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기도: 타인을 위한 기도
읽을말씀: 창18:22~33
주제말씀: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중보기도가 아니라 ‘도고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2:1)
타인(이웃)을 위한 기도를 흔히 ‘중보기도’(Mediator's prayer)라는 용어로 불러 왔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중보기도란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따라서 중보기도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사용될 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유일하신 중보자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4)
그렇다면 우리는 ‘중보기도’라는 말 대신에 어떤 단어로 바꿔서 쓸 수 있을까요? ‘도고’(intercession)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2:1) 여기서 ‘도고’(헬, 엔튜크시스)란 타인을 위한 기도 내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자유롭고도 친밀한 기도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이웃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보기도’라는 말이 성경적 또는 신학적으로 오해를 줄 소지가 있으므로, 가급적 이 말 대신에 ‘도고기도’라는 용어로 바꿔서 사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브라함의 도고!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18:32)
창18:22~33은 성경 전반에 걸쳐 가장 간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도고기도입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기도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즉 처음에는 의인 50명을, 다음에는 45명, 40명, 30명, 20명, 그리고 마침내는 10명까지 제의했고, 하나님도 이에 동의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더 살펴보자면, 아브라함은 무조건 여호와의 은혜에만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먼저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하여 호소한 다음에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23~25절) 그 자비와 긍휼하심에 더욱 의지하여 다시 간청하였던 것입니다(26~32절).
둘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춘 채 겸손함으로 나아갔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정확히 파악한 진솔한 신앙고백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27절)
끝으로, 친척 롯만을 위한 편협한 기도가 아닌, 오히려 성중의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오십 의인 중에 오(五)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24,28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되, 무조건 여호와의 은혜에만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먼저 그분의 공의에 의지하여 호소한 다음에, 또 다시 그 자비와 긍휼하심에 의지하여 간청하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춘 채 겸손함으로 나아가되, 내 가족 내 친지만을 위해 편협하게 구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이고 이타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 도고의 효력과 한계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5,16)
성경은 계속해서 도고의 효력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역시 의인의 간구가 가져올 구체적인 변화와 능력을 증언하고 있구요(‘역사하는’은 헬라어 ‘에네르게오’로써, 의인의 청원이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능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16절 하)
그렇다면 의인의 간구는 무엇입니까? (선행 절에 소개된) 믿음의 기도로써,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서 드리는 기도이자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복하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15절)
한편, 성경은 이와 동시에 도고기도의 한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누군가를 위해서 아무리 간절히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와 구하지 않는다면, 그 효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마치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위해 슬퍼하고 기도했으나, 끝내 사울이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듯 말입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삼상15:35)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삼상16:1)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도고기도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또한 도고기도의 효력 역시 깨닫고 있습니까? 곧 병든 자를 일으키며 낙심한 자를 북돋게 하는 바로 그런 능력 말입니다. 또한 어떻습니까? 도고기도의 한계 역시 깨닫고 있습니까? 즉 누군가를 위해서 아무리 간절히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와 구하지 않는 이상, 그 효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