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밤새도록 의기투합하다 새벽 5시 못미쳐 기진맥진해서 쓰러졌다가,
아침 8시경 해장국에 막걸리 한잔.
흥이 도도해졌습니다.
와중에 토요일 신문에서 '펜슬(Pencil)과 페니스(Penis)의 어근(뿌리)이 같다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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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
왕건이 패퇴한 길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왕건길의 시작은 신숭겸 장군 사당이 있습니다.
잠간 화장실 들러는 사이에 그만 일행과 떨어져 나혼자가 되었고...
미세먼지가 없는 가을하늘 아래 혼자 걸으면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골똘하게'는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복도에서
기막히게 이쁜 여자 다리를 보고
비탈길을 내려가면서 골똘히
그 다리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주 오던 동료 하나가 확신의
근육질의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시상(詩想)에 잠기셔서.......(정현종의 '한 꽃 송이')
왕건길 1코스를 한시간여 걷는 내내,
펜슬과 페니스(이하, 격조높은 산서회의 품위를 위해 P로 칭한다)사이에 그리 멀지도 않구나..
라는 생각을 골똘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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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슬(Pencil)... 나이 들수록 잘 안 쓰게 된다.
P도 마찬가지이다.
펜슬..흑심을 품었다.
P도 대체로 그러하다.
펜슬. 내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P도 이와 다름 없다.
펜슬..-.. 깨끗한 종이를 만나면 마음이 달라진다. 설렌다.
P는 더하다.
펜슬..-..갈고 닦을수록 명필이 된다.
P도 그러하다고 들었다.
펜슬..-.. 책상 옆에 앉은 친구의 파르라니 깍은 연필을 힐끗 보게 된다. 그리고 부러워 한다.
P도 화장실에서 이렇다.
펜슬..-..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적지 않다.
P도 대체로 그러하다. 자기의 흔적, 족(足)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펜슬..-.. 서두르면 종이가 찢어지는 수가 있다.
P도 이런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펜슬..술취하면 명문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잘 쓸수 있을 것 같다.
P도 이런 충동에서 그리 멀지 않다.
펜슬..-.. 전영록의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게
P의 은유라는 걸 아직 밝혀낸 학자가 없었다.
펜슬..-.. 월요일 아침 필통의 지퍼를 열고 펜슬을 꺼내 '내꺼 어때?'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P도 목욕탕에서 이런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펜슬.. -. 값이 비싸다고, 비싼 종이라고 명문을 남기는 건 아니다.
P도 그러할거라 본다.
펜슬..-..많은 글을 남긴 이가 펜슬 탓을 한 이는 없다.
P도 마찬가지. 아직 사드와 카사노바가 P덕분이라고 분석한 이는 없다.
펜슬..-.. 필화(火)를 부리기도 한다.
P도 어떤 경우에는..
펜슬..-.. 쉽게 씌여진 글은 감동이 적다.
P도 이런 비유가 맞다.
펜슬..-.. 밤에 씌여진 글은 아침에 후회한다.
P도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펜슬..-.. 최고의 용(用)은 무용(無用)이다. 부처. 공자. 예수 피타고라스는 글한자 남기지 않았다.
그래도 이천년 넘게 내려온다.
P도 마찬가지이다. 무용의 자- 스님, 신부-가 존경받는 게 이런 소이연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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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뜻을 농(弄)하긴 했지만 그리 속(俗)되지 않아, 왕건길을 홀로 걸은 기록으로 남길만 하겠다.
첫댓글 둘 사이에 그렇게 심오한 연관관계가 있었네요~~~대단합니다~~ㅎ
하하! 펜과 베니스 제목이 펜슬과 페니스보다 더 정감이 있다...
ㅎㅎㅎ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