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이 착착’
올댓아트 강예은 인턴
2019.07.15 14:08 입력
“비트 주세요?
아니,
‘장단’ 주세요!”
마이크 대신 주걱을 손에 쥐고 악사에게 장단을 요청한다. ‘시조’가 금지된 나라 조선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는 시조장, ‘국봉관’. 그곳에서 제일가는 시조꾼 진과 자신만의 개성 있는 시조로 자유로운 시조 활동을 꿈꾸는 단의 시조 배틀이 시작된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쇼 미 더 머니’를 연상케 하는데. 힙합 경연장 못지않은 시조 경연장의 후끈한 열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비밀 시조장 ‘국봉관’에서 진이 마이크 대신 주걱을 들고 장단을 요구하고 있다.|올댓아트 강예은
넘버 ‘이것이 양반놀음’ 중.|올댓아트 강예은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의 배경은 시조의 나라인 상상 속 조선. 15년 전, 역모 사건으로 인해 시조대판서 홍국이 시조 활동을 금지시키면서 백성들은 더 이상 시조를 하지 못하게 된다. 고아로 자란 단은 이런 상황에도 저잣거리에서 당당하게 시조를 읊고 다니다 진의 눈에 띈다. 단은 진과 얽히다 ‘골빈당’이라는 조직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억울하게 역적이 된 자모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골빈당 당원이 된 단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고, 양반놀음을 만들어 나라를 삼키려는 시조대판서 홍국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린다. 위기를 느낀 홍국은 그동안 금지해왔던 ‘조선시조자랑’을 15년 만에 개최한다. 골빈당은 이름을 ‘수애구’로 바꾸고 조선시조자랑에 출전하여 백성들의 이야기를 시조로 임금께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선시조자랑’이 15년 만에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백성들|PL엔터테인먼트
“전통과 현대의 조화”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그 제목에서부터 짐작해볼 수 있듯, 전통과 현대가 믹스매치된 작품이다. 가사와 음악은 물론, 안무까지 전통과 현대가 콜라보되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등장인물의 의상까지도 전통 의복과 스니커즈가 어우러진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지금부터 한 요소씩 파헤쳐 보며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조화시켰는지 알아보자.
전통적인 의상에 현대의 스니커즈를 신고 있는 단(왼쪽)|올댓아트 강예은
“가사”
조선 시대의 시조와 현대의 랩이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아니, 과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조합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랩의 라임 못지않은 언어유희와 힙합 스타일 음악을 입힌 정형 시구를 듣다 보면 그런 의구심은 금방 가라앉는다.
시조대판서 홍국은 임금에게 ‘단심가’로 자신의 충심을 표현한다.|PL엔터테인먼트
‘하여가’(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후략))나 ‘단심가’(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후략))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옛 시조들도 등장해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 현대적인 멜로디가 더해지니 색다른 느낌도 추가된다.
주인공 단은 형식을 파괴한 랩의 형태로 자유롭게 시조를 읊는다.|PL엔터테인먼트
작품 속 시조를 읊는 방법이 다양한 것도 이 극의 포인트다. 작품 속 양반들의 시조는 기본 형식의 평시조* 혹은 단형시조로 이루어져 있고, 피지배층에 의해 발달했던 사설시조** 혹은 장형시조는 평시조의 형식을 깨어가며 작품 속에서 골빈당의 시조로 등장한다.
그런 사설시조의 흐름마저 파괴한 것이 바로 주인공 단의 시조인데, 단은 모든 형식을 벗어나 현대의 랩의 형태로 시조를 선보인다. 특히나 ‘운명’이라는 넘버에서는 시조가 랩화되어 자유를 향한 단의 열망이 폭발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듯 시조의 형식을 점차 파괴하는 형태로 가면서 각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의 가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시조 : 시조의 한 형태. 시조의 기본형으로서 가장 먼저 형태가 정립되었으며 전 시조사를 통하여 주류를 이루어 시조를 대표한다. 평시조는 사대부시조라고 일컬어질 만큼 양반 계층에서 보다 성행한 형태였다.
**사설시조 : 시조의 한 형식.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기본형에서 가장 벗어난 시조의 형식으로 율조의 제약을 벗어나 어조가 사설체로 되었고 초장 · 중장 · 종장의 구분이 가능한 시조이다. 주제는 평시조가 양반 사대부들의 한정 · 애정 · 탈속을 내용으로 지은 것이 많은데, 사설시조에서는 자수 상에 구애됨이 없이 인간 생활을 사실적으로 읊은 점이 특징이다.
-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참조
“음악”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인 ‘음악’은 조선이라는 배경과 어우러지는 ‘국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표현되어 있다. 무려 12개의 국악기와 22개의 클래식 오케스트라 악기, 그리고 7개의 밴드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이 극의 음악을 이루는데, 전통적인 국악 장단을 그대로 이용한 부분도 있고, 국악의 느낌을 가져와 현대 음악의 형식에 맞게 편곡한 부분도 있다.
실제 창극이나 판소리 중에 빠른 템포와 중독성 강한 노랫말이 돋보이는 음악은 현대의 랩과 굉장히 비슷한데,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에 원래 있는 소스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음악을 완성시켰다.
중독성 강한 대표적인 넘버, ‘이것이 양반놀음’ 중.|올댓아트 강예은
이정연 작곡가는 “조선이라고 판소리나 전통 장단만 나오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음악이 있어야 더 재밌고 유쾌하고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에 최근 대중가요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힙합이라는 장르를 가져왔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차용하면서 ‘국악’이라는 공통된 분모로 묶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이 극은 특히나 중독성 강한 넘버들이 많은데, 이 뮤지컬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이 양반놀음’의 후렴구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이렇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넘버들은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안무”
열정적인 안무가 돋보이는 넘버 ‘정녕 당연한 일인가’ 중|올댓아트 강예은
이런 흥겨운 음악에 안무가 빠질 수 없는 법. 신나고 열정적인 안무는 관객들의 흥이 더 오르도록 돕는다. 전통적인 한국무용에서부터 현대무용과 힙합까지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였다. 특히나 힙합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억압받았던 흑인들의 감정이 잘 녹아 있는 춤이다. 이는 한국의 ‘한’과 ‘흥’을 표현한 한국무용과 절묘하게 들어맞아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넘버 ‘정녕 당연한 일인가’ 중.|PL엔터테인먼트
김은총 안무감독은 “보통은 한 장르의 안무를 가지고 가는데, 관객분들이 오셨으면 다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락킹, 스트릿댄스, 발레 동작, 비보이 동작들을 최대한 다양한 배우들이 다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통무용에서부터 얼반댄스, 락킹, 비보잉을 포함한 현대 무용까지.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안무가 섞여 있으니 자칫 난잡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공연을 보다 보면 다양한 장르의 춤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단일 장르 안무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걸 느낄 수 있다.
가사와 음악, 안무까지 이 모든 것들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의 공연을 탄생시켰다. 거기에 ‘우리의 작은 외침이 세상을 바꾼다!’는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의 메시지까지 더해져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힘든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한’의 정서를 ‘흥’으로 풀어내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2019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은 위로받는다.
엔딩 넘버 ‘시조의 나라 rep.’ 중|PL엔터테인먼트
골빈당의 외침에 관객들까지 속이 시원해지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제목만 보고 이게 뭘까 싶은 분들은 공연장에서 이 극의 실체를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보다 보면 어느새 ‘조선스웨그’에 취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들로 힘들다면, 다 잊고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과 함께 한 판 신나게 놀아보자!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2019.06.18 ~ 2019.08.25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기본가 R석 8만 8천 원 / S석 5만 5천 원
공연 시간 150분 (중간 휴식 15분)
만 7세 이상 관람 가능
이휘종, 준, 양희준, 김수연, 김수하, 최민철, 임현수,이경수, 이창용,
장재웅, 정선기, 정아영, 주민우, 이동수, 김승용 등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