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나들이
케네스강 (글무늬 문학사랑회)
오랜만에 다목적 고국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오전시간에 떠나는 아시아나 항공 일등석 (Business Class) 을 타고 민첩하고 예의 바른 여승무원들의 극진한 시중을 받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버튼을 누르면 등받이와 발 받침이 자동 연결되어 침대가 되니 편하게 잠들 수도 있었다.
이 거대한 점보 제트 항공기는 승객 5백여 명과 그들의 짐을 싣고, 고도 1만 미터 높이로 시드니 -서울 8천 3백 킬로미터를 시속 9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가 10시간 후에 인천공항에 사뿐히 내려 앉는다. 착지 (Landing) 하는 기술이 뛰어나니 몇몇 승객들이 잔잔한 박수를 보낸다. 만일 비행기가 시속 1천 2백 35 킬로의 속도로 간다면 이것은 음속과 같아서 우리는 이것을 마하 (Mach) 1.0 이라 부른다.
훌륭한 조종기술이 아닐 수 없다. 기장은 오랜 경험을 가진 베테랑일 것이다. 공사출신 일까. 항공대출신 일까. 아니면 해외 유학하여 조종훈련을 받은 젊은이 일까 혼자 생각해 본다.
어느덧 아득히 아래로 파도가 넘실대는 검푸른 남지나해를 지나고 있다.
내가 만일 가방을 등에 메고 헤엄쳐서 고국에 가야 한다면 그것이 가능 키나 한 일일까. 갑자기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미련한 인간으로
생각된다. 10초도 안되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죽게 될 것이다.
드넓은 인천공항은 번쩍거리는 별천지이다. IT 기술이 구석 구석 그
위용을 과시한다. 공항리무진 버스는 저녁시간인데도 1시간 만에 호텔 앞에 도착하여 나와 내 가방들을 내려놓는다.
뒷날은 경기도의 한 초대형교회에서 열리는 아들의 목사 안수식에 참석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분당까지 간다. 택시기사는 긍정적이고
유식하다. 젊고 준수한 105명의 남녀들이 오늘 새로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한국에도 여자목사들이 점점 많아지나보다.
장내를 가득 메운 가족과 친지들 의 열렬한 응원 속에 엄숙한 안수식이
끝났다. 의젓한 아들 내외, 시드니의 교회에서 6개월간 설교해 주신 잘생긴 목사님, 오랫동안 못 봤던 가족들과 형제들과 다시 만난다. 개신교 목사인 남동생, 나를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는 귀여운 막내처제, 하얗게 쇤 머리에 수줍은 미소만은 그대로인 아랫동서,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달려온 브리즈번의 손녀들, 인천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친구 내외.
함께 자동차로 멀리 북쪽교외로 드라이브하고 강변의 한식당에서 매운탕에 소주를 마시며 학창시절 이야기에 꽃을 피웠던 고교 친구들,
유도선수에다 시장의 아들이었던 현석의 죽음, 만화를 잘 그렸던 충평의 죽음, 고교시절 공부는 나보다 못했는데 의대를 졸업하고 외과의사가 되어 처가의 도움으로 대형병원을 차려 돈방석에 앉았던 병기의 갑작스런 죽음도 함께 이야기 했다.
서울의 젊은이들은 옛날의 우리들 하고는 달랐다. 옷차림도 세련되고
얼굴과 표정들도 서구 여러 나라들의 젊은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길을 건널 때 보행자 파란신호가 들어오면 35초 내에 건너면 되니 느긋하게 길을 걷는다.
아내와 함께 처제 한 명을 대동하고 해남 땅끝마을 지나 다도해 일주를
하였다. 고산 윤선도가 시와 그림을 그리며 노후를 보냈던 여러 섬에 가 보았다. 우리를 인솔했던 젊은 멋쟁이 가이드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땅끝마을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지국민학교 는 나의 아버지가 3년간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셨던 곳이다) 에 위치한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이다.
땅끝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 선생님이 토말이라는 글씨를새겼다는 내용이 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다.하지만 토말이 일본식 표기라 해서 땅끝 이라고 부른다.
곧 이어 명량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이 시설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대첩지 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해남 우수영 관광지-진도 타워 간 1 킬로미터 하늘길을 오가는 해상 케이블이다.
다음 찾아간 곳은 운림산방이었다. 깊은 산골에 조석으로 연무가 운림을 이루었다고 하여 운림산방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이곳에서 유명한 소치 허련이 그림을 그렸고 그 후손들이 5대에 걸쳐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한다.
아내가 마침 양천허씨라서 장난기가 발동하여 허씨 중에도 훌륭한 사람이 있었구먼 하고 놀렸지만 아예 반응이 없어서 나만 싱거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