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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정 희 시 대 상】 스크랩 안치용/ 김형욱은 마취당한뒤 한국우송.. 박정희로부터 총살당해
심연(深淵) 추천 0 조회 329 09.10.10 16:3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30년전인 1979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사라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박정희 정권의 충실한 파수꾼 노릇을 하다 버림받자 미국에 망명, 의회증언을 통해 거침없는 비난의 포문을 열고 회고록을 남겼던 김형욱

 

실종자는 최종 목격된 날로부터 최소 5년이 지나야 법적인 사망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미국 실정법에도 불구하고 김형욱은 1979 10 7일 실종된지 16개월만에 미국법원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으며 이에 따라 유족들의 유산집행이 이뤄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미국 법원은 과연 어떤 근거로 이처럼 신속하고 이례적으로 김형욱의 법적인 사망을 선고할까.


 

뉴저지에서 발간되는 최대일간지인 버겐 레코드 [Bergen record]지는 1981 3 31일자 53면 기사를 통해 바로 전날인 1981 3 30일 김형욱 사망선고 청구사건에 대한 법원 심리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뉴저지주 한 공립도서관에 마이크로필름형태로 보관돼 있는 이 기사에 따르면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지방법원 하비 스미스 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유족들은 이른바 코리아 리포트프랑스 유력지 르몽드지의 기사 그리고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씨의 진술등을 통해 김형욱 사망판결을 이끌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심리에서 원고는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과 정한 정우 신해등 3자녀, 이들 원고의 변호인은

얼레인 치럿 [ALAIN CHIROT] 과 망명이전부터 김형욱의 고문변호사 역할을 했던 알란 디 싱거 [ALAN D SINGER] 변호사등 2명이었습니다

 

얼레인 치럿 변호사는 오작교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시사주간지에 기사화됐던 이른바 코리아리포트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이 보고서가 미국과 일본 프랑스에서 배포됐다고 기록됨]

 

코리아리포트는 프랑스어로 작성된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정체불명의 보고서로서 치럿 변호사는 이 문건이 일본에서 은밀히 배포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치럿변호사는 이 문건을 근거로 김형욱이 연방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코리안게이트스캔들에 대해 증언한뒤 살해협박을 받아왔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납치돼 마취로 의해 정신을 잃은뒤 화물로 위장돼 서울로 보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치럿변호사는 (회고록 원고가 담겼을지 모르는) 서류가방도 함께 없어졌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치럿변호사는 박정희가 사격장[청와대등 구체적 언급없이 사격장으로 기록됨]에서 김재규와 4명의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형욱에게 2발의 총탄을 발사, 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치럿변호사는 그 누구도 이 문서가 백%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란 단서를 붙였지만 이 기사를 작성한 버겐 레코드지 에드워드 플린 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비 스미스판사는 이 문서와 다른 증거들이 사망을 선고하는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습니다

 

김형욱 망명이전부터 그의 치밀한 망명작전을 도왔던 [?] 김형욱의 고문변호사 알란 디 싱거변호사는 이 재판에서 코리아 리포트를 기사화한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싱거변호사는 미국 법무부로부터 김형욱 실종사건을 조사했으나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날 심리에서 김형욱 회고록 저지를 둘러싼 비밀협상의 일부도 변호사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치럿변호사는 1979 7월 미국내 중앙정보부 책임자인 정태동 주미대사관 공사가 뉴저지주 알파인의 한 식당에서 김형욱을 만나 회고록 출판 협상을 했고 그 다음날 김형욱이 사는 알파인에서 약 1시간 거리인 뉴저지 중부 에디슨 인근 METUCHEN의 모텔에서 정태동 김형욱이 다시 만나 최종 타협을 이뤘다고 전했습니다 [정태동공사가 김형욱이 파리로 갈 때 같은 비행기에 탑승, 뒤쫓았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있음]

 

이 두번째 만난 날 김형욱은 회고록 출판 포기 대가로 2백만달러를 지불하되 다운페이먼트[계약금 등의 뜻으로 해석됨] 50만달러를 스위스은행에 예치하라고 제안했고 정태동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협상이 마무리됐습니다

 

버겐 레코드지는 이 기사에서 전체적으로 회고록 포기대가를 김형욱에게 지불하는 실무를 맡은 사람을 이상열 프랑스공사로 지목했고 치럿변호사는 코리아리포트에 근거, 김형욱과 이상열이 스위스에서 만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치럿변호사는 김형욱이 1979 9 30일밤 파리에 도착, 리츠호텔에 여장을 풀고 10 7일까지 머물렀으나 프랑스내 한국 민족주의자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호텔을 옮기라는 이상열공사의 조언을 받아 웨스트엔드호텔로 옮겼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열은 10 8일 아침까지 잔금이 모두 입금될 것이라고 말한뒤 카지노행을 제안했고 카지노에서 김형욱이 큰 돈을 잃자 SECRET CLUB으로 갈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 클럽은 중앙정보부 요원인 일본인여성이 운영하는 곳으로 바로 이곳에서 김형욱이 마취돼 화물컨테이너에 담겨져 서울로 압송됐다고 치럿변호사는 주장했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도 이날 증언을 통해 남편이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중정부장으로 일했으나 1972년 박정희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남편의 죽음을 직감했다며 김형욱 암살직전에도 위협에 시달렸다고 진술했습니다

 

버겐레코드는 김형욱과 그의 가족들이 지난 1973년부터 알파인의 호화스러운 27만달러짜리 목장형 주택에 살고 있으며 천5백만달러로 추산되는 김형욱의 재산이 김영순과 3자녀에게 상속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결국 하비 스미스 판사는 코리아 리포트와 이를 근거로 한 프랑스 르몽드지 기사 그리고 부인 김영순씨의 증언등을 토대로 김형욱의 법적 사망을 선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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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버겐레코드지 기사의 요약입니다

 

스미스판사는 1981 3 30일 심리를 통해 법적인 사망선고를 하고 일주일뒤인 김형욱의 실종 1 6개월을 맞는 1981 4 7일자로 사망판결문을 정식으로 법원에 파일하게 됩니다

 

현재 스미스판사는 은퇴해 플로리다에 살고 있으나 수차례 이메일과 전화 인터뷰 요청에도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는 미국법원의 김형욱 사망선고와 관련한 심리내용을 담은 거의 유일한 미국 신문으로 추정되며 청와대 살해설을 주장한 브루스 커밍스교수도 이 기사와 자신의 친구인 변호인 형의 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

 

어쨌건 코리아 리포트와 르몽드 기사, 김영순등 유족들의 진술이 사망판결의 큰 근거가 됐고 이외에 어떠한 증거가 제출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사에 나타나지 않은 결정적 사망증거가 제출됐을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생각됩니다

 

버겐레코드가 언급한 김형욱의 27만달러짜리 주택은 이 기사대로 73년부터 이들이 살았는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이 집 관련서류가 1974 8월 처음으로 버겐카운티 등기소에 등장하고 이듬해인 1975 1월 김형욱이 작성한 유언장에도 알파인주택이 아니라 이전 주택의 주소가 기재돼 있었기 때문에 실제 이 집에 입주한 것은 1975년 이후가 아닌가 추정됩니다

 

코리아 리포트등은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도 언급되며 이 블로그에도 원문보고서가 게재돼 있습니다

 

김형욱은 1979 8, 9월 두차례 파리를 다녀왔으며 10월 방문에서 실종됩니다

 

버겐레코드 기사에 근거한다면 1979 7월 회고록 포기협상이 타결됐고 2백만달러중

50만달러는 다운페이먼트로 7월 입금됐으며 8월과 9월 각각 50만달러를 받았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잔금은 50만달러이며 이를 받고 원고를 돌려주기 위해 10월 파리를 방문했다 사라졌다는 가정이 성립합니다

 

김형욱 실종당시 그의 서류가방도 함께 없어지게 됩니다

 

결국 김형욱과 한국정부간에 1979 7월부터 10월까지 한달간격으로 매달 50만달러를 지급하고

마지막 50만달러를 받을 때 회고록 원고와 교환한다 이것이 최종합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김형욱의 재산에 대해 미국언론도 최소 천5백만달러에서 최대 3천만달러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미국언론이 추정한 김형욱 재산규모, 김형욱의 미국 부동산 실체, 치밀한 망명준비, 그리고 김형욱 유언장, 유언장관련 3명의 증인, 상속절차,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공개될까, 김형욱 유족들의 기구한 삶, 김형욱의 미국대학 기부금, 어느 여고생이 알파인에서 만난 김형욱, 김형욱과 유명가수 아버지와의 인연, 김형욱 생존설, 김형욱 묘지의 실체 등등을 문서와 함께 차례로 공개하겠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기사를 백% 원본 그대로 전재하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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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0.11 16:15

    첫댓글 박정희 시절의 비인간적인 사건 중 철저하게 위장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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