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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 |
중요 사실 |
선정 이유 | |
1 |
BC 2003 |
고조선 건국 |
한민족 문화의 원형은 우리 민족의 건국사인 단군조선에 있으므로 이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한민족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할 수 없다. 즉 단군조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우리 민족 본래의 모습을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변화를 거쳐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고조선 건국이 역사적 중요사실의 첫째로 꼽힌다. |
2 |
676 |
신라의 삼국통일 |
외세를 이용하였다는 점과 대동강에서 원산만 까지를 경계로 한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신라가 당의 세력을 무력으로 몰아낸 사실에서 삼국 통일의 자주적 성격을 인정할 수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 문화의 전통을 수용하고 경제력을 확충함으로써 민족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은 의의가 있다. |
3 |
698 |
발해 건국 |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대조영이다.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력한 호족 대걸중상의 아들로 그런 고구려인이 다시 말갈족과 고구려인을 규합하여 나라를 건국함으로써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발해의 건국으로 만주와 연해주의 통치 시기가 늘어났으며 후삼국이 난립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신라의 삼한통일로 한반도로 축소될 뻔했던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발해의 건국은 잃어버린 만주와 연해주를 되찾았다는 것에도 의의가 있다. |
4 |
936 |
고려, 후삼국 통일 |
고려는 옛 삼국과 발해인을 포함한 실질적 민족통일을 완성했다. 또한, 새로운 지배세력이 등장하며 신분질서가 바뀌었는데 골품제가 해체되고 지방세력인 호족이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차차 개방적이고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로 발전했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여 개방성과 다양성의 성격을 갖춤으로써 민족문화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
5 |
1392 |
조선 건국 |
조선은 고려시대보다 더욱 능력을 중시하는 개방된 사회였다. 정치는 양반 관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양반들은 국왕을 견제와 동시에 자신의 정치권력을 확대하려 노력했으며 일반백성들의 생활 향상에도 힘을 기울였다. (고려사회는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문벌 귀족 사회이지만 조선시대는 철저한 과거제로 능력위주의 양반 관료제 사회이다.) 정치 구조는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면서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비되었다. 관리 등용에 능력을 중시하고, 언로를 개방하여 독점적인 권력 행사를 견제하였다. 아울러 6조를 중심으로 행정을 분담하여 효율성을 높이면서 정책의 협의나 집행과정에서 유기적인 연결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조선은 고려에 비하여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중세사회에서 벗어나 근세 사회로 발전한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6 |
1446 |
훈민정음 반포 |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우리말은 쓰고 있었으나, 우리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한자를 사용했으나 우리말을 표현하기도 어렵고, 배우기도 어려웠다. 세종대왕은 백성이 어려운 한자를 쓰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여 우리말에 알맞고, 백성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세계에 많은 민족과 국가가 있고 많은 언어가 있으나 고유의 문자를 간직한 민족, 국가는 많지 않으며 그 문자들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가 바로 우리의 한글이다. 이러한 한글은 우리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는, 어떠한 문화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기에 역사적 사건에 올린다. |
7 |
1592 |
임진왜란 |
임진왜란 이후 국토의 1/3 이상이 황폐화되어 농사를 짓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7년간 거듭된 전쟁으로 수많은 백성이 끌려가 희생되어 인구가 줄고 경복궁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변화시켰으나 우리나라엔 상처뿐인 이 사건을 중요 사건으로 꼽은 이유는 마이너스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의 결과 국가의 재정이 악화하여 납속첩(신분상승 가능)과 공명첩(관직에 자기이름만 넣어서 형식적인 양반이 될 수 있음)을 돈으로 사고팔아 신분제도에 변화를 가져왔고, 끌려간 사람들에 의해 일본의 도자기공예나 성리학이 발전하기도 했다. |
8 |
1894 |
동학농민운동 |
동학농민운동은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우리 역사에 빛나는 개혁 운동이며 외세를 몰아내려는 민족 운동이다. 이 봉기는 갑오개혁과 항일운동으로 이어지며 자주국가, 새로운 사회건설을 소망한 농민의 희망을 드러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
9 |
1945. 8. 15 |
대한민국 정부 수립, 광복 |
5천 년 한민족의 역사가 역사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제치하에서 "우리" 주권과 국토를 상실했었으나 다시 우리나라가 주권을 찾게 된 사건이다. 즉, 자주국으로 다시 거듭났음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서양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입헌군주제를 표방함으로써 이전의 고려, 조선의 전제왕권과는 사뭇 다른 근대적인 형식의 나라를 이루었다. |
10 |
1950.6.25~1953.7.27 |
6·25전쟁 |
작게 보았을 때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내전으로 한민족 역사에 기록된 이 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의 분단은 완전히 정착되어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같은 민족임에도 적개심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크게 보았을 때에는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미국과 소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파생된 냉전이란 양극 체제의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으며 산업시설의 파괴, 엄청난 인명 사상 등으로 남북 간 회복이 더욱 어려워졌다. 당시 남한이 아시아에서 공산화를 막는 데 주요한 국가였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일면도 엿볼 수 있다. 6·25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의 정세를 결정지은 사건이었다는 데에서 우리 역사의 중요 사실로 선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 다음 발표
가. 발표자 : 최연호 학우
나. 발표 제목 : 민족사의 여명과 함께 밝아온 문화유산들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다. 발표 내용(200字내외) : 문화유산은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입니다. 근대에 이르러 국가와 지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지구촌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문화적 보편성과 반대되는 개념인 지역성 특수성은 오히려 빛을 더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문화유산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오랜 시간 전, 민족사의 여명을 열었던 시기의 선조들의 생활상이 어떠했는지 알기 어려운 것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와 관련된 공동 삶의 원리를 추출해 나가다 보면 선조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들을 읽어 내는 단초를 발견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실마리가 되어주고 있는 문화유산들을 찾아보고 함께 생각 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발표 주제 : 歷史와 윤리교육은 어떤 관계인가?
2. 발표자 : 윤리교육과 김이환
3. 연표 :
연월일 |
한국사 |
세계사 |
비고 |
1623. 3. 13 |
인조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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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 1. 19 |
제임스 와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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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 12. 14 |
조지 워싱턴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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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2. 2 |
독립문 건립 기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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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4. 7 |
서재필,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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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9. 5 |
황성신문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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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11. 17 |
을사조약 강제 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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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6. 24 |
일제, 한국 경찰권 완전박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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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12. 14 |
아문센, 인류 최초로 남극점 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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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8. 11 |
독일 바이마르헌법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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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4. 3 |
스탈린 소련공산당 초대 서기장 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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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5. 12 |
일제 한국서 치안유지법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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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7. 14 |
조선일보 문자보급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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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4. 18 |
국제연맹 해산 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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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5. 23 |
38선 월경 금지 |
역사를 배우려 사람들에게 목차 같은 존재의 발표였습니다. 어느 무엇이든 기초개념이 탄탄하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의 공부가 될 수 있는데 이번 발표를 통해 기초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다소 텍스트 중심의 PPT가 된 것 같았습니다. 또한, 발표자가 목소리와 빠르기를 세심하게 신경 쓰는 배려심이 느껴졌지만! 말할 때 호흡이 짧아서 그런지 문장을 끊어 읽는데 엉뚱한 곳에서 끊어 읽어서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이 빠르다고 느껴졌던거 같습니다.
태백산맥의 한글자료에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글로 쓰이고 역사가의 선택에 의해서 쓰인 기록이지만 결국은 만들어진 사료입니다. 결국, 보는 사람의 해석에 의해서 판단하게 됩니다. 저 또한 역사책을 다른 소설책, 문학 작품을 보듯이 "이게 사실일까?"라는 생각보다는 "아,그렇구나!"라는 수용적인 태도로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세는 역사책을 읽는 데는 독이 되는 행동인 것을 이번 발표를 통해서 다시 알아볼수 있었습니다. 또한, 역사를 보는 비판적 시각이 역사책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그저 관습적인 관행을 따르기보다는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관습 개선을 노력해야겠습니다.
발표를 시간 안에 끝내려는 급한 마음에 호흡이 너무 짧았네요.^^;; 다음 발표 때 반영하겠습니다. 호평과 지적, 감사합니다.^^
* 최민지 : 내용없는 의례적인 댓글입니다. 발표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 되도록 댓글을 보완하세요.
수정했습니다.^^
과연 어떤 자세로 우리가 발표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발표였습니다. 순수한, 그러나 자심감 넘치는 그 발표 앞에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사학이 나아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생각납니다. 윤리와 역사의 통합적 사고를 통한 통섭적인 접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근대의 한국 사학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그것이 시대적 상황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참작해서 판단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했던 제 발표가 도움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최연호 : 내용없는 빈약한 댓글입니다. 발표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 되도록 댓글을 보완하세요. 1) 한국사학이 나아 가야할 -> * '할'을 앞말과 띄어 써야 하는 이유를 [바르고 고운 우리말 우리글]에 정리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지적하여 주신 부분을 <바르고 고운 우리말 우리글>에서 구분하여 정리하였습니다.
한국사학이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제시가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윤리교육의 관계를 항상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 관계로 정리한 점이 이 수업을 듣고 있는 이유를 뒷받침 해주네요. 또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하지만 책 내용을 그대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보태어 삶에서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생생한 의견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다음 발표는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발표에 관한 사항은 다음 발표에 반영하겠습니다. 다음 발표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 김민지 : 내용없는 공허한 댓글입니다. 발표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 되도록 댓글을 보완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많이 부족했던 발표였지만 많은 분의 호평, 감사합니다. 또한, 더 나은 발표를 위해 지적해 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지적해주신 것 중 대표적인 것들을 꼽아보자면 1. 용지를 보고 읽은 점, 2. 말이 너무 빨랐던 점, 3. 파워포인트 자료의 미흡함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항은 다음 발표 때는 좀 더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두 번째 사항은 시간에 맞게 발표를 끝내려다 보니 말이 빨라졌습니다. 다음 발표 때는 여러분을 배려하여 빠르기를 조절하겠습니다. 세 번째 사항은 제가 처음 발표를 하다 보니 자료에도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다음 발표 때는 파워포인트 자료에 내용이 너무 많았고, 글자 색이 보이지 않았던 사항들을 고려해 수정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사항 3가지 외에도 부족한 점들을 지적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다음 발표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식민주의 사관과 왜 그게 맞지 않는지에 대한 반론 또한 한국사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점이 좋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ppt자료의 글씨 색이 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먼저 <역사와 윤리교육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주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우리가 [민족과역사]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부단한 상호 대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윤리 역시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이환 학우께서는 역사와 윤리가 별개의 과목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해 냄으로써 자칫 쉽게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문제를 다시 한번 인식 및 제고시켜 주었습니다.
발표 면에서는 <한국사신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서장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외적인 면에서 봤을 때 자신의 목소리 크기에 대해 청자에게 지속적인 확인을 하는 등 청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피피티 중간에 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은 청자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준비해 온 발표문을 들고 그대로 보고 읽는 모습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또, 피피티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한국사신론>을 단순히 요약만 한 것 같은 점 역시 아쉬웠습니다. 내적인 면에서는 '한국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歷史와 윤리교육'부분이 잘 정리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김이환 학우는 주제와 연관된 ‘역사와 윤리교육’부분에서 잘못된 역사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역사에서 비판적인 시각의 필요성을 교육에서의 관습을 개선하는 것으로 연결 지은 점이 와 닿았습니다. 미래의 윤리교사로서 역사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역시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와 윤리교육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발표주제에서부터 윤리교육으로서의 민족과 역사를 이해하려는 고민이 묻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발표내용도 한국사신론의 서장의 내용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현재에 문제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이 부분을 윤리교육으로서의 민족과 역사라는 주제로 끌어내기 위해 윤리교육의 간접경험의 중요성을 도출한 점이 훌륭합니다. 예비 윤리교사로서 경험은 금보다도 소중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경험한 만큼 가르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또한, 역사와 윤리의 학문 간의 연계성을 지적함으로써 각각의 독립적인 학문으로서만이 아닌 역사와 윤리교육의 간 학문적 관계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역사와 윤리교육의 관계'를 알 수 있었던 발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