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봉산초 급식 : 부실 급식으로 논란을 빚은 사진과 이후 달라진 급식 사진 ©봉산초 비상대책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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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저질급식 논란을 빚은 서울 충암고 급식을 보면서 충격에 빠졌고, 올해는 우동과 꼬치 1개, 단무지 두어 조각 놓인 대전 봉산초 급식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이렇게 급식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급식을 둘러싼 환경은 '복마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태흠의원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로부터 제출받아 지난 29일 공개한 국감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학교급식의 식자재를 공급하는 업체 중 위생 불량 및 입찰비리 등으로 제재를 받은 경우가 1,129개 업체에 달했다.
급식비리 유형을 보면 불법으로 입찰에 응한 '부정입찰'이 263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사람이 타인의 명의로 여러 개 사업을 운영하는 '공동관리'가 108건이었으며, 영업장 없이 운영한 경우도 53건, 타 업체가 대리로 납품한 경우도 29건이었다. 또한 불량 식재료 납품은 물론 유령업체를 설립해 인증서·인감도장 등을 일괄보관하면서 응찰하거나, 업체끼리 계모임을 만들어 낙찰 후 이익을 나누는 입찰 담합 등 급식비리 유형도 참으로 천태만상이었다.
한 급식업체 대표는 “한마디로 '복마전'이다. 알고 보면 학교급식은 봉이다.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무법천지랄까? 세상에 이런 난장판이 또 있을까싶다. 학생들만 불쌍하고... 세금이 줄줄 새나가고 있다”며 한탄했다. 어쩌다 학교급식 현장이 ‘비리 종합 백화점’이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급식비리가 가능한 것일까?
일부 영양(교)사들은 왜 특정업체 제품을 지정할까?
급식관계자들에 의하면 “학교와 업체 간 유착 고리를 끊어내지 않는 한 급식비리는 계속될 것”이라며 “그 중 하나가 특정제품을 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부패척결추진단의 실태점검에서 식재료 주문 시 특정제품을 구매하는 등 학교 영양(교)사와 업체의 유착 고리가 드러났다. CJ프레시웨이와 (주)대상, 동원F&B, 풀무원 푸드머스 같은 대형 급식업체들이 2년 반 동안 전국 3000여개 학교 영양(교)사들에게 16억원 상당의 상품권과 영화관람권 등을 제공한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6월 부실·불량 급식 공분을 일으켰던 대전 봉산초도 식자재 납품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봉산초 관계자는 “봉산초도 케첩을 주문하면서 보통 2750~2950원 하는 것을 특정업체에 주문하면 5200원에 납품받았다. 이렇게 특정제품을 지정하면 식재료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식재료(공산품 등) 업체와 학교 간 대면 접촉 홍보행위 원칙적 금지’라는 공문 ©김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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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교)사가 식재료를 구매하면서 특정제품을 지정하면 교육청 지침 위반이다. 그럼에도 기자가 28일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상당수 학교들이 식재료를 구매하면서 버젓이 특정제품을 직간접적으로 지정하고 있었다. 서울ㄱ초등학교의 경우, ‘오복 간장, 풀무원 계란, 해찬들 고추장, 대상 굴소스...’라고 적고 있었고, ㄴ중학교도 ㄷ고등학교도 ‘진미 간장, 삼호 게맛살, 원플러스원 고기말이, 백설 고기양념, 그린웰 가래떡, 천일냉동 가쓰오부시, 대상 간장, 서안이가 고춧가루, 크로바 김, 신명나라 닭꼬치, 고향 당면...’ 등 특정회사 제품을 명시하고 있었다.
간접지정이라는 지능적인 방법을 구사하고 있는 학교들도 있었다. ㄹ중학교의 경우, 굴소스를 구매하면서 ‘굴추출물 11%, 설탕, 소금/생산지:국내산/원산지:홍콩’이라고 적고, 녹두묵을 구매하면서 ‘진청포묵/녹두전분99.8%(중국산)/슬라이스12.5g*161ea/haccp’라고 적어 사실상 특정제품을 지정하고 있었다.
▲ 특정 제품을 간접지정하고 있는 학교사례 ©김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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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회사 제품을 명시하고 있는 사례 1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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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회사 제품을 명시하고 있는 사례 2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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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업자 A씨는 “제조회사와 상품명을 명기한 학교의 경우, 다른 회사 제품을 납품하면 반품당하기 일쑤이고, 심지어 영양(교)사가 원하는 특정 제품을 납품하지 않았을 때는 이런 저런 트집을 잡기 때문에 어떻게든 울며 겨자 먹기로 원하는 것을 납품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납품업자 B씨는 “모 학교의 경우 지정한 특정제품을 납품하지 않자 식용유를 1/3통만 시키거나, 고추장이나 기름처럼 내용물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플라스틱 포장재나 철재 포장재가 운반과정에서 다소 긁히고 구겨졌다며 반품을 요구하는 기가 막힌 일도 있었다”며 “입찰 내역에 특정제품을 명기한 것은 다른 제품은 받지 않고 오로지 지정한 제품만 받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각 학교로 배포된 ‘서울시교육청 학교급식 기본방향’에는, “식재료 입찰 시 부당하게 특정상표 또는 특정규격 모델을 지정하면 안된다”고 되어 있다. 물론 “2인 이상 견적서 제출 수의계약 시는 예외적으로 학운위 심의 또는 자문을 거쳐 특정제품을 복수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급식 관계자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특정제품을 지정하는 것은 교육청 지침 위반으로 감사대상이고 이것이 확인될 경우 징계대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정부입찰 계약집행기준’의 5조(제한기준) 4항에는 ‘물품의 제조 구매 입찰시 부당하게 특정상표 또는 특정규격, 모델을 지정해 입찰에 붙여 경쟁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왜 상당수 영양(교)사들은 교육청 지침을 위반하면서까지 특정제품을 지정할까? ㅁ학교 영양사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서”라고 운을 뗀 뒤, “아무래도 브랜드 있는 회사의 제품이 값은 다소 비싸더라도 품질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특정 제품을 지정하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말했다.
ㅂ학교 영양사는 “고추장의 경우 매운 고추장이 들어가는 음식이 있고 맵지 않은 고추장이 들어가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맛을 확인한 브랜드 명을 기재하지 않을 경우, 같은 품목이라도 제조회사마다 가격과 품질이 천차만별이라서 특정 브랜드 제품 중심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ㅅ학교 영양사는 “성분표시로 모든 식재료의 품질을 일반화하기 어렵다. 성분표시만 맞추고 저질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도 있기 때문이다. 특정제품을 지정하는 것이 현행법에 위배된다면 물론 잘못이겠지만 특정제품을 지정할 수밖에 없는 영양(교)사들의 애환도 알아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교육청 지침대로 식재료를 구입하고 있는 ㅇ학교 영양사는 “원칙대로 하고 있고 별 어려움은 없다. 다만 소매품 구입하듯 학교로 들어오는 대용량 식재료에도 권장소비자 가격이 명시되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적정한 가격인지 감독해 준다면 급식유통구조가 훨씬 투명해질 것”이고 말했다.
교육청 지침대로 하고 있는 ㅈ학교의 경우 가래떡(흰떡) 구매 시 ‘국내산, 제품과 포장상태 좋은 것’이라고 적고 있었고, 고춧가루 구입 시 ‘국내산, 제품과 포장상태가 좋을 것, 해당년도 생산된 것’이라고 적고 있었으며, 계란 구입 시에는 ‘국내산, 무항생제 제품’이라고 적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급식 관계자는 “현재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보건진흥원에서 매달 가격시장조사표를 제공하고 있고 영양사협회에서도 시장 단가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급식은 전국적인 상황이니 교육부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 가격과 품질관리를 보다 엄격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보사원’ 운영하는 대형 간납(간접납품)업체 때문에 식재료 값 20~30% 인상
급식전문가들은 ‘홍보영양사’라고 하는 홍보사원들의 영업활동만 막아도 급식예산이 평균 20% 정도는 절감될 것이라고 말한다. 급식납품업자 C씨는 “대기업과 대형 간납(간접납품)업체들은 대부분 홍보영양사라고 불리는 홍보사원들을 두고 있다”면서 “이들은 학교를 찾아다니며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데, 워낙 간납업체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이번에 부패척결추진단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영양(교)사에게 상품권을 제공하거나 식용유 구매시 1통당 캐시백 포인트 지급, 학교 영양(교)사가 자사제품으로 조리한 급식용 식단 사진을 찍어 보내줄 경우 기프트카드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급식납품업자 D씨는 “일부 홍보사원들은 영업력이 뛰어나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운을 뗀 뒤, “홍보사원의 로비에 영양(교)사가 특정 제품을 지정하면 우리 같은 납품 업체는 비싼 돈을 치르고라도 간납업체의 식재료를 사서 학교에 다시 공급하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푸념했다. 아울러 “이들 홍보사원들 때문에 유통단계가 한 단계 더 늘면서 식재료 값이 20~30%정도 비싸지는 셈”이고 "결국 돈 버는 업체는 홍보사원을 운영하는 간납업체인데, 이런 간납업체 숫자가 150~200개 정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을 통해 사실상 ‘홍보사원과 영양(교)사간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즉 ‘식재료(공산품 등) 업체와 학교 간 대면 접촉 홍보행위 원칙적 금지’라는 공문을 각 학교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급식관계자들은 ‘원칙적 금지’라는 말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앙정부 차원의 공공적 학교급식 조달 시스템 서둘러야
전국적으로 하루 700만 명 가까운 유·초·중·고 학생들이 학교급식을 이용하고 있다. 급식은 학교와 교육청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도 그동안 교육부를 포함한 중앙정부는 재정과 행정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고 여러 가지 학교급식 문제가 발생해도 외면해왔다. 학교급식의 개선을 위해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며 법제도 개선방안을 제기해도 교육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온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급식비리 근절 등 학교급식 개선에 교육부 등 중앙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학교급식 전용 사이트'를 만드는 등 학교급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식중독 사고, 학교급식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뒷북 행정과 재탕, 삼탕의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며 시민단체들은 비판하고 있다.
이원영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정책위원은 “우리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야 할 학교급식이 식중독사고와 이윤추구의 급식비리로 얼룩져 있는 상황은 참담할 따름”이라며 “정부가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과 교육부, 농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합동점검단을 구성한 그 의지로 학교급식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숙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상임대표는 “학교급식 비리의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라고 일갈한 뒤, “학교급식 개선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담당할 인력도 없고 예산도 없어 근본적인 대책도 관리 방안도 나올 수가 없는 구조”라면서 “이제는 학교가 책임지는 유통과정이 한계점에 다다랐기 때문에 공공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학교급식 조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국회가 하루 속히 학교급식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학교급식법을 개정하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