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l5XxrX57yI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그 온전하고 사랑스러운 충만함. 사실 저희가 일상을 살다 보면 그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 다음 혹은 그리스도인 다음을 지켜내는 임계점은 어디일까요? 혹시 고민해 보셨습니까?
내가 일상에서 평강을 누리고 기뻐하고,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고 싶은, 그리고 살아왔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풍이 불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 견뎌내는 임계점.
연수원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일이 좀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일도 일이었지만 영적인 부담이 커서 종일 이런저런 연수 과정에 지쳐 산을 타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떨결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피할 길을 좀 주십시오." 그 연수원에 있으면 곧 하늘 갈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참 힘들고 바빠서 식사도 잘 못했습니다. 지쳐서 저녁 일정을 다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와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기도하려고 들어왔는데, 제 사무실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책상 위에 차려놓은 그 식탁을 보니 순식간에 임계치에서 열이 훅 내려가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근데 그 식탁 앞에 메모지가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빠는 내가 지킨다."
당시 대학을 다니던 딸아이가 잠깐 시간을 내어 와서, 원장으로 근무하는 아빠를 좀 돕겠다고 피아노 반주를 하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보니까 아빠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아빠가 밥도 안 먹고 산을 돌아다니니까 딸아이 입장에서는 뭐라도 하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밥을 갖다 놓은 뒤 "아빠는 내가 지킨다"라고 적어둔 것이었습니다. 시집을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출산한다고 한국 저희 집에 와 있습니다. 딸 없는 분은 이 느낌을 잘 모르실 겁니다.
근데 사실 누가 누구를 지키나요? 제가 제 아이를 지키는 것이죠. 그날도 분명 제 관사에서 자고 있고, 밥도 아빠 때문에 먹고, 학비도 서울에서 원주 내려오는 교통비도 제가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 줄로 그날의 모든 피로가 잊히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를 침착하고 겸손하게 하실까요?
에스겔 1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에스겔은 유다의 멸망 역사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그 역경을 경험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역사적이고 외부적인 고난도 고난이었지만, 그의 실제 개인적인 삶도 고난이었습니다. 공공연한 반역이 마른 뼈들 같은 존재들에 의해 자행되던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그가 받은 기별은 인기가 없는 기별이었어요.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자고 하는 것이 당시 반역과 범죄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싫어 버린 바 된 시대의 목사님이었습니다. 게다가 포로로 잡혀간 타지에서의 삶도 힘든데, 그의 눈에 유일한 위로 요소였던 아내가 젊어서 죽습니다. 사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이러면 임계치에 도달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으로 나라 전체가 망하고 교회가 불타고, 어렵게 타지에서 주의 종으로 섬기는데 아내마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
'보다'의 명사형 '봄'.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을 내게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에스겔 1장 1절에 나오는, 가장 어렵고 힘든 역경 속에 있던 그가 성경 기록을 남길 때 첫 번째 기억이었습니다. "내가 보았다"는 것. 뭘 보았느냐? 빛난 광채의 모양을 보았는데 그것이 무지개 같았고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였다고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그의 삶과 환경은 임계치에 치달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그가 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본다는 것의 경험적 이해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셨다."
현실은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런 가운데 그는 최고치의 영적 경험을 했습니다. 실제 성경 말씀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은 원래 이것이었습니다.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알아서 일어나라는 명령이었지만, 기록할 때는 수동태로 "주의 영이 나를 일으키셨다"라고 남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견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에스겔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들어 올리셨고,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그렇게 하셨다고 경험한 것이, 그의 목회 30년 차 때 그리고 일상이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힘들 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는 말과 그 속의 잔인함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중요한지를 에스겔은 경험하고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되었습니다. 바퀴 속의 바퀴. 나는 고난 가운데 이상한 길로 가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서 내 인생이 하나님의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이 환상을, 가장 힘든 역경 가운데 하나님이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살아 있으라."
부모로서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 역경 속에서라도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하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생수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무지개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에스겔만 보았을까요? 하나님도 보고 계셨습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하나님과 모든 생물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셨습니다. 노아가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무지개를 하나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다른 면에서는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계십니다. 그 언약을 보고 계시고 기억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치료적인 공의 속의 자비가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엄격한 재판관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미래를 책임지고 사랑하시는 참된 교사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다가오신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며 본다는 것은 은혜의 표징을 보는 것입니다. 내 삶의 일상에서 역경의 폭풍 가운데 계실지라도, 그 가운데 우리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주시고 언약의 표징을 보여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은 한국에서 안식일을 지키고 집총을 거부하며 신앙을 지켜낸 선배님들의 이야기였고, 두 번째 책은 『I Will Die Free』였습니다. 이 두 권을 읽고 입대하여 신앙을 지키다 교도소에 다녀온 뒤 제대했습니다.
그해 한국 집회에 『I Will Die Free』의 저자인 노블레 알레안드로 목사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청소년 수련원으로 갔습니다. 400명이 넘는 학생이 모여 비닐하우스에서 집회를 했는데, 8월의 더위 속에서 저는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한국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겨울 야전상의 군복을 입고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다가가 그분의 손을 잡았습니다. 쿠바에서 고문당해 관절마다 불쑥불쑥하게 굳어버린 거칠고 험한 손이었습니다. 그분은 제 손을 꽉 잡으며 한 마디 하셨습니다.
"자네, 꼭 목사가 되게."
저는 보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경 가운데서도 주의 교회를 지켜내는 한 목사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목사님의 가치, 장로님의 영적인 무게감, 새벽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됩니다.
에스겔에게 있어 임계치를 견뎌내게 하신 성령의 경험 첫 번째는 '봄'이었고, 다음은 '찬송'이었습니다.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리셨다...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은 역경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울 테니 너는 찬송하라"고 하십니다. 에스겔 33장 32절에 보면 너는 '사랑의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에스겔은 역경 가운데서도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리에 있던 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찬송은 이사야 6장과 계시록 4장에 나타난, 죄가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존재들이 부르는 거룩한 노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거룩한 찬송을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우리의 희망과 용기와 믿음은 증가될 것이다."
노래로 하늘과 교통을 유지하는 사람. 예수님께서도 노래로서 하늘과의 교통을 유지하셨고, 십자가 앞에서도 찬미하며 나아가셨습니다.
어느 날 삶의 어려움을 겪던 한 청년이 천명선교사로 나갔다가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한편, 한 여성은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재정적 문제로 인해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집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큰 심리적 타격을 입은 그녀는 아무도 없는 오지의 섬으로 들어가 굶어 죽으려고 밀림 속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숯을 파는 한 주민이 살 썩는 냄새를 맡고 그녀를 발견해 오두막을 지어 누워있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너무 아팠던 그녀는 "하나님, 살아계신다면 하룻밤만 안 아프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다 기절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하얀 천사 같은 존재가 와서 손을 가슴에 대자 통증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하얀 천사'는 선교사로 파송된 한국 여청년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 기도 후 산을 넘어와 한국어로 성경을 읽어주고 찬양을 불러주었던 것입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하늘의 소리처럼 들렸고, 그 사랑을 통해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그 여성은 "목사님, 살고 싶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찬미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그 시간은 고통과 자학의 시간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과 함께, 오늘 그분을 바라보며 행복하고 찬양이 가득한 하루를 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임계점에서의 은혜와 바라봄(봄)
삶의 고난과 역경이 임계치에 도달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영광을 보여주심(봄)으로써 우리를 들어 올리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에스겔의 고백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언약의 무지개를 바라보시며 우리를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역경을 이기는 능력(찬송)
시련의 순간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낙심이 아닌 '사랑의 찬송'입니다.
찬양은 하늘과의 교통을 유지하게 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찬미하셨듯 고난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 믿음을 다져주는 거룩한 힘이 됩니다.
살아있으라(치유와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