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리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면 이곳이 강마을
특별한 기차여행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의향을 물었다.
돌아온 휴일 날 기차여행을 떠날 수 있느냐고.
그는 아내와 함께 가겠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일기예보는 한결같이 중부지방에 큰 비가 내릴 것이라 한다. 우리는 단단히 준비하고 강원도의 정선을 향했다. 장마철이지만 그쪽은 비가 안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우중의 여행 또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침 열차라서인지 실내는 비교적 조용하고 한산하다. 열차는 덕소를 거쳐 양평을 지나자 한강 상류로 들어서는데 마침 강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물안개와 건너편 산이 모락모락 구름연기로 가득하다. 비온 뒤의 풍경 같다. 창가에 앉은 아내는 연신 탄성을 지르며 학창시절 이후 오랜만에 대하는 광경이라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무드에 약한 쪽이 여자라 싱글 같으면 무슨 일이 생길법도 한 그런 분위기이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는 차창에도 쏟아 부어 유리창을 어지럽히고 창 너머를 바라보는 우리는 더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이대로 강원도를 향해 영동선 끝까지 간다면 오늘은 기분이 그만 일 것 같다. 아침 일찍 주문한 김밥을 내 놓았다. 간식 겸 아침 대용으로 나오니 모두 맛있게 먹는다.
어느덧 원주를 지난 열차는 점점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잦아들었다가도 다시 시작하는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물은 금새 불어나서 산골짜기를 흘러내려 작은 시내를 만들고 다시 합류하여 큰 강을 이루어 다리 아래를 가득히 흐르는 물이 속도를 빨리 하고 있다. 목적지에 가지 못한다 해도 빗속에서 오늘만은 기차여행으로 족할 것 같은 기분이다.
지리산에서 물 때문에 혼 난 기억이 있다. 우리가족이 마천골 계곡을 찾아 피서를 갔는데 마침 점심때가 되어 물이 별로 흐르지 않은 계곡의 너럭바위에 자리를 깔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마른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치울 틈도 없이 순식간에 계곡 상류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흙탕물이 몰려 내려오는데 하마터면 익사할 뻔한 사건이었다.
그것도 대낮에 말이다. 불과 몇 초 간격을 두고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골짜기 여기저기에서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금방 강을 이루어 흐르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모여드는 물이 무섭다는 것도 처음 겪었다.
동강레프팅
어느덧 기차는 영월로 접어들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동강과 자연자원을 지닌 영월은 동강의 레프팅이 먼저 생각난다.
7월 말에는 동강축제를 시작하는데 여름방학과 휴가를 맞아 영월을 찾은 관광객들을 위하여 동강 캠핑장, 래프팅ㆍ행글라이딩 체험, 카누, 등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하여 지역 축제의 마당이 되고 있다 한다.
정선 예미역에 도착하였다. 역무원이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 해준다. 외지 손님들이 와서 궁금한 점이나 시시콜콜한 문제를 문의하면 정성을 다해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는 것이 고마웠다.
우리가 보고자하는 동강 연포마을을 가려면 기차로는 가장 가까운 역이 예미역이다.
정선군 신동읍에 위치한 이역은 우리나라에서 유인역으로는 추전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있다. 신동읍에 있기 때문에 신동역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부터 기차는 숨을 고르고 다음 역 조동역을 향해 갈 때는 산꼭대기를 향해 가듯 경사를 타고 오른다. 예전에는 오르다가 힘이 부쳐 뒤로 다시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린다. 우의와 우산으로 안전 무장을 하고 역을 나섰다.
동강의 연포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마을로 정평이 나있다. 역에서 그곳까지는 약 11킬로여서 절반정도는 버스를 타고 나머지는 걷기로 하였다.
2킬로 가량 걸어가면 유동마을이 나온다.
경치 좋은 산 아래 마을로서 버드나무가 많아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는데 마을 앞에 오백년 된 느티나무와 함께 정자가 우리를 맞이한다.
느티나무의 모양새가 보통과는 달리 사람 몸통보다 굵은 줄기가 무려 다섯 가지로 뻗어 올라 규모가 웅장하다.
길손 더러 힘들면 쉬어가라고 정자가 그 곳에 있는 것 같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정자에 앉아서 가져온 떡과 과일에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씩 들이키면서 땀을 닦았다.
좀 떨어진 경로당에서는 노인분들이 음식을 시켜다 놓고서 좌담을 하고 있다. 비가오니 출출하기도 하여 전을 부쳐 먹는다면 적격일 것이다.
개울을 흐르는 요란한 물소리가 제법 귀를 간지럽힌다. 그렇지 않아도 신선하면서도 맑은 공기를 빗물이 씻어 더욱 산마을이 또렷히 보인것같다. 약간의 흥이나니 긴장이 풀리고 몸도 가벼워졌다.
마을앞을 지나가는 2차선의 도로가 산속을 향해 뻗어있지만 차량왕래는 뜸하여 걷기에 매우 좋다. 일반 도로는 빈번한 차량의 소음으로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이지만 이 곳은 참 한적하다. 깊은 산속의 도보여행이 느린 듯 쉬는 듯 산천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마을버스에는 기사와 할머니 한 분이 동승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산넘어 동네 경로 회장인데 지금 시장을 다녀오는 길인 것 같다. 소주 박스와 시장거리 짐이 있는걸로 보아서.
우선 행선지의 거리와 버스시간이 궁금하여 물었다.
“우리는 동강 연포마을을 가려는데 거리가 어느정도 되나요?”
그러자 할머니는 “연포마을을 뭐하러 가려하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표정이다.
“연포마을이 어때서요”
“지금은 나와서 살지만 내가 그곳에서 80년을 살았수”
뭐가 좋아 그곳을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다.
추억의 고향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여태 살아온 그곳은 아름답지 않은가 보다.
1년 2년도 아닌 80년을 그곳에서 살았으니 그것도 사람왕래가 잘 안되던 시절에. 싫증이 날만도 하다 싶다.
나도 지금껏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 좋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삼거리에서 내려 우리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서부터 심산유곡의 그림같은 경치를 맛보며 갓 심어놓은 비닐하우스 콩밭과 참깨 밭, 산뽕과 들풀 등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1-2킬로쯤 가면 띄엄띄엄 산 마을이 몇 채 씩 보인다. 비가와서 그런지 사람구경하기가 어렵다.
마을 건넛편에 진경산수화 속의 그림이 나타난다. 멍하니 서서 첩첩히 쌓인 산중턱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과 구름위로 살짝이 내미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카메라를 눌러댔다. 마침 비가 잦아들어 포기했던 디카촬영을 이때 조금 찍었다.
갑자기 오르막이 사작었다. 모두들 비옷에 우산을 받쳐들고 묵묵히 걷다가 살펴보니 완만한 재를 오르고 있었다. 보통은 길이 멀고 힘들어 재를 넘다 포기 한 사람들도 있다는데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차량 한 대 정도만 지날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 혼자 걷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숲은 우거지고 깊은 산길인데 이런 곳에 동강이 흘러 멋진 자태를 감추고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밭고랑에서 흘러나온 물은 미쳐 빠져나가지 못하고서 포장도로에 넘쳐 우리는 물을 피해 걷는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 멀리 숲 사이로 동강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뱀처럼 절벽아래로 산을 휘감아 푸른던 강물이 불어나 도도히 흐르고 있다.
넘실거리는 잠수교건너편이 연포마을 입니다. 평소에는 강바닥이 보인다.
산중에 교회도 보인다. 덕천리교회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노인 몇 분이 나와 비 구경을 하면서 담소하고 계셨다.
우리를 보더니 “걸어서 저 재를 넘어왔수?”
“예”
“대단합니다.”
“오늘은 연포마을 가는 다리가 금방 넘칠것 같아 건너기 어렵겠습니다.”
“ 한 두 시간후면 다리가 넘칠 겁니다.”
비속에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신기해하는 눈치이다.
동강건너 연포마을을 지척에 두고 건너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서 이곳 덕천 마을까지 온것 또한 우중의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비록 비때문이지만 오늘만 날이 아닐 것이다.
이 지역에 분포한 동강 12경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볼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폐교한 학교에 체험학습장을 만들어 사람들이 찾아들고 영화 “선생 김봉두” 촬영장이 있어 이를 기억하며 찾는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비경 동강이 있어 항상 우리를 부를 것이다.
- 비로인해 촬영이 어려워 사진 자료가 부족했습니다. ju 동강에서 -
첫댓글
형동 씨! 동문 카페로 옮겼어요.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삐래(Beat it)" 음악도 삽입했습니다. 신이 나는 음악으로.
옮겨나르고 이래저래 쉴 틈이 없으시군. 풍성한 카페는 땀과 정성이 아닐까요. 거기에는 '손 님'이 있어 든든합니다.
이번 학고동문 환경 투어 중에 주 교장이 올린 수필에 관심을 두고 얘기하는 동문이 몇 명 있었어요. 내가 기분이 좋던데요. ㅎㅎㅎ
우중에 기차여행 ,,,,
생각만 해도 마음 설레이는데
난
주교장님 덕택에 않아서 강원도 영월 동강이며 연포마을 잠수교까지 구경했으니
주교장님께 답레 할건없어 박수로 감사 드립니다,,,,,
모회장 ! 과분한 말씀이고 가까이 있어도 만나지 못해 궁금하다네.
다음 등산이나 모임때 우리 술한잔 나누세. 올려놓은 좋은 시 잘 감상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