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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호와 흐름/ 자연, 흐름님에 대한 답변, 목차
01) 흐름/ 저는 왜 이런 글(집행부와 국제부의 대죄)을 올렸는지 아리까리 합니다.
02) 길동무/ 이케다 회장께서 대성인에 대해 반역을 하셨다면 바꾸시겠습니까?
03) 길동무/ 처음 탑파회향을 했는데, 3개월 이내에 일평생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 됐습니다.
04) 일월청정/ 부처의 佛意는 불가견무대색 보이지 않지만 문자 즉 가견유대색의 어본존으로
05) 인계의 추억/ 승속화합은 제 사견이 아니라 대성인님의 어유명이심을 부인 하시는 겁니까?
06) 일월청정/ 어본존은 적적좌주 즉 당대의 법주 서사 본존을 유포하는 것이 광선유포.
07) 인계의 추억/ 창가의 뿌리가 어딘지 근본이 어딘지 정말 모르십니까?
● 자연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은 “차명호와 흐룸/ 귀하의 승리가 나의 승리”에서 답변드렸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01) 흐름/ 저는 도대체 명호님이
왜 이런 글(집행부와 국제부의 대죄)을 올렸는지 아리까리 합니다.
학회의 마이너리티 구룹(선의연대, 5.3. 신한위)을 옹호하고 집행부이 잘못된 점을 들춰내서 권력재편을 기도하시는 것인지, 왜 이런 글을 흐름님과의 대화라고 하면서 올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금 저와 대화를 할 때는 학회의 방법에 관한 사항(혈맥단절, 극단적사제불이, 가짜본존)에 대하여 쟁점화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명호님은 논점을 비켜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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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께서 먼저 ‘개혁연대에 대해 ’ 말씀하셨습니다. 실 가는데 바늘 간다고 개혁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집행부의 권력악에 대한 이야기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흐름님의 글을 보면 집행부의 방법을 엄하게 가책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파절해도 되고, 나는 파절하면 안 된다고 하면, 귀하는 권위적인 사람입니다.
지금 이 언론전은 대성인의 편에서 귀하나, 저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사견 없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지금 저와 대화를 할 때는 학회의 방법에 관한 사항(혈맥단절, 극단적사제불이, 가짜본존)에 대하여 쟁점화하면서 이야기를 전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차명호와 흐룸/ 귀하의 승리가 나의 승리”에서 답변드렸습니다.
자연님의 집문도 있어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연님이 질문하신 우상화에 대해서도 “차명호와 흐름”/ 이 시대의 제바달다”에서 경애에 관한 어서를 근본으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2) 길동무/ 이케다 회장 께서 대성인에 대해 반역을 하셨다면 바꾸시겠습니까??? 저는 그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케다다이사쿠의 행동과 궤적>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본문172~173쪽에는 이 두 분의 충돌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는데요. 173페이지 니치렌의 만다라를 닛켄이 베껴서...... "니치렌의 만다라"라고 표현 하는 그 마음이 섬뜩 해지는 대목입니다. 본인 눈으로 확인한 가장 정확한 증거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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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길동무님은 "니치렌의 만다라"라고 표현 하는 그 마음이 섬뜩 해지는 대목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의 만다라" 또는 "니치렌대성인의 만다라" 는 표현은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번역상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신 ‘반역’이라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3) 길동무/ “개안이나 특별한 혼을 집어넣는 의식과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미신입니다. 지배의 수단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현대인들이 대충 이런 면에서 인정하기 힘들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문에서 처음 탑파회향을 했는데, 생경 스럽고 어색 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 이내에 일평생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 됐습니다. 인간고력(아이)의 일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시름 다 잊게 된 듯 너무도 불가사의한 ()...단 타파 공양은 자유의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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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개안(開眼)의 의식이 행해지게 된 것은 기원전후 백년 사이에 인도에서 불상이 만들어지게 된 이후부터이며 불교의 당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개안의식을 행함으로 제작한 불상에 본존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개안의식이 행해지게 된 이래 그것은 승려의 권위와 수입의 중요한 원천으로 되어 왔습니다.
개안의식에 대해 역사적으로 본다면 도중에서 생겨난 것이며 불교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의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개안의식은 특히 진언종에 의해 강조되었고, 개안이라 하는 것은 진언 밀교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되어 왔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이 진언에 의한 개안을 엄하게 파절하시고 개안을 행한다면 법화경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 본존님은 니치렌대성인의 생명의 당체이며 무한한 불력,·법력을 갖추고 계십니다.
어서말씀을 보면, 본존님이 즉 대성인의 마음이라고 믿고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신력·행력에 의해, 어본존에 갖추어진 불력·법력이 발휘되는 것이며 그때 지묵(紙墨)의 본존님은 초목성불의 원리에 의해 대성인의 생명 그자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굳이 어본존에 대해 개안을 말한다면 이상과 같은 것이 그 본의입니다.
● 귀하는 ‘탑파공양’으로 불가사의한 체험을 갖고 게십니다. 그러나 이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입니다. 법이 기준입니다. 닛켄은 1990년 광포파괴의 대모략 ‘C작전’을 획책했습니다. 그들은 정본당을 포함해 대객전 등 선사의 사적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법화경의 적을 대자비의 보살이라도 공양하면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오역의 죄인도 그를 적시한다면 반드시 인천에 생을 받는다”(어서 113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자비의 보살이라도 지옥에 떨어지는 죄, 이것이 ‘불적에게 공양하는 죄’입니다.
● 니치렌 대성인의 가르침에는 “탑파공양을 하지 않으면 고인은 성불되지 않는다” 등의 가르침은 없으며, 성불은 오로지 각자의 신심에 의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위배하고 장례식 불교화되어 탑파공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닛켄종의 승려들입니다. 그것은 신도의 공양을 수입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타락한 모습입니다.
탑파는 인도에서 석존의 유골을 보관했던 불탑이 기원입니다. 본래 부처를 존중하는 의미였고, 고인에 대한 추선공양을 위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추선공양의 본의는 묘법을 수지한 사람의 신심과 실천에 의해 그 공덕이 회향되는 것으로, 근본은 본존님에 대한 근행창제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의 근행에서 추선기원이야말로 소중한 것입니다.
4) 일월청정/ 님의 글 맨 마지막에 특별한 개안이나 혼을 집어 넣는 것은 필요 없다 하셨네요.
목회이상 개안지사 어서 468쪽을 자세히 보세요. “법화경의 문자는 부처의 범음성인 불가견무대색을 가견유대색의 형체로 나타냈으므로 현형의 이색으로 되었느니라. 소멸한 범음성은 도리어 형색을 나타나서 문자로 되어 중생을 이익 케 하느니라” 즉 부처의 佛意 부처의 지혜는 불가견무대색 보이지 않지만 문자 즉 가견유대색의 어본존으로 나타났음을 잘 아시지요. 참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어서 이해력에 서글픔마저 금할 길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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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인께서는 “법화경을 읽으시는 사람은 문자(文字)라고 생각하지 말 것이며 즉 불의(佛意)이시니라…. 법화경을 심법(心法)이라 정하고 삼십일상(三十一相)의 목회상(木繪像)에 인(印)을 하면 목회이상(木繪二像)의 전체는 생신의 부처이니 초목성불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니라”(목회이상개안지사469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본존님에 관한 한 신심 외에 승려에 의한 특별한 개안의식을 새로이 행할 필요가 없으며 정법 광선유포에 사는 우리들이 아침저녁 본존님께 근행창제하는 것이 개안(開眼)의 본의에 걸 맞는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왜 ‘문자’의 만다라로서 어본존을 도현하셨을까요?
대성인은 ‘목회이상개안지사’(어서468쪽)에서 부처가 갖춘 주요한 특징인 ‘32상’ 중에 범음성만은 색심이법(色心二法)의 양쪽으로 나눌 때 유일하게 심법에 속하기 때문에 목상, 회상으로는 부처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고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즉 ‘영원의 부처’라는 것을 나타내서 홍통하기 위해 상(象)이 아닌 문자로 표현하셨다는 것에 깊은 의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부처는 문자에 의해 중생을 제도(制度)하시느니라”(어서 153쪽)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자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 문자에는 영원히 사람들을 구제하는 부처의 역용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 “소멸(消滅)한 범음성(梵音聲)은 도리어 형체(形體)를 나타내서 문자(文字)로 되어 중생(衆生)을 이익(利益)케 하느니라”(어서 469쪽)고 말씀하셨습니다.
묘법을 부르는 일은 어본존을 찬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제천선신이 작용하여 제목을 부르는 사람을 지킵니다.
동지의 행복, 광선유포의 승리, 자신의 인간혁명을 얼마나 진지하게 기원하고 있는가, 그런 멈출 수 없는 마음의 소리가 제천을 움직이고, 벗의 마음을 희망으로, 소생으로, 전진으로 분발하여 일어서게 합니다.
5) 인계의 추억/ 광선유포에 생애를 걸라는 말은 들었어도, 승속화합에 생애를 걸라는 말은 못 들었다 하시면서 그건 저의 사견일 뿐이라고 일축하셨습니다 달리는 자동차에 엔진 고장 경고 등이 뜨는데 계속 질주 하실 겁니까? 그건 제 사견이 아니라 니치렌 대성인님의 어유명이심을 부인 하시는 겁니까? 수어의 마음으로 이체동심으로 신심하라는 말씀은 잊으신 겁니까? 잊으셨다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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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은 위 속은 아래’라는 시대착오적인 불평등의 생각을 갖고 있는한 승속화합이란 이뤄질 수 없는 난제입니다. 민중구제를 위한 승려입니다. 그런데 승려의 권위를 내세워 신도를 억압하려 한다던가, 종속관계를 강요하여 신도에게 봉사를 받으려고 한다면 이는 본말전도입니다.
이와 같은 자는 불제자가 아니며 승려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민중을 수단으로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는 시대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법주는 절대자다”라는 속임수의 논리를 민중은 이미 간파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먹이로 하는 성직자의 쇠사슬은 제거돼야 합니다.
성직자들의 부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멀리는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가까이는 창가르네상스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 중세의 암흑시대는 종교가 만들어냈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종교를 이용한 성직자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성직자는 민중을 절대자인 신의 쇠사슬로 끌어드렸습니다. 그들은 입만 열면 항상 “죽음을 생각하라”고 설교했습니다.
민중의 생활은 괴로웠고, 탄식하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개혁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호이징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괴로운 현실이 나아지는 것보다 죽을 후, 천국으로 가는 것을 보다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성직자에게 그렇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성직자는 자신들이 타락해도, 기독교에 근본을 둔 이 신분사회가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 본래 종교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직자는 종교로 인간을 속박했습니다. 그들은 승은 위 재가는 아래라는 민중에 대한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 부패해 갔습니다.
창가르네상스 운동은 “어본존이라는 근본으로 돌아가라” “대성인의 정신으로 돌아가라” “어서라는 원전(原典)으로 돌아가라”라고 하는 근본정신의 재생, 인간을 위한 종교개혁 운동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야먼 교수는 “현재, 창가학회가 전개하고 있는 ‘종교개혁’은 일찍이 프로테스탄트 혁명이 기독교사(史)에 한 획을 그은 바와 같이 불교사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 운동입니다. 이 눈부신 혁신운동은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실로 종교사의 새로운 출발점이며 새로운 건설입니다.”
미국 델라웨어대학교의 데이비드 노턴 박사도 “평화와 문화의 연대를 일본 내지 세계로 넓히는 창가학회의 활동을 비판하는 종문은 근시안적이며 맹목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종문을 맹목적으로 만드는가 하고 물으면 나는 ‘그건 질투가 그렇게 만든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대성인께서는 “자(慈) 없이 거짓으로 친함은 이는 그의 원적이니라” “그를 위해 악을 제(除)함은 즉 이는 그의 어버이니라”(2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승려들의 부패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 승속화합이나, 수어의 마음, 이체동심하여 사이 좋게 단결 등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거짓으로 친함은 그의 원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체동심하여 사이 좋게 단결하는 열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언뜻 보아 모순된 것 같지만, 자신이 스스로 ‘홀로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진지하게 기원하고 강해져야 합니다. 여기에 ‘신심의 구극의 요체’가 있습니다.
6) 일월청정/ 불교하면 스님을 먼저 떠올립니다. 불교라고 하면서 승려를 부정하는 재가 신도 단체가 무슨 불교인지 묻고 싶습니다. 어서 877쪽에 “이 혈맥 및 본존의 大事는 니치렌 적적좌주 전법의書 탑중상승의 품승 유수일인의 혈맥이니라 단단히 명심하여 비장하고 비장할 지어다” 법화본문종 혈맥상승을 끝냄. 이 어본존은 적적좌주 즉 당대의 법주 서사 본존을 유포하는 것이 광선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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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질문에서 유럽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에 대해 말씀드리고, “창가르네상스 운동”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성직자 최고위에 있는 교황의 타락은 당시 역사에 새겨져 있습니다. 교황 선거에서 추기경의 표를 돈으로 사는 것은 당연지사 였습니다. 교황 알랙산드로 6세는 역직의 급료나, 새롭게 부임할 때 역직의 매각료 등을 노려, 고위 성직자를 밤마다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침내 살아 있는 기쁨에 눈을 뜬 사람들은, 자신들을 속박하는 성직자의 쇠사슬을 잘라냈습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성직자를 추방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르네상스 운동은 그대로 종교개혁의 저류로 되어 갔던 것입니다.
● 창가르네상스 운동도 타락한 닛켄법주의 퇴좌를 요구하는 종교개혁이 있으므로서 진실한 생명의 르네상스로 된 것입니다.
종문은 학회에 1991년 11월 28일자로 ‘파문권고서’를 보냈습니다. 음험하기 짝이 없는 공갈이었지만 학회원은 오히려 타락한 종문으로부터 ‘혼의 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환희작약하며 ‘파문’한 이 날을 축하했습니다.
그 다음달 12월 27일, 학회는 닛켄에게 ‘퇴좌요구서’를 보냈습니다. 이 ‘퇴좌요구서’에는 전세계에서 무려 약 1천 6백25만명이 서명했습니다. 오히려 닛켄 자신이 1천6백25만 지용의 진열로부터 ‘파문’을 선고 받은 것입니다.
현재 학회는 192개국에서 성직자 없이 광선유포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학회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종문을 비교하면 이는 피하기 어려운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이 어본존은 적적좌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닛켄은 법주의 자리를 강탈한 자입니다. 닛켄은 1979년 7월 22일 닛타쓰 법주의 급서에 편승해 “1973년 4월 15일에 상승받았다”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법주의 자리를 강탈했습니다.
상승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라는 기본적인 의문에 대해서 조차 지금껏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닛켄종을 이탈한 사원 3개사에 대한 반환재판에서도 닛켄의 상승을 입증하지 못하고 최고 재판소에서 3패하고 있습니다.
닛켄은 본존님을 서사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부촉을 받지 않으면 어떻한 고승이라도 본존님을 서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짜 법주 닛켄이 서사한 본존님은 위조 지폐와 같고 “니체렌을 받아 들일지라고 잘못 공경하면 나라가 망하리라”(어서 919쪽)라는 어서 말씀 그대로 닛켄이 서사한 본존님을 예배한다 해도 올바른 신심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07) 인계의 추억/ 절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니치렌 대성인님의 불법이 아니다라고 차부장님은 주장하셨습니다. 어찌 이리도 무지하고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지요.. 창가의 뿌리가 어디입니까? 뿌리가 어딘지 근본이 어딘지 정말 모르십니까? 그냥 외면 하고 무시하시는 건가요? 또 니치렌 대성인님께서 승려는 빠지고 재가 신도들끼리 불도 수행하라고 어서에 말씀하셨나요? 대성인께서 후지산에 사원을 세워 본문의 계단을 세우시라는 어유명마져도 또 부인 하실 겁니까? 아예 나중엔 본문의 계단이 신쭈쿠 거리에 있다고 주장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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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하의 질문은 위의 “창가르네상스 운동”과 중복이 됩니다.
인계의 추억님께서는 “창가의 뿌리가 어디입니까? 뿌리가 어딘지 근본이 어딘지 정말 모르십니까? 그냥 외면 하고 무시하시는 건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닛켄은 대 방법자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자(慈) 없이 거짓으로 친함은 이는 그의 원적이니라” “그를 위해 악을 제(除)함은 즉 이는 그의 어버이니라”(2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닛켄의 방법을 알면서도 ‘뿌리가 어디냐’ ‘근본이 어디냐’는 등 인정론에 치우쳐 그들과 타협하며 거짓으로 친함은 그의 원적이 되는 것입니다.
대성인은 사법과 정법이 다투고 있을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방법을 책할 지어다. 이는 절복의 수행이니라”(어서 49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닛켄의 대 방법을 철저히 책하는 것이 어서에 비추어 현재의 때에 맞는 불도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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