/ 금산신대리/ 장태산자연휴양림)가 세워져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이곳이 안평산 정상이라는 것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준.희’라는 분이 정상표지판을 이정표에 매달아 놓았다. 오지(奧地) 산에서 자주 보게 되는 분인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안평산은 산 속에 만인이 피난을 와서 살 곳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한다. 참고로 안평산하 가활만인(安平山下 可活萬人)이라는 말이 있다. ‘안평산 밑에는 만인이 피란을 와서 살 곳이 있다’는 뜻의 풍수설(風水說)로 이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 정상은 조망(眺望)을 허락하지 않는다. 주변이 온통 잡목(雜木)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조망은 정상에서 분기봉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열린다. 그것도 나뭇가지들 때문에 온전하지는 못하다. 그마저도 연무(煙霧)에 가려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흐릿하기까지 하다.
▼ 앞에서 안평산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때가 묻지 않은 산’이라는 표현을 썼다. 숲이 매우 울창하다면서 말이다. 이런 표현은 안평산에서 용태울저수지로 내려가는 하산 길에서 실감할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산길은 사람의 손길을 거의 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비록 희미하기는 하지만 산길과 숲을 구분할 정도는 되고, 거기다 가끔 나타나는 산악회 시그널(signal)들을 참고할 경우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하산 길에는 가끔 바위지대가 나타나는데, 이때마다 어김없이 조망(眺望)이 터진다. 그 첫 번째는 분기봉 삼거리를 출발한지 15분 후에 터진다. 오른쪽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천비산이 나타난다. 이어서 5분 후에는 또 다른 전망대가 오른쪽 방향의 시야를 터준다. 그리고 10분쯤 후에 나타나는 전망바위에서 조망은 그 절정에 달한다. 장태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 조망을 즐기고 나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스틱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내려서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그렇게 12분쯤 내려오면 잘 써진 묘(墓)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임도에 내려선다. ‘용태울저수지’가로 난 임도이다.
▼ 임도에서 바라보는 ‘용태울저수지’는 그 자태가 자못 빼어나다. 수면(水面) 위로 고개를 내민 바위절벽은 아찔하고, 주변의 나무들은 저마다 여린 잎새들을 내밀고 있다. 물에 비친 연푸른 숲이 하늘보다 더 화사하다. 누군가 그랬다. ‘초봄의 신록은 단풍보다 더 화려하다’고. 햇살이 여린 잎을 투과하면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빛깔들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지금이 딱 그런 시기이다. 피어나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시기 말이다.
▼ 산행날머리는 장태산휴양림 주차장 이어서 저수지 가로 난 임도를 따라 잠시 걸으면 아스팔트도로를 만나게 되고, 길은 이곳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장안사로 가는 길, 휴양림으로 가려면 당연히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어서 잠시 후, 그러니까 임도에 내려선지 9분 후에는 아침에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던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게 되고, 그리고 7분 후에는 휴양림 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35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20분이 걸린 셈이다.
▼ 산행 후에는 자연휴양림을 둘러보기로 한다. 모처럼 찾아온 전국 유일의 ‘메타세쿼이아 휴양림’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장태산 휴양림에서는 두 가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한다. 하나는 메타세쿼이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에코 로드다. 첫 번째인 ‘메타세콰이어’는 두 번째인 ‘에코로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자연히 만나게 된다. 휴양림 전체가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월의 초입, 여린 잎들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 생명의 계절이다. 그 여린 잎새들은 비추이는 빛살들을 하나도 퉁겨내지 않고 그냥 통과시켜 버린다. 마치 성장을 위한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빛을 빨아들인 숲 그늘이 연록으로 변하면서 환하게 빛을 발한다. ‘연록을 물든 잎새는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 휴양림으로 들면 초입에서 흉상(胸像)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이곳 ‘장태산자연휴양림’을 연 독림가(篤林家) 임창봉씨의 흉상이다. 대전의 대표관광명소 12선 중의 하나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자연휴양림인 이곳은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임창봉이라는 개인의 각고(刻苦)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이다. 1973년부터 사재 200억 원을 들여 숲을 조성하기 시작한 그는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민간휴양림을 연바 있다. 그러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경매에 넘어갔던 것을 2002년 대전시가 매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휴양림에는 메타세쿼이아 숲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데크로 만든 길을 따라 연못의 가운데로 가서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소나무처럼 휘지 않고 곧게 뻗는다. 휴양림에서 가장 큰 메타세쿼이아는 2012년 전에 쟀을 때 38m이었다고 한다. 3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메타세쿼이아는 공룡시대부터 살아남은 식물로 알려져 있다. 2억 년 전부터 번성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3200살이나 먹은 나무도 있다. ‘자이언트세쿼이아’라는 나무로 키가 64m나 된다고 한다. 예수나 부처, 공자보다도 훨씬 먼저 태어난 셈이니 ‘세계 최장수 나무’라는 타이틀은 그다지 돋보이지도 않는다. 아래 사진은 에코로드(Eco-Road)의 방점(傍點)을 찍는 스카이 타워(sky-tower)이다.
▼ ‘에코로드(Eco-Road)’는 관리사무소 뒤편에서 열린다. ‘숲속 어드벤처(Forest adventure)’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Forest adventure‘란 꽤 높은 나무들 사이를 연결해놓은 사다리나 다리, 그물, 공중 그네, 줄타기 등을 이용해서 나무 사이사이를 이동하는 체험을 말한다. 이곳 ’장태산휴양림‘의 ’Forest adventure‘은 그중에서 다리를 놓는 방법을 이용했다.
▼ ‘숲속 어드벤처(Forest adventure)’의 대문을 통과하면 조금 후에 또 다른 대문이 길손을 맞는다. 이번에는 ‘숲 체험 스카이웨이(sky-way)’라는 문표를 달고 있다. ‘공중으로 난 길에서의 숲 체험’이라는 길 이름이 조금은 생소하지만 문으로 들어서면 금방 그 뜻을 알아차리게 된다. 30m 정도로 높게 자란 나무들의 중간이나 3분의 2쯤 되는 높이에다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무의 밑동 부근이나 돌아다니던 사람들에게 나무의 허리춤에서 나무를 보게 만든 셈이다. 산책로의 난간에는 숲의 생태계에 관한 다양한 지식들을 게시함으로써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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