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거래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외출하려는데 오늘이 장모의 입제일 이라고 아내가 말한다. 서둘러 까만 정장을 차려입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사방에 흩어져 살던 자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든다. 차 문을 열며 나오는 고인의 아들딸 며느리 사위 손주 얼굴이 눈에 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마다 반가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왔어”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장인이 아무런 말 없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돌아보면 이 집은 장인의 서사가 흐르던 곳이다. 한때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그들이 성인이 되자 부모의 뜻에 따라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비틀거려, 그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여러 해 헛농사 지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버거운 삶은 끝나지 않았다. 자식을 가르치고 성장한 자녀를 독립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땅뙈기마저 자식들에게 몽땅 내주었다. 그간 거래가 윤리적 거래인지, 합리적 거래였는지 모르나 뒷이야기가 분분하다. 이제 모두 떠나고 무성한 잡초와 백발의 노인만 남았다.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농사를 지으면 자식들에게 쌀이나 고춧가루를 챙겨주고 배추김치나 깍두기를 담아 주던 기억이 언제 생각해도 가슴에 모닥불처럼 타오른다. 또한 자식들은 찾아와서 거실을 청소하고 집주변에 풀을 뽑고 음식을 마련했다. 이런 모습이 도덕적으로 윤리적 거래 아닐까. 하나 요즘 물질을 중요시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합리적 거래를 고집하는 이가 있다. 현직에 있을 때 노인정책을 담당하며 외롭고 쓸쓸한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결과적으로 물질이 오가는 것보다 사람이 오가는 게 좋다고 했다.
목욕탕으로 향한다. 가끔 그와 다니던 목욕탕이라 이발사가 반갑게 맞는다. 이발을 부탁하며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깨끗하게 면도해달라고 덧붙였다. 머리를 깎더니 따듯한 물수건을 턱 위에 올려놓고 어깨까지 주무른다. 순간 그는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양 흡족한 표정이다. 이발이 끝나고 목욕탕에 들어가 그의 등을 밀고 머리를 감기고 온탕에 들어갔다. “무척 시원한데.”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하더니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예전 같으면 혼자서 거뜬히 해냈을 일이 이제는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할 처지다.
마침, 중복 날이다. 그를 소문난 산삼 삼계탕집으로 모셨다. 잘 곤 산삼 삼계탕을 주인 여자가 가지고 와서 뼈를 발려내고는 맛나게 드시라고 하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이어 고즈넉한 산사 부근 찻집으로 옮겼다. 낯선 모습이다. 그의 귀가 어두워졌다. 바로 곁에서 묻고 되묻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말이 온전히 닿지 않는다. 세월은 사람의 몸에서 힘을 하나씩 거두어 간다. 걸음을 늦추고 말을 어눌하게 하고 눈과 기억을 흐리게 한다. 이제 귀로 듣는 힘마저 빼앗아 가니 가슴 아픈 일이다. 크로노스(chronos) 시간 앞엔 속수무책이다.
해 질 무렵 그와 돌아왔다. 가족들이 제사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큰 처남의 댁이 언제 지내냐고 물어 오기에 바로 지내자고 했다. 다음날 모두 직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 하지만 제례는 정중히 지냈다. 예전 향교에서 성현들에게 석전 제향을 올릴 때 초헌관을 맡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고 제물을 정갈하게 진설하여 올렸다.
장모의 제사는 끝났다. 저녁이 늦어서인지 배고픈 모양이다. 너른 밥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기 바쁘다. 그 모습을 엿보았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 와중에도 얼굴을 마주 보고 안부를 물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모처럼 여럿이 모여 떠들썩하니 사람 사는 듯한 온기가 돈다.
아마 오늘 하루 장인은 행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잠시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자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웃음소리, 자동차 소리, 사람의 말소리가 차례로 멀어지더니 금세 집안에 적막감이 스며든다. 문밖에 불빛이 하나둘 꺼지자, 삽시간에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언뜻 그를 보니 눈가가 젖어 있다. 불현듯 그가 홀로 세상 끝에 버려진 느낌이다.
가슴이 막 무너져 내렸다. 차에 올라타 한동안 시동을 걸지 못한 채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재물이 없어서, 사랑이 없어서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다. 오히려 웃음소리가 사라진 자리, 발소리가 멎은 자리, 자동차가 떠난 빈자리에 고독과 쓸쓸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자식은 찾아오지만, 떠나야 하고, 사랑은 존재하나 곁에 늘 머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차마 발길을 뗄 수 없었다. 아직 내게 윤리적 거래 의식이 남아 있는가 보다. 밤이 이슥해 다시 차에서 내려 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누울 자리를 펴 드리고 곁에 나란히 누웠다. 머릿속에 수많은 실타래가 엉켜서 있는 듯하다. 사람은 떠나도 집은 남는다. 아니다. 머지않아 집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마지막 남는 것은, 어찌 보면 한때 이 집을 채웠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의 귀에는 이제 그 목소리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조금 더 큰 목소리도 말을 걸고 싶다. 잘 들리지 않든 대답하지 못하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곁에 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 감사합니다
수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