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미주카톨릭문학(제 7호 2022)
저-미주카톨릭문인협회
◉‘알은 깨어져야 새로운 세상을 본다-데미안: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시련과 고통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여겨야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어린 왕자-‘나는 4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3시부터 행복해! 사랑은 길들여지는 거야.’ 사랑은 배려와 관심이다
헤리포터-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꿈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런 상상력이 시화가 되고 종교가 되었다.-조재형 가브리엘 지도신부
◉그리움(나인구)
행여
지나가는 봄바람이
꽃잎 물고 서 있지 않을까
서성대는 망설임
이슬처럼 매달려
뚜욱 떨어지지나 않을까
비켜가는 시간들
한 숨처럼 쌓이면
그 무게 짓눌려 잊어지지나 않을까
오늘도
스치는 그대 두 눈에 담아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
허공에 서성이는 그리움 한쪽
가슴에 묻어본다
◉동거(박 미경)
노인보다 더 오래 사셨다
바근바근한 가지에
차마 까치도 둥지 틀지 못했다
영락없이 죽었다가
꽃 피워내곤 했다
싸락눈 치던 어느 날
올봄에도 피워줄까
가는귀먹은 함석집 노인
울안 매화나무의 맥을 짚는다
사연이 소설책 열 권이라던
주인 걱정에, 새봄
매화는 매화대로 또
안간힘 쓸 것이다
꽃그늘에 앉아
신세타령 몇 장 더 끼적일라치면
손사래 치며 힘없이
꽃잎 떨굴 것이다.
◉ 무릎 꿇은 나무(박선애)
보행 보조기를 밀며/ 미사 시간에 늦지 않으려는 그녀는/ 마음을 먼저 바퀴에 얹고/송골송골 맺힌 담방울로/윤활유로 보충하여/ 오늘도 수목한계선에 다다른다/ 굽은 허리 대신 거친 마디/흔들리며 두 손 모으고/짐작되는 오래된 기도로/몸을 더 낮추면/혹한과 논보라에 뒤틀리며/ 무릎 꿇은 나무로 굳어져/ 가깝고도 먼 하늘로 보내지는/가쁜 숨소리/소리반 공기반이라지/ 바람을 만나거든/ 아주 오래된 바람을 만나거든/ 그제야 4줄 현으로 완성되는/ 맞울림으로 소리 난다
◉아기가 온 힘을 다하여 쥐고 온 우주를 세상에 풀어 놓는 소리 천하가 제압된다. 하늘이 열리고 탯줄을 자르는 내손. 둘이서 하나를 낳은 사랑이 꽃 된 신비
◉민들레(조경옥)
둥글다
완성이며 시작이다
가벼움까지 더했으니
어디로든 떠날 수 있겠다
무거운 맘으로 나선 길
깃털로 감싸인 충만함을 만난다
훅 바람 불면 홀연 떠날 가벼움이건만
파란 하늘을 어깨 위에 얹고 당당하기만 하다
구원을 향한 신념이라면
반사되는 한 줌 햇빛을 모아서도 꽃을 피운다
그러하므로
두려움 없이 떠날 수 있겠다
파견을 목전에 둔 은빛 성자
민들레 꽃씨
◉ 여름 햇살을 즐기며 꽃송이를 피우고 있는 배롱나를 보며 무념과 인내를 배운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서로의 얼굴이 거울이 되어준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으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만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 자신을 위로하며 손가락 마디 마디가 아픈 이유까지 따뜻하게 품어 안는다.
◉ <어부의 오두막집> 버지니아 미술박물관에서 인상파 모네의 <바렌지비의 어부의 오두막> 그림을 만났다. 화면을 사선으로 이등분한 구도의 그림으오 사선 위 멀리 쪽빛 바다가 펼쳐져 아득한 바다 수평선 가까이 흰 돗단배들이 /더있다. 사선 아래 근경으로는 작은 잡목이 우겨진 언덕. 언덕 위에는 아담한 빨간 지붕의 오두막집이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홀로 성 ᅟᅵᆻ는 그림이다. 저 오두막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오두막을 보면 사람의 그림자가 없다. 주인 어부는 멈 바닷가로 나가 오래 돌아오지 않은 듯 빈집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봄바람이 오두막을 감싸고 있고 봄볕은 언덕을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다. 만일 누가 있다면 마당에 빨랫줄이 있고 걸려 있는 하얀 빨래가 바람에 날리거나 하늘색의 커튼 자락이 창문 밖으로 조금은 나와 있을 것 같은데. 사람 그림자가 안 보여도 그런 집이라면 행복하게 보일 것 같다. 하지만 이 오두막은 그냥 비어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봄의 따스함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나는 이 그림만 보며 이해인 시인의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 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 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ㅔ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 지어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 작가의 특별 체험과 관심을 두루 아우르느 다양한 소재. 읽고 나면 가슴이 뻥 ㄸ꿇리는 시원함고 눈물 한줌 찔끔 흘리게 되는 묘사. 심각한 주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위뭉하게 능치는 여유, 그 속에 하고 싶은 말을 슬쩍 심어 놓은 재치와 촌철살인-고대진 수필집-순대와 생맥주 심사평
◉<지렁이> 동화 전월화
맑았던 누나 얼굴에 검버섯 피어 청색처럼 까맣던 머리카락은 휜 눈에 덮인 까만 기와지붕처럼 추워 보였다.
“누나, 비 오는 날 날 업고 산에 지렁이 잡으로 갔었지?”
“그래, 엄마한테 고깃국을 끓여드릴 돈이 없었거든. 고기에 있는 단백질이 지렁이에 많다고 해서.”
“누나, 그럼 우리가 먹던 국이 지렁이 국이었어?”
누나를 만나고 온 밤 꿈속에서 지렁이가 소고기로 변하는 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 미국 프리웨이 남쪽 방향을 가다보면 ‘Never Forget’깃발이 언덕 위 묘지에 휘날린다. 참혹한 전장에서 숨진 영혼들이 제발 잊지 말아 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깃발을 흔들어댄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이다.
한때 푸른 물을 담고 출령였을 저 평원은 이제 한 줌의 물조차 귀한 지형이다. 자식을 낳고 키우느라 텅 비어 말라버린 늙은 어미의 자궁이 된듯하다.
◉퇴색된 이념을 위해 죽고 죽이는 인간의 전쟁. 정의로운 전쟁이란 없다. 무엇을 위해 어미들은 생때같은 자식을 전장에서 잃어야 했고 젊은 청춘들은 어떤 명분으로 젊음을 바쳐야 했던가? 은하수를 흐르는 무수한 별들은 어느 전쟁터에서 죽어간 젊은 영혼들이었을까. 자식을 잃고 깡마른 사막이 되어버린 어미들의 가슴에 별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이 되어 흐르고 있다.
◉ <죽는 게 뭐라고>시노 요코
나는 내알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른다
내가 죽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잡초가 자라고 작은 꽃이 피어
비가 오고 태양이 빛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사람은 죽을 때까지 살아 있다.
◉ 봄날 시집 갈 막내 고모가 아랫목에 다소곳이 앉아 수틀에 천을 끼어 수를 놓고 있다. 고모의 수틀 속에는 나비가 날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시어머님 되실 분에게 드릴 베개포를 만든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나옹 선사의 시
◉사람의 몸은 위아래 대칭이 아니라 좌우로 짝을 이룬다. 왼쪽과 오른쪽은 서로 상대적으로 다른 기능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둘이 짝이 돼 힘을 합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기에우리 몸에서 짝이 있던 것이 하나가 없어지면 아주 불편하다. 어떤 숫자를 2로 나누어 똑 떨어지지 않는 수는 모두 홀수다. 짝이 없는 숫자가 홀수다. 상대 개념이 없는 수다. 수학에서
+만 있고 –가 없으면 얼마나 무의미한 숫자일까.
◉<바닷가에 대하여>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중략)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하늘에서 날아온 요술 빗자루가 새를 그린다. 하얀 달걀에 삼샋 파스텔 칼라를 칠한 듯 달걀 머리를 톡톡 치자 샛노랑 병아리가 쏙 나왔다. 날개를 털며 나와 튜율립 꽃, 하얀 백합꽃을 피워낸다. “무슨 이링야?” 토기가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본다.
“얘야, 닭도 먼저가 아니고 달걀도 먼저가 아니야. 사랑이 먼저지!”
◉ <달동네 계단은 내려가는 것이다> 임태성(선 줄임)
달동네 사람들은 낮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다가
늦은 저녁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높으나 가장 가벼운 집
어두운 골목마다 허리를 굽혀 밥을 익히지만
공기가 희박한 달동네, 밤안개는 높이 오르지 못한다
달동네 사람들은 깊은 밤이 되면
수없이 방향을 바꾸는 바람 소리에 잠을 깬다
내일 아침 저 낮은 세상으로 계단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
도시의 빌딩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것들은 자꾸 위로 올라가는데
살아가는 것은 자꾸자꾸 작아지는 것이다.
당선 소감-겨울눈이 내린 달동네 고개 빙판을 오르던 어머니의 털신이 생각난다.
◉ 수필 창작은 경험의 재해석으로 인간 세계의 보편적 원리를 독자의 공감을 얻도록 제시해야 한다. 나름의 능력, 체험, 인생관, 철학관, 역사관의 차이로 다르게 해석. 표현되어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이다.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를 위호라고 위안해주는 기능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