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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무엇을 깨달았는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깨달음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있고 변화한다.
한마디로 연기되어 있다. 연기법이다. 이 세계는 연기적 세계다. 또 하나는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가? 연기적 사고를 해서, 연기적 인식을 해서 깨달음에 도달했다. 존재의 참모습을 연기라고 하고, 존재의 참모습을 바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연기법이라고 한다. 연기법은 법의 실상을 바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지칭하기도 하고, 법의 실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승불교에서 이것을 반야라고 한다. 반야라는 바르게 인식하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하고, 인식된 결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근본 불교에서는 연기라고한다.
한문으로 해석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말미암아 일어난다. 연기법은 깨달음의 내용이면서 깨달음의 과정이다. 연기적 인식을 하면, 연기적 사고를 하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고, 깨달은 세계의 모습이 바로 연기법이다. 말미암아 일어난다라는 말을 조금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 어떤 현상은 저절로 이루어져 있었거나, 본래 존재했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 연기적으로 존재한다. 조건에 말미암은 발생이다.
A로 말미암아 B가 있다. B는 A와 관계되어 존재한다. A는 B와 관계해서 존재한다. A라고 하는 것은 A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이 있는데, B와의 연관성이 있다. 이것을 말미암아 존재한다, 말미암아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 이것은 저것으로 말미암아 있고, 저것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있다. A와 B는 서로 관계하고 있다.
만약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는 것이 된다. 진리를 보는것이 된다.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보리라.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든것도 아니다. 이법은 항상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여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완전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룬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하고 연설하여 드러내 보인 것이다. 불교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때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과학적 사고방식이고 논리도 과학적 원리와 같다. 철학적으로 접근할때 불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말한다. 보통 종교는 절대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그러한 것이 발붙일 틈이 없다.
태양이 있고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돌고 있다. 이것이 실재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착각을 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돌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 잘못된 생각에 의해서 어떤 행동이나 일을 추진해보니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것이 있고, 그렇게 잘 못 인식하면 엉뚱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실제있는 모습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있다. 이렇게 인식하면 예측한 결과가 나온다. 바르게 인식하든 잘못 인식하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때가 있다. 어떤 사상이 바르게 되어 있든 바르지 않든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는 것은 아니다.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든,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든 농사를 지으면 농사가 된다.
하나의 철학, 종교에 갇혀 있으면 그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인식하면 존재의 참모습을 잘못 인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물은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부처님이 바라보니 세상사람들이 잘못 인식하고 있음을 알았다. 여래가 이 세상이 오든,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존재의 참모습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여래는 바르게 인식하고 깨달아보니 많은 고통과 얽매임이 사라지더라. 그래서 중생들에게 그것을 바르게 인식하도록 분별하고 연설하여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 첫번째가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존재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있는 것에 이유는 있음으로 있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이 서로 의지해서 관계맺고 존재한다. 다른 말로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지고,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이 없어진다. 논 길가의 볕단을 가지고 설명하자. 볕단은 서로 의지해서 기대고 존재한다. 관계를맺으면 있다라고 인식하고 관계를 끊으면 없다라고 인식한다. 실재는 어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무아, 공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식되어지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이고 존재한다는 것은 의지해있다는 것이다.
보살님이 있다. 저분은 아내다. 아내라는 것은 남편이 있어야 아내로 존재한다. 남편이 있음으로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음으로 남편이 있다. 남편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아내는 없어진다. 아내가 아닌데 아내라고 착각한다. 남편과 연관을 맺을때만 아내가 된다. 부모와 연관을 맺으면 자식이 되고, 자식과 연관을 맺으면 부모가 된다. 남편과 아내가 되고 .. 전철에서는 손님이 되고, 가게에 가면 손님이 되고, 학교에 가면 학생이 되고, 절에 오면 신도가 되고 집에 가면 남편이 된다. 인연을 만나면 정해진다. 무엇인가와 연관을 맺어서 존재한다. 존재는 항상 연관되어 있다. 이것을 아는게 뭐그리 중요합니까?
남편이 죽었다고 슬퍼하거나 남편이 죽었는데도 남편때문에 재혼을 못한다. 이럴때 바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고민,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전에 관계맺었던 착각에 사로잡혀 고통이 존재하기 때문이 이 진실이 중요하다. TV를 보고 우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그 순간에는 현실이 되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때는 거먼 통하나 보고 우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꿈을 꾸는 것을 보고, 잠꼬대를 보는 사람은 잠꼬대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꿈을 꾸는사람은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눈을 뜨면 환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내가 아닌데, 아내라고 착각하면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서로 의지해서 존재한다. 의지해서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하나가 쓰러진다. 연관이 끊어지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다. 악을 다 없애면 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악이 없어지면 선도 사라진다. 양반과 농민, 노비도 마찬가지다. 노비가 사라지면 양반도 사라진다. 자본주위와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가 사라지면 자본주의만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는 사라질 것이다. 자본주의가 잘못되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해있던 것이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지는 원리때문이다. 이것은 사물에 공간에 대한 관찰이다. 시간의 관계를 보자.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그래서 존재의 참모습은 유무를 떠난 것이다. 무아가 여기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홀로의 단독자는 없다. 시간적 연관이 사라지는 것을 무상이라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다. 이것을 무상이라고 한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공이 이 관점에서 나온다. 모르면 일체가 다 괴로움이고, 깨달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인식론적 접근이 바로 12연기법이다.
12연기 경전에 의하면 무명으로 인하여, 행이 있고, 행으로 인하여 식별이 있고, 식별로 인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여섯가지 감각이 있고, 여섯가지 감각기관으로 연하여 부딪힘이 있고, 부딪힘으로 인하여 느낌이 있고, 느낌으로 연하여 갈애가 있고, 갈애로 연하여 취가 있고, 취함으로 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로 연하여 남(생명)이 있고, 남으로 연하여 늙음, 죽음, 번민, 슬픔, 괴로움이 있다. 이와같이 아주 커다란 괴로움의 현상들이 일어나며 ...
보리수 아래 나무에서 부처님께서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는데, 해결해야 하는데 과제가 있다. 과제는 바로 괴로움이다.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신이시여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여러가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이든 일부는 해결된다. 일부 괴로움이 없어지면 그 방법이 완전히 괴로움 소멸은 불가능하다. 괴뢰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 명상한 부처님. 절대자에게 의지하면 일부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다. 젊어서는 욕구충족으로 나아간다. 나이가 들면 욕구를 억압한다. 그렇게는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후 일어나는 욕구를 관찰한다. 왜 욕구, 괴로움이 일어나는가? 옳다 그르다의 관점에 서지않고 있는 것을 가만히 관찰한다. 노사는 철학적 용어로 괴로움으로 이해하도 된다. 노병사우비고뇌! 통틀어서 괴로움이다. 노사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노사라는 것은 어떠한 조건에서 형성되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즉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다. 노사, 괴로움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연관지어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 괴로움이 있는가? 내가 괴롭다라고 할때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인가? 늙고 병든다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늙고 병듬은 존재하지 않는다. 괴로움은 현재 존재한다. 괴로움은 어떤 조건속에서 발생해서 유지되고 있는 상태, 사라지는 상태를 노사라고 한다. 늙고 병들어 주는 것은 태어남으로 이어져 있다.
화가 났다라는 것도 웃고 즐기다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화나가는가? 결국 생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 싹이 터서 발생했다. 12연기는 인식에 관계되는 것이다. 발생해서 나타났다. 왜 괴로움이 발생했는가? 왜 태어났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이 있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가? 그렇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있었다. 식물로 말하면 싹이 텄다. 노사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의미다. 있다는 유지되고 앞으로 죽는쪽으로 나아간다. 왜 존재하느냐? 싹이 텄다는 것이다. 씨앗이 있었다. 싹이 틀수밖에 없는 씨앗이 있었다. 겨울에는 밭에서 싹이 트지 않는다. 봄이 되고, 비가 오고 햇빛이 나고 싹이 튼다. 실제는 싹이 올라오는 씨앗이 있었다. 그것을 유(존재)라고 한다. 화를 벌컥내는 것은 그럴 만한 존재(연유)가 있었다. 그렇게 싹이 틀수 밖에 없는 종자가 있었다. 종자가 있더라도 조건을 못만나면 싹이 안튼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유라고 한다.
그럼 무엇으로 말미암아 유가 있었는가? 종자가 있었는가? 이렇게 계속 추구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다 도달하는 것이 무명(무지, 알지 못함, 지혜롭지 못함, 전도 몽상)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현재로부터 출발해서 거꾸로 추구해 들어간다. 지식으로 배우면 관념론이 되어버린다. 철저하게 현재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서 ... 노사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가? 생으로 말미암아 있구나! 생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가? 유로 말미암아 있구나. 유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구나? 유는 취로 말미암아 취가 있구나. 애로 말미암아 취가 있구나, 무엇으로 말미암아 행이 있는가? 행으로 말미암아 무명이 있구나! 무명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무명으로 말미암아 행이있고 행으로 말미암아 식이 있고.....
노사가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이 없으면 노사가 없는가? 생이 없으면 노사가 없구나! 무엇이 없으면 생이 없는가? 유가 없으면 생이 없구나. ....아 무명이 없으면 행이 없구나...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지고, 행이 사라지면 식이 사라지고, 식이 사라지면 명색이 사라지고, 명색이 사라지면.. 생이 사라지면 노사가 사라지는 구나. 이렇게 해서 무명이 사라지는 순간, 무명이 사라지고 노사우비고뇌가 사라진다. 세상 실제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12연기법이다.
담배로 설명해보자. 평소에 아무 생각이 없다가 담배 냄새가 나면, 담배곽을 보면, 주머니에서 담배촉감이 느껴지면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는 동작을 분석하면 12연기가 나온다. 깨어있으면 12단계를 다 알아낼 수 있다. 담배가 있다. 담배가 존재하는 것을 명색이라고 한다. 담배는 이렇게 생긴 것, 이런 존재를 색이라고 한다. 이런 물질이 어디에 쓰이는가에 따라서 커피잔이라고 밥그릇이라 한다. 용도의 존재가 그 존재의 생명이다. 빗자루가 닳아지면 빗자루의 수명이 다했다고 한다. 명색이라고 할때는 그 존재와 그 존재의 이름(쓰임새)이다. 담배잎을 가지고 약을 만들 수 있다. 그럴때 담배라고 부르지 않는다.
똥은 개가 보면 밥이라고 하고, 농부가 보면 똥은 거름이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바깥, 인식대상을 명색이라고 한다.눈에 보이는 것을 명색이라고 한다. 담배연기가 코끝에 부드럽게 냄새가 나면 담배 연기가 명색이다. 시계가 명색인데, 눈을 감고 있을때 시계의 째깍소리가 명색이다. 안이비설신의로 존재를 인식한다. 6개의 기관을 통해서 바깥에 있는 정보가 들어온다. 이를 육입이라고 한다. 본다, 듣는다, 냄새맡는다라고 할때 명색과 육입이 만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본다, 듣는다, 냄새맡는다라고 한다.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명색과 육입이 만나는 것이다.
안이비설신의 그리고 색성향미촉법
두개의 부싯돌이 만나면
손이 부딪히면 소리가 난다. 소리는 어디에도 없지만 손바닥이 부딪히면 소리가 난다. 두개의 부싯돌이 만나면 불꽃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수다. 외부와의 접촉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느낌. 영어로 feeling이다. 생각과는 다르다. 그 순간에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것이 생각이다. 인식이다. 담배한대 피워야지.. 전에 담배한대 피우고 싶다가 있다. 이후에 피워야지가 찾아온다. 담배연기가 코끝에 스칠때 기분 좋은 플러스 반응이 일어나면 하고 싶은 것이고, 마이너스 반응이 나오면 하기 싫은 것이다. 하고 싶다 하기 싫다라고 하기 전에 느낌(feeling)이 있다. 이것을 3일쯤 관찰하면 알게 된다. 마음을 내놔라 이말은 feeling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관찰이 안되면 생각을 이야기 하게 된다. 수 다음에 ~~하고 싶다라는 갈애가 나온다. 그다음에 해야지가 바로 취다. 취라는 의지, 말, 행동..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업이다. 마음으로 취하든지, 말로 취하든지, 행동으로 취하든지...
담배를 보고 물때까지 과정을 보면 명색과 육입이 만나서 호의 적인 반응이 일어나서 감정이 일어나고 행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행동을 하면 .. 습관이 남아있는 것(씨앗)을 유라고 한다. 하나의 사고나 하나의 동작이 시작이 되어서 끝나는 것이 순식간에 8가지 과정을 거쳐 일어난다. 명색으로부터 유까지.. 8가지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첫댓글 노사(괴로움)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생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생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유(존재)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유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취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취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애(갈애)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애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수(느낌)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수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촉(접촉)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촉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육입(여섯가지 감각기관)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육입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명색(물질)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명색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식(업식)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식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행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행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무명(밝지 못함, 지혜롭지 못함, 전도몽상)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결국 삶의 고통(괴로움)은 무명으로부터 일어나는구나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라는 12연기로 존재하는구나
무명타파가 중요하구나
무명타파를 위해서는 12연기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지혜를 아는 것이구나
그래서 12연기는 깨달음의 과정이요, 깨달음 차체다!!!
정말 잘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