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이 A형인 사람은 여름철에 유난히 설사병에 잘 걸릴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팀은 A형의 경우 다른 혈액형에 비해 장독성원소 대장균 감염에 의한 설사병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깨끗한 물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매년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장독성원소 대장균의 경우 사람에 장에서 만들어내는 특정 단백질이 유난히 A형의 당에 잘 붙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편, O형인 사람들은 콜레라에 취약하다. 콜레라의 독성이 O형인 사람의 장세포 속 핵심 신호전달 분자를 과도화게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밖에 B형은 췌장암과 심장병에 취약하고, AB형의 경우 고혈압 및 혈액암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인간이 서로 다른 혈액형을 지니는 까닭은 이처럼 질병에 대한 취약성의 차이점을 지니기 위해서라는 게 지금까지의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잉카제국이 스페인 군대의 총칼에 앞서 천연두에 의해 괴멸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남미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들의 혈액형은 100% O형이었다.

사람의 혈액형을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 ⓒ Public Domain
동물의 피를 인간에게 수혈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이는 1667년 프랑스의 존 데니스였다. 그는 오랫동안 고열로 고생하던 15세의 소년에게 동물의 피를 수혈해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동물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는 행위는 그 후 프랑스에서 금지되었다.
사람 간의 수혈을 최초로 시도한 이는 영국의 의사 제임스 브란델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역시 썩 좋지 않았다. 수혈 후 증세가 호전되는 환자도 간혹 있었지만, 사망하는 환자가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치료 목적의 수혈은 금기 사항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술에 성공한다 해도 목숨을 건지는 건 순전히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무엇이 그 운을 좌우하는지는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1901년 인간의 세 가지 혈액형 발표
그 운을 좌우하는 게 바로 혈액형 때문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이는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였다. 1868년 6월 14일 빈에서 신문기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빈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취리히, 뷔르츠부르쿠, 뮌헨 등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1896년 빈대학교의 조교가 된 후 다시 병리생태학을 전공했던 그는 1900년에 혈청학을 연구하다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한 사람의 혈청이 다른 사람의 혈청에 가해지면 적혈구가 뭉쳐서 크거나 작은 덩어리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연구에 전념하게 된 그는 그런 현상이 혈액의 종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01년에 그는 사람의 혈액형을 A형과 B형, 그리고 C형(후에 O형으로 변경)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1년 뒤, 1902년에는 그의 제자인 폰 드카스텔로와 스털리에 의해 AB형이라는 또 하나의 혈액형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란트슈타이너가 분류한 혈액형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적혈구가 A항원을 가지고 있으면 A형, B항원을 가지고 있으면 B형, A항원과 B항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AB형, 이 두 항원이 모두 없으면 O형이다.
즉, A항원을 지닌 A형의 몸속으로 B형 혈액이 들어갈 경우 B항원을 이물질로 인식해 피가 엉겨 버린다. 마찬가지로 B형에게 A형 혈액을 주입해도 A항원으로 인해 피가 엉긴다. AB형의 경우 A항원과 B항원을 둘 다 가졌으므로 A형과 B형, O형의 피를 모두 수혈해도 항원 반응이 없으므로 괜찮다.
하지만 O형은 A항원과 B항원을 모두 가지지 않아 A형과 B형, AB형 중 어느 것도 수혈할 수 없다. 대신 O형은 항원이 없으므로 자신의 피를 A형과 B형, AB형 모두에게 줄 수 있다. 란트슈타이너가 처음에 C형으로 불렀다가 나중에 O형으로 바꾼 이유도 이처럼 O형의 경우 항원 반응이 제로라는 뜻에서였다.
10억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위대한 업적
그가 혈액형 분류에 성공한 것은 치열한 관찰과 연구 덕분이었다. 그는 깨어 있는 시간의 90%를 연구를 위해 사용했으며, 346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부검한 사체만 해도 3639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란트슈타이너는 1922년부터 1939년까지 미국 록펠러의학연구소의 병리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1940년에는 A. 비너와 협동하여 Rh 인자를 발견했다. Rh 항원이 있으면 Rh+형 혈액이며, Rh 항원이 없으면 Rh-형 혈액으로 분류한다. 이외에도 적혈구 항원의 종류는 수백 종 이상이며, 그에 따라 지금껏 밝혀진 혈액형의 종류도 수백 가지나 된다.
란트슈타이너가 밝혀낸 혈액형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 그는 1930년에서야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혈액형 외에도 그는 소아마비 초기에 유효한 혈청을 개발하고 매독에 대해서 연구했으며, 알러지 반응이 면역계의 반응이라는 증거를 최초로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란트슈타이너 덕분에 인류는 수술의 성공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그가 외과 의학의 구세주라는 칭호를 얻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의 혈액형 발견은 지금까지 약 10억 명 이상의 인명을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같은 위대한 과학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대에 그 명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가오는 14일은 국제적십자사연맹과 세계보건기구 등이 2004년부터 제정한 ‘세계 헌혈자의 날’이다. 헌혈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헌혈자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제정된 이날은 바로 란트슈타이너 박사가 출생한 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