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달 교수의 역사칼럼(92)
교주고슬(膠柱鼓瑟)
거문고 줄받침을 아교로 붙여 놓고 연주한다.
권중달(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현재 인공지능(AI)의 발전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니다. 과거 여러 사람이 며칠씩 매달리던 방대한 자료 분석을 짧은 시간에 처리하고, 소프트웨어 개발, 번역, 법률, 회계, 의료 등 전문 영역에도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생산성과 사회 구조를 바꿀 문명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 변화는 정치인의 기획이나 국가의 명령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술과 생산성 향상을 추구한 연구자, 기업, 생산자들의 경쟁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다. 그러나 자본과 데이터를 선점한 소수에게 성과와 부가 집중되고, 일부 노동자는 일자리의 소멸이나 전환 과정에서 생계 불안에 직면할 수 있다.
이때 정치의 역할은 기술 발전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성과가 독점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변화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에게 재교육과 새로운 일자리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설계해야 할 대한민국 국회는 어떠한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보다 정파적 이해와 차기 권력을 둘러싼 대립에 더 힘을 쏟고 있지는 않은가.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과거의 진영 논리와 당리당략에 붙들려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교주고슬(膠柱鼓瑟)의 어리석음이다.
교주고슬은 슬(瑟)의 줄을 받치는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연주한다는 뜻이다. 곡조에 따라 기둥을 움직여 음을 조절해야 하는데, 이를 고정하면 변화하는 곡조에 맞출 수 없다. 곧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방식과 지식만을 고집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전국시대 조(趙)나라와 진(秦)나라가 맞붙은 장평대전(長平大戰)에서 유래한다. 진나라가 한(韓)나라 야왕(野王)을 점령해 상당군(上黨郡)과 본국의 통로를 끊자, 상당 태수 풍정(馮亭)은 진나라 복속을 거부하고 상당을 조나라에 넘겼다. 조나라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전쟁은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조나라 명장 염파(廉頗)는 초기 손실 뒤 보루를 지키며 진군을 지치게 하는 지구전을 펼쳤다. 진나라는 “두려운 장수는 염파가 아니라 조사(趙奢)의 아들 조괄(趙括)이다”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조급해진 효성왕(孝成王)은 반간계에 넘어가 염파를 해임하려 했다. 인상여(藺相如)는 조괄이 병법에는 밝지만 실전 경험과 변화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며, 그를 쓰는 것은 기둥을 아교로 붙여 슬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왕은 경고를 듣지 않았다. 조괄은 염파의 방어 전략을 버리고 공격했다가 진나라 명장 백기(白起)의 유인책에 걸려 퇴로와 보급로가 끊긴 채 전사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고, 조나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는 상당을 받아들인 조정의 판단과 왕의 조급함, 인사 실패가 함께 빚은 결과였다. 그러나 변화하는 전황보다 익힌 병법을 고집한 조괄의 태도가 파국을 재촉했다는 점에서 교훈은 분명하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정치가 국가에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는 전한(前漢) 말기에서도 확인된다. 전국시대와 진나라, 한나라 초기 이래 확산된 철제 농기구와 우경(牛耕), 수리시설과 농업 기술은 전한 중기와 후기에 더욱 발전했다. 상업과 교통, 화폐 유통도 확대되면서 부를 축적한 상인과 지방 유력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생산력 향상이 모든 농민의 생활 안정을 뜻하지는 않았다. 세금과 부역, 재해와 고리대로 토지를 잃는 농민이 늘었고, 호족(豪族)들은 이들의 토지를 차지해 대토지를 형성했다. 농민은 소작농이나 유민이 되거나 호족에게 의탁해 국가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 결과 조세와 요역을 비롯한 통치 기반도 약해졌다.
이에 대응하려면 토지 겸병을 억제하고 조세 부담을 조정하며 지방 유력자의 성장을 통제해야 했다. 이를 위해 법률, 재정, 호적, 토지, 유통 문제를 처리할 전문 관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성제(成帝) 재위 중후반부터 황제권이 약해지고 왕씨를 비롯한 외척(外戚)이 조정의 중심에 서면서, 국가 행정은 사적 권력 경쟁과 가문의 이해관계에 흔들렸다.
모든 유가 관료가 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부 인사들이 경전과 고대 제도를 현실을 검토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이용한 데 있었다. 실무자의 의견을 무시하면 행정의 전문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흔히 전한의 멸망을 왕망(王莽)의 실정에서 찾지만, 그의 등장은 누적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모순이 한계에 이른 결과였다. 왕망은 토지 겸병과 빈부 격차를 바로잡으려 왕전제(王田制), 노비 매매 금지, 화폐 개혁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변화한 현실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기보다 고대 주(周)나라 제도를 되살리려 했고, 준비 없이 개혁을 강행해 혼란을 키웠다. 여기에 변경 전쟁과 황하 범람, 기근과 유민 증가, 적미(赤眉), 녹림(綠林)의 반란까지 겹치면서 신(新)나라는 무너졌다. 현실을 살피지 않고 옛 제도를 기계적으로 복원하려 한 태도 역시 교주고슬이었다.
조괄과 왕망의 공통점은 옛것을 따랐다는 데 있지 않다. 변화한 현실과 실무자의 판단을 외면한 채 정해놓은 명분과 방식만을 고집했다는 데 있다. 과거의 지식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자산이어야지 현실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인공지능 혁명도 생산력 발전과 함께 새로운 양극화의 위험을 가져오고 있다. 일부 기업이 기술과 데이터를 독점하고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성격이 바뀐다면, 경제적 부가 증가해도 사회는 불안정해질 수 있다. 기술이 창출한 부를 어떻게 분배하고, 밀려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할 것인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치 과제다.
이를 해결하려면 기술과 시장, 노동과 복지, 조세와 산업을 이해하는 전문 관료와 실무자의 경험이 존중되어야 한다. 선출된 정치인은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하지만, 전문적인 행정 판단까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왜곡해서는 안 된다.
국회가 직업 공무원과 전문가를 국가 과제를 함께 해결할 동반자가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취급한다면 제대로 된 정책은 나올 수 없다. 실무자의 의견이 정책의 타당성보다 어느 정파에 유리한가에 따라 채택되거나 묵살된다면 국정 운영의 전문성도 무너진다.
시대가 변하면 정책과 제도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를 성급히 강요해서도 안 된다. 교주고슬의 반대는 무조건 옛것을 버리는 데 있지 않다. 변화하는 현실을 정확히 살피고, 축적된 경험과 전문적 판단을 바탕으로 제도를 조정하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곡조에 맞추어 국가의 음을 조율하지 못하고 과거의 진영 논리와 당리당략만을 고집한다면, 국가와 국민을 이어주는 신뢰의 줄마저 끊어질 수 있다.
첫댓글 인공지능이 우리의. 생활 깊숙히 들어 왔음은 자타가 공인합니다. 이에 대한 대응의 문제를 적시해 준 점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 구성을 적절히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현실이 이런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능력 을 초월함과 미숙함에. 대한 논의도 해야할 것입니다. 전문가 집단이 법제정에 참여해야 길을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우리의 전통자료를 업데이트하는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문제에 질문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부족한 점을 찾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는 인공지능의 활용이 문제입니다. 데이터센터의 내용믈 채우기 위해 전통문화의 개발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