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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또 씁니다.
샌드아트랍시고 아름답게 그려놓은 강남 사랑의교회 건물을 무자비하게 싹싹 지우고 그 자리에 sgmc를 그리고는 예수님으로 연상되는 분(어떻게 보면 산타 할아버지 복장을 한 코미디언 같이 생긴)이 인간의 추악한 욕심덩어리를 두 팔로 웃음 띠며 안고 있는 것을 보며, ㅇㅁ이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 조차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며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의 섬뜩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를 외치게 하는 그는 정말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일까요? 많은 부끄러움들을 감추고 있을 그가, 하나님을 외치기에 두렵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목사인데... 정말 그래도 목사인데 말입니다. 그의 목사증이 가짜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에게 정말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실까요? 아니면 잘 만 이용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잘 써 먹는 한낱 이용수단일 뿐일까요? 힘들었을 6개월의 기간에 부인과 함께 회개의 눈물을 흘렸어야 할 그가, 부인에게서 동지애를 느꼈다니, 그가 그 기간 동안 부인과 함께 갈아놓은 칼날이 바로 우리의 믿음의 역사의 흔적인 강남 사랑의교회 건물을 폐허화 하고 있는 것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개혁주의의 칼빈 교리의 배는 침몰 시키고 다른 배로 갈아탈 수 있는 자가 아닐까요?
성도들에게 단 한 마디 사전 설명 없이 ‘사도신경 새번역’을 고백하게 하는 것을 보며, 그는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겠다고 느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이 얘기가 올라오지 않나 하고 기다렸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조급함에 저의 약한 필력으로 적습니다. 그가 강남 사랑의교회를 싹싹 지우고 그린 sgmc를 띄우고 ‘사도신경 새번역’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사도신경 새번역 작업이 시작된 배경입니다:
지금 주기도‧사도신경 재번역위원장이었던 이종윤 목사가 시무하셨던 서울교회(통합) 홈페이지(http://www.seoulchurch.or.kr/)에 들어가면 사도신경 새번역 작업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볼 수 있읍니다. 이종윤 목사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지내고,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 대표회장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요, 혹시 2008년에는 설교 중 4·3 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폭력성과 북한 개입설을 말하여 맹비난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2004년 12월 3일 합의된, 주기도·사도신경 새 번역안을 도출했다고 하는 결과물은 아직도 (안)으로 올라와 있는데, 그런 새번역(안)을 우리 교회는 앞장서서 외쳐댄 것입니다. 축구장만한 곳에서 뜻 모르는 응원구호처럼 짝짝 박자 맞춰서 말입니다.
먼저 그 홈페에지에 떠 있는 내용을 소개하면(아마 이것들이 담당자가 없거나 게을러서 수정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떻든 (안)의 상태로 잊혀진 것은 아닐까요?)
함께 올라와 있는 경과보고에서:
경과보고1.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87회 총회는 현행 주기도와 사도신경을 바르게 번역하여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기로 결의하고 1년간 전문위원 9명의 교수들로 연구케 한 바 제88회 총회가 재번역안의 채택은 보류하고 한국교회가 통일된 주기도·사도신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힘쓰기로 결의하다.
[제 생각] “채택은 보류하고 한국교회가 통일된 주기도·사도신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힘”쓴다가 뭔 의미인지 정치를 싫어하는 저에게는 오묘망측한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 말씀은 몇 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두고 다듬어지고 우리가 우리 말로 번역하여 백년 가까이 고백한 그 사도신경은 예배를 바르지 못하게 드릴 만큼 틀렸었다는 것인가요? 그런데 그들이 변경한 새번역을 보면 바른 예배를 들일 수 없었던 것을 찾아내 고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단 하나도 없습니다. 엄마 아빠를 아빠 엄마로 고친 수준이랄까요? 물론 제가 무식해서 하는 소리겠지만, 목사님들 62명이 이름을 걸었으니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하여튼 우리는 그것을 얼떨결에 외쳤습니다.
경과보고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두 기관으로 회원교단인 예장(통합)의 요청을 받아 두 기관 각각 주기도·사도신경(전문)위원회를 구성하다.
[제 생각] 다들 아시는 것처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10월의 세계 WCC 대회에 동참한 많은 분들이 소속된 기관들입니다. 합동교단에서는 함께 하지 않기로 했었지요? 왜 이 에큐메니칼 좋아하는 두 기관이 새번역 작업 했는지 짐작이 가시자요? 제 생각에는 우리 ㅇㅁ도 그때 부산 가서 휘두르고 싶었을텐데 조금은 안쓰럽네요.
경과보고3.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2004년 6월 18일 전문위원회(위원장:이종윤목사)를 구성하고 주기도문 분과(서기:조병수교수)와 사도신경 분과(서기:나용화교수)로 나누어 각각 6차례씩 연구모임을 갖고 2004년 12월 3일 최종안을 내어놓다.(전문위원 명단 첨부)
[제 생각] 감히 수 많은 믿음의 선배, 동료들이 고백해온 그 사도신경을 6개월 남짓한 시기에 단 6번 만나 고쳤다니 그들의 능력에 놀랄 뿐입니다.
경과보고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2004년 7월 22일 회원교단인 예장(통합)의 요청을 받고 주기도·사도신경 연구 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의한 후 9월 10일 특별연구위원회(위원장:이종윤목사 서기:강영만목사)를 구성하고 1차 연구위원회를 시작으로 3차례 연구 모임을 갖고 2004년 12월 3일 최종안을 내어 놓다.(연구위원명단 첨부)
[제 생각] 이 경과보고서4는 위의 경과보고서3과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작한 날짜가 다르고 여기서는 세 차례 모임만을 가졌다니, 별도의 번역작업인 것 같기도 하고요. 동일한 위원장에, 최종안을 내놓은 날짜는 같고, (안)이라고 나와 있는 것은 하나 뿐이니, 함께 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런 것 조차 명확하게 표현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새번역작업을 한 거란 말인가요? 더구나 단 세 차례 모임을 갖고 만들어진 것이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새번역이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새번역을 ㅇㅁ이 그야말로 새로운 터 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기 위한 주문으로 사용한 듯하니 귀신 부르는 무당춤 주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경과보고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특별연구 위원회와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전문위원회는 2004년 12월 3일 합의된 주기도·사도신경 새 번역안을 도출함으로 한국교회연합과 발전에 기여키로 하다.
[제 생각]여기서 그들의 본색이 들어납니다. 결국 새번역 작업의 목적은 ‘한국 교회 연합’(위에는 띄어쓰기가 잘 못 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교파 연합’인 것입니다. 한기총이 한국교회 전체가 사용하기 위해 재번역한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고요, 그들의 면면을 볼 때 그들이 바라는 연합은 WCC를 통한 종교다원주의로의 연합이라는 것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과장 하는 것인지는 계속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새번역팀이 수정한 근거로 제시한 것들은
사도신경 새번역 작업의 번역 원칙은
①750년 공인된 원문 (Forma Recepta)을 기본으로 하여 번역한다.
②원문에 충실하되 항목별 개별성을 존중한다.
③신학적 검증도 함께 한다.
④오늘에 사용하는 언어 표현을 따른다.
⑤결정시 이견이 있을 경우 기도후 다수결로 정한다.
위의 다섯 가지로, 750년 공인된 원문이라는 것만으로는 고려신학대학원 변종길 교수 기독교보 제1033호에 게재한 ⌈새 번역 사도신경, 검토가 필요하다⌋는 글을 통하여 번역의 오류에 대한 지적에서처럼 어떤 원본인지가 불명확하고, 사도신경을 12가지 혹은 14가지 항목으로 나눴을 때, 과연 항목별 개별성을 존중할 수 있는지가 의심됩니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에서의 우리의 고백은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주요내용이기 때문이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존중하는 방법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르다고 한다면 그건 삼신론의 이단이나 하는 소리겠습니다.
오늘에 사용하는 언어 표현을 따른다는 것도, 아직도 쉬운 성경 보다는 개역개정 성경의 판매부수가 월등히 많은 것을 보면 반드시 번역을 새로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견이 있을 경우 기도후 다수결로 정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따지면 2000년이나 된 사도신경을 비록 초기 번역의 절차나 과정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62명 전원이 사도신경 번역팀이 아닐테고 또 세 번 회의에 항상 출석 100%일리는 없음으로, 과반으로 회의가 성립되었다면 그중 다수결이면 반에반반 즉 62명 중 최소 1/8이면 가결된다는 것이니, 기도 중에 성령님이 오른 쪽 귀에 대고 속삭여주지 않으시는 이상, 구번역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하는 것을 불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은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물론 결과물인 (안)에서 그런 어리숙함이 나타납니다. 혹시 지금까지 제 글이 추측만인 것으로 생각드는 분은 다음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제 그런 생각(근거 있는)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새번역에 대한 지적의 글들을 보면 명확합니다. 합동측에서는 몇 달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총신대의 정훈택 교수가 유일하게 팀에 속했습니다. 정교수님의 사도신경에 관련되는 과거 연구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새로 쓰기에는 팀의 일원으로 어려우셨을 것이라...) 합동과 교리적으로 가까운 고신 교수들의 논문을 찾다가 고려신학대학원 변종길 교수가 기독교보 제1033호에 게재한 ⌈새 번역 사도신경, 검토가 필요하다⌋는 글에서 번역의 오류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의 글을 발견 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논문의 내용은, 번역팀이 번역의 원칙으로 삼은 것들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고 있고, 번역결과의 특이점으로 눈에 띄는 ‘유일하신 아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신학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임을 말합니다. 심지어는 국어학적 문제와 문체의 문제도 지적하며 사도신경 새번역이 얼마나 졸속의 작업이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6개월도 못 되는 기간에 더구나 단 세 번(여섯 번?) 모여 다수결로 정한 것이라니 그 정도라도 잘 한 것 아닌가요? 하지만 킴 구성원이 신학적으로 깊은 분들이라해도, 팀 안에 장신대의 나채운 교수(신약학)가 없었다면 그 정도의 졸작이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나채운 교수가 더 전에 사도신경의 수정을 제안한 논문인 ‘사도신경의 우리말 번역에 대한 비판 -그 수정을 제안하면서-’를 보면 지금의 새번역과는 다른 제안들이 여럿 있습니다.
아래에 나채운 교수가 많은 연구 끝에 수정 제안한 사도신경과 우리가 축구장에서 외쳤던 새번역과를 비교했습니다.
[나채운 교수 수정 제안]
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사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과,
죄를 사함 받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새번역(안)]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여러 분들은 어느 것이 더 좋게 느껴지십니까? 사실 우리가 학문적인 것에 관심이 덜하다면 둘 다 말고 구관이 명관 아닐까요? 그래도 나채운 교수의 제안은 분명한 나름대로의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어서, 변교수가 새번역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것들과 여러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새번역에서는 '용서'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회개하는 우리를 죄는 그대로 두고 벌만을 면제해 주시나요? 아니면 우리의 죄를 기억도 안 해주시나요? 우리의 구원은 죄가 덕지덕지 붙은채 형무소 가는 것만 겨우 면하는 구원이 아니라, 죄 많은 우리를 죄 없다 해주시는 은혜의 구원 아닌가요? 새번역을 보면 어딘가 알마니안적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 암송하시겠지만 구관을 한 번 민나 보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다른 말입니다만, 어떤 신학자는 여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네 번의 믿음 표현 보다 세 번이 더 좋다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믿음 교백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겠지요. 다른 언어의 번역은 어떤지, 기독교강요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기회가 되면 꼭 알아보고 싶습니다.
이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나교수가 자신의 논문에서 긴 연구 기간을 통해 정확한 근거를 대며 주장한 여러 가지가 다르게(개악)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진짜 추측도 가능하겠습니다:
회의에서 나채운교수는 나이도 좀 되니까 자기 논문에서의 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 중 여럿이 자신들은 연구해 보지도 않은 것을 우겨댔다. 토론 당사자 모두가 나름대로의 이론적 근거들을 가지고 하는 토론이었다면 ‘사도신경 새 번역에 대한 해설’에 그런 이론적 내용이 빠질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쪽수’로 밀어부쳤을테고 그러다 보니 저런 졸작이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런 분위기가 얼마나 和氣靄靄했을지도 짐작이 갑니다.
여기서 잠깐! 제 글의 목적이 사도신경 새번역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아시지요? 이런 부족한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교단에서 방침으로 정한 것도 아니고(이건 제 짐작입니다만 맞겠지요?) 왜 ㅇㅁ은 입당(?)에 맞춰 시작했을까를, 그의 가장 귀한 손님, 영적 멘토가 ㅈㅇㄱㅁㅅ와 ㄹㅇㄹ목사라는 것을 연관지어 보면, 그가 바꾸고자 하는 교리적 방향이 어디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 심볼도 소속교단과는 전혀 다른, 사랑의 열매 표절로 바꾸고, 그의 부목들은 메시지 성경을 감히 설교에서도 인용하고 하는 것들이 다 어떤 연관성이 있다 싶어 긴 글을 쓰는 것입니다.(쓰다 보니 조금만 더 쓰겠습니다. 입이 터졌나 봅니다.)
그런 ㅇㅁ에게 목자적 양심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제안하는 것은 우리가 쓸 수 있는 무기는 단 두가지.
사법적 대응으로 그를 ㄷㅇ목사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신학적(교리적) 대응으로 멋 모르고 ㅇㅁ에게 박수치는 불쌍한 성도들을 영적으로 깨워야겠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다가 새번역을 옹호하는 목사이긴 하지만 자기 교회(서울영동교회) 성도들이 새번역에 대해 갖게 될 거부감을 줄여주기 위한 그 교회 목사님의 설득 노력을 접하며, 이 sgmc는 어떻게 된 것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바로 비춰놓고는 따라하란 것인지, 이런 안하무인 목사가 또 있겠나 싶습니다. 얼마나 성도들을 무시하는 행동인지 모르겠습니다. 당회는 당연히 안중에도 없었겠고요.
ㅇㅁ은 영적 스승 ㅈㅇㄱ ㅁㅅ와 ㄹㅇㄹ 등 종교다원주의 옷을 이미 걸치고 있는 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도 서서히 색채를 들어내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그 방향의 기관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새번역 사도신경을 예배시간에 바로 고백하게 시켰다는 것이 이미 시작된 것이겠지요?
제가 긴 시간을 들여 이 글을 쓴 이유를 한 번 더 말씀 드리고,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고신측에서 새번역을 반대하는 두 가지 이유를 올립니다. 고신측의 통일된 의견은 아닙니다만,(지금은 그런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교단이 잘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가 잘 났으니까요.)
1. 새번역은 한국교회일치라는 에큐메니즘 차원에서 시발된 위험한 출발이기에 개혁 주의 교회들이 동참하지 않고 있다.
2. 새 번역 시도는 교회일치 전략 및 교리 사상 대교란 전술이다.
끝으로 증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짧습니다. 곧 끝납니다.
우리가 전에 함께 외우던 공동체 고백은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령충만한 공동체가 됩시다’로 우리의 최종 목표를 명확히 합니다. 하지만 ㅇㅁ에게 성령 충만은 그가 최종으로 목표하는 ’그리하여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랑의공동체가 되겠습니다.’로 가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사랑의공동체’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성도들이 무엇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더구나 우리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나요? 다 그가 즐겨 쓰는 미사여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더 영화로와질 수도 없으시고, 우리가 드리는 재물로 그의 곳간을 채워 드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완전하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그를 기쁘시게 해드릴 뿐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영을 밝힙시다! 샬롬!
첫댓글 중요한글이네요
영락교회 등 이 달라진 사도신경을
사용하고있다고 합니다
새번역 신경이 왜 필요한것인지요?
Sgmc 테이프 컷팅을 김 삼환 목사가 할 때 경악을 했습니다...우리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나...
김3ㅎ 목사가 WCC 한국 상임위원장 입니다. 그 사람도 분명 WCC 를 찬성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지만, 성도들 눈치 보느라 표면적으로 말을 못 꺼내고 있다고 봅니다.
사도신경 새번역에 그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새번역 사도신경을 찬찬히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군요.
1. 우리말의 느낌 보다는 번역투의 느낌입니다. 완전 영어 문장 어법에 맞춰서 쓴 듯 합니다.
2. 우리가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는 하지 않지요.
3. 죄 용서 부분에서 기존의 것은 하나님을 주체로 해서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는 걸로 되어 있는데 새 번역에는 우리가 주체가 되서 우리가 용서 받는 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부분은 다분히 의도된 듯 합니다.
저야 일반 신도에 불과하고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지만, 글쓴 님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이 글 보고 인터넷에서 살피니 ㅇㅁㅅ가 일방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고 이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한국기독교교회총연합회(한기총)이 주기도, 사도신경 새번역에 최종합의하고 공포했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제가 잘못 아는 것이라면 알려 주시구요. 이 새번역 과정 참석 교단에는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장, 기감 등등 거의 모든 교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고, 저희 교회는 예장합동 맞지요?
2004년 9월 21일 ~ 9월 24일 예장합동 총회(제 89회총회/당시총회장 서기행목사)시 사도신경을 새번역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말고 기존의 사용하던 사도신경을 사용하기로 총회 헌법으로 가결시켰습니다.
첨부참조(17.신학부 제4항 참조)
기존의 사도신경을 사용하게된 배경에 대해서는 글쓴이가 설명을 잘해주셨기깨문에 더이상 거론하지않고
새번역본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총회 헌법에 위배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총회에 대한 범법자 목사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당시 총회 자료입니다. 첨부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