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5.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 금요일>
<루카12,1-7>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바리사이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루카12,1)
왜 위선일까요?
그들은 하느님 대신 율법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자체가 아닌 율법안애 깃든 하느님의 정신과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니만 십계명만 붙들고 십계명의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자신처럼 이웃사랑하는 것을 놓치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성경 읽는 것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말씀을 통한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문자에 메달리는 성경근본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도신경의 글자들이 아닌 그 내용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화석화 되고 죽은 신앙이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가치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살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보이는 가치란 사람들과의 관계성에서 주고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내 자신이 마음에 감사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선물을 해야 그 감사가 내 인격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한 것을 하지 않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고,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다면 서로 병이 들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란 하느님과의 관계성에서 주고 받는 것을 말합니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그 기억을 주님께 다 봉헌하고 비워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앞에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3,19)는 말씀을 되새기며 자아(에고) 죽음에 대한 수련이 될 수 있게 됩니다.
서울에서 부주임 시절에
잠을 못잔다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신자들이 데려와서 기도해준 적이 있습니다.
기절을 하면서 박수무당이었던 시아버지가 나갔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사실은 시아버지의 형상을 한 악이 나간 것이라는 것이겠지요.
이 이후로 6.25때 죽은 쌍둥이 언니들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것들 역시 쌍둥이 언니를 가장한 악들이겠지요.
나중에는 고해성사 가는 길에 그 자매가 또 기도해달라며 왔습니다.
순간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껏 내 자신의 힘으로 악에 대적해왔다는 것이지요.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을 통해 제 대신 성모님과 예수님께서 대신 말씀해 달라고 청하면서 기도하니 같은 현상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사제직은 주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고 사제를 통해 당신께서 일하시는 것이고,
내가 해야할 일은 안과 밖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수련을 할 수 있을까요?
데 데레사 성녀께서는 말씀 안에서 이러한 것을 이루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spirit”이 “하느님의 영Spirit”을 향하도록, 즉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도록 정화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1.말씀 묵상
1)기도
(1)성서를 2번~10번 읽습니다.
(2)눈을 감고 영화를 보듯이 내용을 바라보고, 성령께 의탁하여 등장인물 중에 한 인물이 되어 예수님을 만납니다.
(3)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4)30초~1분 동안, 침묵으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2)정화
(1)기도중에 만난 예수님과 생활 안에서 함께 합니다.
성녀께서는 삶 안에서도 예수님과 자주 함께 하셨습니다.
기도가 진행되면 예수님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상태가 오는데 그것은 내가 예수님 몸 안에 있어서라는 것이지요.
즉 그분과 한 몸이 될 때까지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를 깊게 가지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지만,
예수님을 의식하면서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만큼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지요.
2.단순 기도
1)기억
(1)정화
“영spirit-혼soul”의 기능인 지성 기억 의지가 있습니다.
내 지성이 십자가상 아래에 계신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께 대한 믿음을 갖고,
내 기억을 마음(영spirit)으로 내려놓고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과 일치하려는 소망을 갖고,
내 의지로 모든 기억들을 성모성심을 통해 예수성심께 봉헌하면 됩니다.
(2)기도
내 일생에 대한 기억이 한 번 봉헌될 때마다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에 30초~1분 무념무상으로 머뭅니다.
이러한 과정이 10번 이상 반복되면, 기억이 나도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2)몸
(1)정화
내 지성이 십자가 상 아래에 계신 성모님을 통한 예수성심께 대한 믿음으로,
내 몸(에 대한 기억)을 마음(영spirit)으로 내려놓고 십자가 상 아래에 계신 성모님을 통한 예수성심과 일치하려는 소망을 갖고,
내 의지로 내 몸(에 대한 기억)을 십자가상 아래에 계신 성모님을 통해 예수성심께 봉헌하면 됩니다.
(2)기도
내 몸이 한 번 봉헌될 때마다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에 30초~1분 무념무상으로 머뭅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은 누구신지?”를 세 번 묻습니다.
침묵 중에 올라오는 것들을 성모성심을 통한 예수성심께 봉헌합니다.
내 기억이 다 봉헌되고 몸(에 대한 기억) 마저도 봉헌되면,
점차적으로 “영spirit-혼soul”의 기능인 “지성 기억 의지”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점차 변화되면서 “‘나’라는 영spirit”이 “하느님의 영Spirit”을 향하게 됩니다.
또한 영성체를 통해 내 살과 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어 “‘나’라는 영spirit”이 “하느님의 영Spirit”과 마음으로 하나가 됩니다.
내 영이 하느님의 영과 일치를 이루어,
내 머리가 예수님의 머리,
내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
내 팔이 예수님의 팔,
내 발이 예수님의 발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 저절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단계이니 만큼,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Luke12,1-7>
1 Meanwhile, so many people were crowding together that they were trampling one another underfoot. He began to speak, first to his disciples, "Beware of the leaven - that is, the hypocrisy - of the Pharisees.
2 "There is nothing concealed that will not be revealed, nor secret that will not be known.
3 Therefore whatever you have said in the darkness will be heard in the light, and you have whispered behind closed doors will be proclaimed on the housetops.
4 I tell you, my friends,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after that can do no more.
5 I shall show you whom to fear. Be afraid of the one who after killing has the power to cast into Gehenna;* yes, I tell you, be afraid of that one.
6 Are not five sparrows sold for two small coins?* Yet not one of them has escaped the notice of God.
7 Even the hairs of your head have all been counted. Do not be afraid. You are worth more than many spar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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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다섯 가지 습관
1.플래너의 자질이 있다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의 공통적인 특징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실천 가능한 장단기 학습 계획을 먼저 세운다. 읽을 책을 미리 정하고 습득해야 할 정보를 정리한 다음,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학습을 해야 하는지 계획한다. 그리고 계획대로 실천한다.
2.실패를 가장 큰 공부로 삼는다
누구도 100% 정답을 써낼 순 없다. 그래서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사람은 실패에 좌절하는 대신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다음번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대비한다.
반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답이 틀렸을 때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정답은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으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실패의 요인을 찾아내야 한다. 실수를 피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는 것, 실패가 때로는 가장 큰 공부가 된다.
3.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갸우뚱한다. ‘아! 그렇구나’ 하기 전에 ‘왜?’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질문이 없다. 아는 게 없으니 궁금한 것도 없다. 모르는 게 부끄러워 질문하기를 주저하기도 한다.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지 말고 질문해서 답을 찾아내자. 그게 공부다. 이해의 시작은 ‘아!’가 아니라 ‘왜?’라는 것을 명심하자.
4.메모와 분류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책을 읽을 때 앞에 항상 필기도구를 두었다고 한다. 여행을 할 때도 만난 사람, 지명 등을 꼼꼼히 메모했다. 그러/곤 언제든지 찾아보기 쉽도록 분류하고 정리했다. 정돈된 메모는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 뼈대를 세우는 데 긴요하게 이용되었다. 선생은 이러한 메모법으로 유배 생활 18년 동안 무려 5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남의 이야기는, 내 아이디어든 메모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적고 분류하다 보면 자연스레 복습도 된다. 때로는 노트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이 필요한 정보가 금방 떠오르기도 한다. 짧은 메모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5.책상과 책장도 잘 정리되어 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의 책장은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책상 위도 항상 깔끔하다.
반면 공부 못하는 사람은 모처럼 공부하려고 앉으면 책상 정리부터 해야 한다. 너저분한 책상이 거슬리는 것이다. 그때라도 정리하/고 시작한다면 그나마 다행. 책상 위 물건을 한쪽으로 밀쳐 버리고 그냥 시작한다. 공부하려다 보면 잡다한 물건이 집중을 방해한다. 공부가 될 리 없다. 점점 주의가 산만해지고 진도는 안 나가고 결국 포기!
평소에 책상만큼은 깔끔하게 정리해 두자.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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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하느님이 우리에게 열정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옳은 일에 대해 강렬하고 명확한 감정을 지님으로써 악에서 벗어나 선으로 나아가기 위한 열정을 품습니다.[1762-1766, 1771-1772]
하느님은 인간이 사랑하고 미워하며 무엇인가를 열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45)/
망하거나 경멸할 수 있게 지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마음을 빼앗기고 다른 이들을 두려워하며, 기쁨이나 슬픔, 분노에 차게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항상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합니다.
모든 일에서, 무엇보다 당신 자신에게 인내하십시오.(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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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절 감정의 도덕성
->1762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운 행위로써 행복을 지향하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passio)이나 느낌은 행복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고, 그를 위해 도움이 되기도 한다.
I.감 정
->1763 ‘감정’(感情)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유산에 속한다. 느낌이나 감정은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느끼고 상상한 것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게 하는, 한쪽으로 기우는 정서나 감수성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1764 감정은 인간 심리의 자연적인 요소로서, 감성적 생활과 정신적 생활을 영위하는 장(場)을 마련해 주며, 그 둘 사이의 통로를 보장해 준다.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감정이 솟아나는 원천이라고 일컬으신다.(마르7,21 참조).
->1765 감정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감정은 선에 대한 이끌림에서 일어나는 사랑이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65)/
은 선에 대한 갈망과, 그 선을 달성하려는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이 움직임은 얻은 선에 대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족된다. 악에 대한 두려움은 장차 도래할 악에 대한 증오와 혐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 움직임은 현존하는 악에 대한 슬픔이나 거기에 대항하는 분노로 결말이 난다.
->1766 “사랑은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1-2, q. 26, a. 4, c: Ed. Leon. 6, 190) 다른 모든 애정의 근원은 선을 향한 인간 마음의 원초적인 움직임이다.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선뿐이다.(성 아구스티노, ‘삼위일체론’, 98, 3, 4: CCL 50, 271-272(PL 42, 949) 참조). “사랑이 악하면 감정이 악하고, 사랑이 선하면 감정이 선하다.”(성 아우구스티노, ‘신국론’, 14, 7: CSEL 40/2, 13(PL 41, 410))(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66)/
간추림
->1771 ‘감정’ 이라는 말은 열정이나 감성을 가리킨다. 인간은 자신의 정서를 통해서 선을 예감하고 악을 예측한다.
->1772 주요한 감정들은 사랑과 증오, 욕망과 두려움, 기쁨, 슬픔, 분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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