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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사쿠사 킨류잔(金龍山) 센소지(浅草寺) ※그림을 클릭하시면 조금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킨류잔(金龍山,금룡산) 센소지(浅草寺,천초사)는 일본 도쿄(東京)도내에서 제일 오래되고 가장 큰 사찰이며, 628년 스미다강[隅田川 ; 우전천, 아라카와강(荒川 ; 황천)의 하류]에서 어부 형제가 던져놓은 그물에 걸린 관음상(觀音像)을 모시기 위해 사당을 지었고, 이후 승려 쇼카이가 645년에 절을 세운 것이 센소지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현세 기복(祈福)의 도량(道場)으로, 단일 관광지로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일본의 명소가 되었다. 유명 관광지이니 만큼 입구 상점가는 기념품, 먹거리, 옷가게 등이 좌우로 줄을 대고, 인종시장처럼 내외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며 북적댄다. 도쿄 최대 번화가인 신주쿠(新宿 ; 신숙)보다 더 번잡하다. 관동 대지진과 2차 세계 대전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들은 1960년 이후에 재건한 것이라 한다. 천초사(淺草寺)의 천(淺:浅) 자(字)가 '물 얕을 천'이고, 금룡산(金龍山)은 한국의 사찰과 달리 지세(地勢) 뒤로 산을 등지는 배산(背山)이겠지만 절 뒤로 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 옛날 스미다 강 도쿄평원 구릉지(丘陵地 ; 높이 300m 미만의 완만한 언덕) 둔덕 위의 평지(平地 ; 편편한 땅) 초원 터에서 비롯된 사찰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쿄의 상징, '뇌문(雷門,카미나리몬)'으로 유명한 곳이다. 카미나리몬(雷門) : 아사쿠사의 상징. 제일 눈길을 끄는 100kg의 거대한 무게의 붉은색 제등이다 ▲ 뇌문 앞쪽의 왼편은 雷の神(카미나리노가미, 천둥의 신)이다. 둥! 하고 치면 천둥이 꽝! 떨어지는 북을 메고 있다. 원피스의 에넬이 메고 있는 북이 바로 여기서 따온 것. 오른쪽은 風の神(카제노가미, 바람의 신).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를 들고 있다. ▲ 카미나리몬 뒷편의 신들도 중요한 신이다. '浅草'는 훈독으로 '아사쿠사'고 음독은 '센소'라 이 절의 이름이 센소지(浅草寺)인 것인데, 정식 명칭은 金龍山 浅草寺(킨류잔 센소지, 금룡산 천초사)다. 킨류잔의 용신이 남자의 형태로 현현한게 카미나리몬 뒷편 왼쪽의 天龍像(텐류조, 천룡상)이요, 여자로 현현한 것이 오른쪽 金龍像(킨류조, 금룡상)인 것이다. 제등 뒷면은 風雷神門(후라이진몬, 풍뇌신문)이라 적혀있다. 카미나리몬이 위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던 풍신, 뇌신을 모시는 문이라는 것이다. 제등에는 헤이세이 25년, 즉 2008년 11월에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등의 밑면 용 부조이다 뇌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라고 하는 기념품 상가들이 줄지어 있고 세계각국의 다양한 인종들을 만나게 된다. 250m 정도 되는 좁은 길 양쪽에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상점가 가운데 하나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센소지 경내에서 노역하던 잡부들에게 가게를 열 수 있는 특권을 주면서 비롯된 시장이라고 한다.
▲▼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 뒤안 길에는 당시 유명했던 점포와 사창가였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좌측 옆에는 센소지의 역사를 그린 그림이 있다. 본존의 현신, 센소지의 창건, 자각대사 엔닌이 전립상을 만들고 중흥, 타이라노 킨마사의 중건, 미나모토노 요리모토의 참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보호, 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 천초사의 유래와 관련이 깊은 백제출신 어부형제의 금동불상 건져 올리는 장면의 그림인 '본존의 현신'이다. <속일본기>에 “고구려인 1,799명을 오늘의 관동지방인 무사시국에 이주 시키고 이곳에 고구려군(高句麗郡)을 설치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서기》 천지 5년 겨울조에는 (天智5年冬条)“백제 남녀 2,000명이 동국(東國)에 살았다. 스님과 속인을 가리지 않고 3년 동안 정부로부터 녹읍을 내려 받았다.”는 내용이 보이며 천무 13년 5월조(天武13年5月条)에는 “귀화한 백제 스님과 속인 23명을 무사시국에 옮겨 살게 했다.” 또한 지통 12월조(持統12月条)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백성 62명을 받아들였다.”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관동지방은 고대 한국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
▲ 천초사 보장문(宝蔵門,호조몬) 당시의 관동지방은 사가미국(相模國), 무사시국(武蔵國), 히다찌국(常陸國)을 포함하여 8국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오늘날의 도쿄도(東京都)를 포함한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사이타마현(埼玉県)등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야마토정부의 관동개발 프로젝트 제1진으로 도착한 고구려인들은 풍부한 물과 초원지대를 이용한 대규모 목장을 경영하면서 관동의 세력권을 키워나갔다. 나카미세를 지나면 본격적인 경내의 입구가 영상에서 '산몬'이라고 했던 宝蔵門(호조몬, 보장문)이 나온다. 이곳 제등은 小舟町(코부나초, 소범정)이라고 적혀있는데, 코부나초 마을에서 돈을 모아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보장문은 2층 누각으로 본래 인왕문으로 1960년 오쿠라 중공업의 지원으로 재건되었다. 2층은 문화재 수장고이며 무게를 줄이고 화재를 막기위해 기와는 티타늄으로으로 만들었다.
▲ 보장문(호조몬) 좌우엔 다른 사찰과 같이 仁王(니오, 인왕)들이 있다. 인왕이란 절을 지키는 수호신들을 말한다. 어느 절을 가도 인왕상은 많다. 이 문의 왼쪽 인왕은 吽仁王(운니오, 우인왕)이고, 인왕이 입을 다문 형태를 吽形像(운교조, 우형상)이라 한다. 오른쪽은 반대로 입을 열었기 때문에 阿形像(아교소, 아형상), 阿仁王(아니오, 아인왕)이다. 입을 닫으면 운, 입을 열면 아. 이다 호조몬 제등은 앞면에만 코후나초가 써있고 뒷면은 아무것도 안써있다. 중앙의 빨간제등 양 옆에 두개의 제등이 있다. ▲▼ 위는 빨간제등의 아래의 부조요, 아래 그림은 양 옆의 제등 밑의 부조다
▲ 대형 짚신은 길이4.5m 폭1.5m로 1941년 무라야마시 출신이었던 중위원 마츠오카 토시조가 봉납한 것을 계기로 10년에 한번씩 타테오카 아라마치 번영회의 1500명만들어 바친는데 무게만도 한 켤레에 약 1톤이란다.1940년에 야마가타현(山形県) 무라야마시(村山市) 주민 800명이 한 달 동안 만들어 보내온 대형 짚신이다. 높이 4.5m, 폭 1.5m, 무게 500kg에 달하는데, 마귀를 쫓는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오른편으로 '미쿠지(みくじ)'도 보인다. 미쿠지는 일본의 절이나 신사에 마련된, 제비뽑기 코너를 가리킨다 ▲ 본당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향불을 피우는데 향은 켁켁 기침할만큼 피우고 있으며 센소지 향을 몸에 쐬면 그 부위가 건강해진단다 ▲ 이 본당 제등은 志ん橋(신바시)라고 써있는데, 호조문 제등과 마찬가지로 新橋(신바시)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만들어줬기 때문. 新橋를 志ん橋로 쓴 이유는 変体仮名(헨타이가나, 변체가나)이기 때문이란다. ▲ 본당 앞에 두개의 奉納 御寳前(호노 고호센, 봉납 어보전), 즉 부처님 앞 봉납이라고 써있다.
본당인 관음당, 내부에는 200장이 넘는 쇼군들이 봉납한 에마가 있는데 전쟁전 보수공사때분리해 놓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비불을 모신궁전. 본존은 절대비불이라 현존여부가 불분명하나비불의모습을 재현한 메이지 시대한번 조사하여 나라시대 불상이 있음을 확인했다 한다.
▲ 천정화-일본화의 거장 도모토 인쇼의 작품 ▲ 관음당에서 바라본 5중탑 ▲ 삼봉신사 (三峯社, 미츠미네샤, 삼봉사)
▲ 六角堂(롯카쿠도, 육각당). 여기도 현판에 日限地蔵尊(히기리지조손, 일한지장존)이라고 써있다 일한지장님을 모신 듯...
▲ 影向堂(요고도, 영향당)
▲ 약사여래를 모신 薬師堂(야쿠시도, 약사당). ▲ 五重塔
▲신(神)불(佛)분리 당시 분리된 본래는 진수사였던 아사쿠사 신사가 있다.
▲ 이천문(淺草寺 二天門) ▲▼ 일본 여성들은 전통 의복의 미모(美貌)로 이목(耳目)을 끌려는 의도인지 기모노 착용의 젊은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오른편으로 '미쿠지(みくじ)'도 보인다. 미쿠지는 일본의 절이나 신사에 마련된, 제비뽑기 코너를 가리킨다. ▲▼ 이 일본 처자들이 뽑기에서 '大吉運世'가 터진 모양이다. 즐겁게 포즈를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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