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한주호 준위에 의해 용트림 바위 앞에서 발견되다
천안함 반파 직후 함수와 함미 사이에서 발견되었던 미상의 물체는 천안함과 충돌하여 천안함을 반토막낸 장본인, 바로 '정체불명의 잠수함'(이하 'SUB-X'라 칭함)이었습니다. 'SUB-X' 역시 충돌로 인해 상당 부분 함체에 손상이 발생하였고, 인명피해 또한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함체 손상으로 인한 기동력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SUB-X'는 함미와 함수 사이에 있다가 서서히 움직여 함수 뒤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30여분이 지난 후, 천안함으로 접근하던 고속정 3척 가운데 2척은 천안함을 지나쳐 어디론가 부지런히 달려가는 모습이 TOD 영상에 잡힙니다. 저는 그 고속정들이 'SUB-X'를 향해 달려간 것으로 분석하고 추정합니다.
1. 사고지점과 고속정이 달려온 시점의 천안함 위치
이것을 비교하는 이유는, 사고 순간 천안함의 위치와 침몰 후 30여분이 지난 시점 - 고속정이 'SUB-X'를 향해 달려간 시점의 천안함의 위치를 비교함으로써 238초소의 TOD가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일에 대해 유추해 보기 위함입니다.
238초소에서 촬영된 TOD 영상 상으로 천안함 사고 이후 가장 최초로 화면에 잡힌 시각은 사고순간으로부터 35초가 지난 시점인 21:20:53(실제시각 21:22:33)이며 그때의 방위각은 4070입니다.(좌측 그림) 그리고 38분이 지난 시점에 세 번째 고속정(NO-3)이 천안함을 스쳐 SUB-X를 향해 달려갈 당시의 TOD 방위각은 3400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우측 그림) 이것을 지도위에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안함 사고 직후 238초소 TOD에 최초로 잡힌 지점은 A POINT(방위각 4070)입니다. 그때부터 TOD는 천안함에 고정되어 추적합니다. 이후 일정 간격으로 고속정 세 척이 천안함에 접근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고속정은 천안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지나쳐 버립니다. 세 번째 고속정이 TOD 오른쪽으로 사라질 무렵에는 천안함이 B POINT까지 표류한 상태이며 사고순간으로부터 38분이 지난 시점입니다.
2.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이 사라진 방향은?
그러면 천안함과 충돌하여 천안함을 반토막 낸 잠수함(SUB-X, 위 그림의 분홍색)은 어디로 갔을까요? 두무진 방향일까요? 백령도 방향일까요? 아니면 천안함과 마찬가지로 동남쪽으로 표류하였을까요? TOD 영상을 보면 SUB-X는 함수 뒤로 빠져나와 결국 TOD의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사라집니다. 이것은 마치 SUB-X가 두무진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답은 세 번째입니다. 잠수함 SUB-X는 천안함과 마찬가지로 동남쪽 방향으로 떠내려 왔습니다. 다만, 그 스스로 어느 정도까지는 동력이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동력을 쓰기위에 무던히도 애쓴 결과 천안함과는 표류하는 속도가 달랐던 것입니다. 즉, 기동성에 문제는 발생했지만 완전히 정지된 상태로 표류한 것은 아니란 얘깁니다.
사고후 천안함 함수의 이동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경로는 천안함 사고 발생 다음날인 2010년 3월 27일 오후 김태영 국방장관이 백령도 해병대 초소를 방문한 당시의 기사에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위 기사의 사진에 나오는 브리핑 테이블은 천안함 함수가 표류한 후 완전히 가라앉는 시점(27일 오후 1:37)까지 백령도 서남해안 6개 TOD 초소에서의 관측을 통해 정확하게 추적되고 표시된 내용입니다.
천안함 함수의 이동경로는 국방부가 발간한 천안함 백서에 표류한 시각과 함께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김태영 장관 브리핑 테이블에는 함수가 직선으로 이동한 것처럼 표기되어 있지만, 백서의 자료에는 약간의 굴절(22:25)부분이 존재합니다. 이는 표기하는 시간의 간격이 다름으로 인한 차이입니다.
3. 잠수함의 존재 및 이동경로
천안함의 이동경로에 대해서는 백서에서도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지만, 잠수함에 관한 언급은 일체 없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의 존재 자체를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의 존재를 알리고 밝히는 증거 자료는 적지 않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KBS 기자들의 보도와 증언'입니다.
2010년 4월 7일 KBS는 <한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는 내용의 특종보도를 합니다. 이른다 <제3의 부표>에 대한 논란의 시작을 알리는 그 보도는 하루만에 정정보도에 의해 묻혀버리고, 관련기사는 삭제되었으며 담당 취재진과 데스크는 방통위의 징계까지 받습니다. 심지어 일부기자들은 지방으로 전출되는 불이익까지 당합니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저는 당시 취재를 담당했던 황현택 기자를 끈질기게 설득하였으며 황 기자로부터 당시의 취재자료 일체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내용은 서초동 법무법인의 공증과 함께 재판부에 제출되었습니다. 다음은 당시 취재한 내용의 요약입니다.
(1) 제3의 부표 아래에 시커먼 물체가 가라앉아 있다
길이 60미터 가량의 물체가 수심 20미터 지점에 가라앉아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천안함 함수(47미터)와 함미(37미터)와는 다른 제3의 물체였습니다.
(2) 제3의 부표 지점은 한주호 준위가 직접 찾고 설치하였다
사고후 사흘이 지난 3월 29일, 한주호 준위는 어선을 빌려서 어선의 어탐을 이용하여 수중에 가라앉아 있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부표를 설치합니다. 3월 29일은 바로 전날, 3월 28일 저녁 함수(20:00)와 함미(22:00)를 발견하고 국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던 다음 날입니다. 즉, 함수, 함미가 아닌 다른 물체를 함수, 함미를 찾은 다음날 한주호 준위가 수색하여 찾았던 것입니다.
(3) 제3의 부표 지점은 용트림 바위 앞
제3의 부표가 설치된 지점은 용트림 바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점입니다. 한주호 준위는 그곳에서 예비역 UDT 대원들과 함께 수색작업을 펼쳤던 중 사망한 것입니다. 한주호 사망 후 예비역 UDT 대원들은 부표가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추모제를 열었었지요.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은 천안함과는 달리 사고 지점으로부터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 및 표류하여 결국 용트림 바위 앞에서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그 이동경로는 다음과 같이 추정됩니다.
그 잠수함의 존재가 '잠수함'이라는 용어와 함께 문서로 나타난 것은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시간에 누군가 다가와 전달한 A4 용지 안에 비록 지워졌지만 충분히 식별될 수 있는 상태로 나타납니다. <안 보이는 것 두 척과..>라는 문귀와 <잠수함과 침몰초계함을 건져봐야 알 수 있으며..>라는 문귀 안에 몇 척이 가라앉았는지 그리고 가라앉은 녀석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것이지요.
첫댓글 한준호 준위는 살아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