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열린 LG-두산의 더블헤더 1차전. 경기 전부터 구장 안팎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지만 결과는 실망 자체였다.
이른바 져주기와 타이틀 밀어주기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두산은 만만한 파트너 고르기의 일환으로 13안타를 치고도 0-1로 패했고 2차전에서는 7-4로 앞선 9회초 3점을 헌납하면서 일부러 동점을 내주고 타격왕 타이틀을 노리고 있던 김동주에게 9회 말 한 차례 더 타석에 들어설 기회를 만들어 줬다.
뿐만 아니다. 기대를 모았던 장원진(두산)-이병규(LG)의 최다안타 경쟁, 박종호(현대)의 타격왕 획득 따위도 `정정당당한 승부'보다는 만들어주기에 의한 `치사한 배려'로 이뤄진 것이다.
이 같은 추태의 원조는 1984년의 롯데-삼성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은 만만한 상대를 고르기 위해 9월 22일 경기에서 초반 7_0리드를 뿌리치고 9_11로 역전패까지 감수하며 롯데를 파트너로 택했다.
한국시리즈 결과는 4승 3패로 롯데의 우승. 이 사건은 이후 `가을 잔치' 때면 으레 떠오르는 단골 메뉴가 됐다.
같은 해 삼성은 이만수를 타격 3관왕으로 만들려고 타율 1위를 다투고 있던 롯데 홍문종에게 9연타석 고의 4구를 내주기도 했다. 89년 빙그레 유승안의 타격왕 만들기, 92년 빙그레 송진우의 다승왕 밀어주기 등도 예외 없이 떠오르는 불유쾌한 기억들이다.
물론 끝까지 떳떳하게 자웅을 겨룬도 없지는 않았다. 90년 빙그레 이강돈-해태 한대화-LG 노찬엽이 펼쳤던 타격왕 3파전은 일대의 관심사이자 명승부였다.
치열한 접전 끝에 결국 한대화가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이강돈은 “나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여한이 없다” 며 한대화에게 축하를 보냈다.
92년은 송진우의 다승왕 밀어주기로 얼룩졌지만 동시에 같은 팀 한용덕의 페어 플레이 정신이 빛나기도 했다.
한용덕은 당초 9월 18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 선발 등판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경기 직전 돌연 등판 취소를 요구했다.
전년까지 2년 연속 10승을 기록 중인 데다 그 해에도 9승을 올리고 있던 한용덕은 3년 연속 10승 투수의 명예가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었지만 `숫자놀음을 위한 승리 따내기' 는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등판을 포기했다.
1980년대에 소속 선수에게 타이틀을 만들어준 어느 감독은 `비난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는 명언을 남겼다.
아마도 올해 후배들의 타이틀 만들기에 혈안이 됐던 감독들은 그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