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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45 章 의혈단(義血團) 개파(開派).
1.
"안돼! 가지마! 내가... 내가 잘못했어. 제발 가지마! 무향, 무
향..."
삼랑은 도일봉의 부르짖음에 놀라 잠에서 깨어 급히 도일봉의
침실로 달렸다. 불을 켜보니 도일봉이 온 몸에 땀을 흘리며 허탈한
표정으로 잠에서 깨어 멍 하니 한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삼일전 어
디서 밤을 보내고 허탈한 모습으로 풀먹은 솜처럼 늘어져서 온 이
후로는 밤마다 악몽(惡夢)에 시달려 깨곤 하는 것이다. 사람을 봐
도 아는체도 하지않고 방에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삼랑이나
밍밍이 와도 방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삼랑은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도일봉을 살폈다. 도일봉은 여
전히 정신나간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한참 후에야 혼이 빠저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어떡하지... 어떻게 하지...."
도일봉은 당장 달려나가 초무향을 찾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
워 견딜수가 없었다. 장군부에 산재한 일들, 삼랑과 밍밍등이 발길
을 막고 있다. 한곳을 택해 나서면 다른 한곳엔 또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를 찾아나선다 해도 그녀가 앞에 나탄줄것
같지도 않았다. 아찌한단 말인가?
"오라버니... 제가 도와줄 일이 있나요? 무서운 꿈을 꾸었나
요?"
"...."
"제가 그 몽고아가씨를 괴롭혀서 화가 난 것이예요?"
"...."
"그럼 그 차가운 아가씨와 관계가 있나요? 그녀는 삼일전부터
보이지 않아요."
"그녀는... 그녀는 갔어."
"가요? 어디로 갔어요?"
"몰라."
"...."
"어디로 갔는지 알면 찾아라도 갈텐데..."
"무슨 일이예요? 제가 알면 안돼요?"
"내가 좇아 버린거야. 내가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어도
그렇게 가버리진 않았을텐데... 그녀는 의지할데가 필요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그녀가 얼마나 쓸쓸하고 섭섭했을까? 만약 그녀
에게 사고가 생긴다면 난... 미안해서 살지도 못할거야. 난...난
정말..."
도일봉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삼랑은 그가 괴로워 우는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 쭈
구리고 앉아있는 도일봉을 꼭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이
를 달래는 어머니같이 끌어안은체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따뜻한 행동이 도일봉의 마음을 다소라도 안정시켜 주었
다. 도일봉은 정신을 가다듬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초무향에 대
해 말해주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삼일전 문
득 떠나간 그녀의 뒷모습까지. 그녀의 뒷모습에서 느꼈던 그 외로
움, 고독. 자신이 느꼈던 허탈감, 죄책감까지도. 숨김없이 말해주
었다.
삼랑은 도일봉의 말을 들으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세상천
지에 의지할곳 없는 초무향이 이 넓은 천지를 헤멜것을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다. 불쌍하고 안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문득 초무향과 자신은 사고무친 천애고아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
의 감정이 불현듯 일어 더욱 슬프기만 했다.
"오라버니. 이 일을 어쩌지요? 그녀는 너무 가여워요. 그녀는
그토록 상심해 있는데 말이예요? 어서 그녀를 찾아요. 너무 불쌍해
요."
삼랑은 그만 울움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히려 도일봉이 삼랑을
위로해야 할 판이 되었다.
"찾아야지. 암, 찾아야 하고 말고. 찾아서 내가 잘못했다고 빌
어야지. 이곳일이 정리되는 대로 찾아봐야지."
"그럼. 또... 또 가버릴 건가요?"
삼랑은 그만 화들작 놀라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초무향을 찾는
일과 도일봉이 또 나가버리는 일은 삼랑이 보기에 전혀 별개의 문
제였다. 지금 서로 티격태격 잔소리를 늘어놓고 밍밍을 질투하는
일도 도일봉이 곁에 있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 또 훌적 떠나버
리면 대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볼 일은 다 보는
셈이다. 삼랑은 도일봉을 또 내보내거나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금방 한 말은 도일봉이 이곳에 있으면서 찾아도 된다고 생각했기에
한 말이었다. 초무향 그녀가 불쌍하고 않ㄷ기는 했으나 그녀 때문
에 또 기다리는 외로움을 감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도일봉이 삼랑의 마음을 알아채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또 당장 그녀를 찾아 훌쩍 떠나버린다면 이곳 사람들과
삼랑에게 너무 미안한 노릇이지. 그래서 결정을 못 내리는거야."
삼랑은 우선 안심이 되었다.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오라버니는 이곳 일 때문에 바빠 지금은 나갈 수 없으니 우선
다른 사람이라도 내보내 그녀를 찾게 하는거예요. 빨리 찾는다면
다행한 일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곳일을 마무리하고 그때가서 찾
아 나서지요? 그럼 오라버니 마음도 조금은 편해질 것이 아니겠어
요?"
"누이의 생각이 나보다 한층 낫군. 하지만 그녀는 일부로 나를
피해 떠났는데 쉽게 찾지는 못할거야. 더욱이 이 일은 개인적인 일
인데 부하들을 시켜 찾게 한다면 그것도 미안한 일이야."
"이 일이 어찌 오라버니 혼자만의 일이겠어요?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려니와 또 불행한 여인을 돕자는데 누가
마다 하겠어요? 또 이 일은 그 의혈단인가 하는 나쁜 사람들과도
연관이 되어 있으니 개인적인 일이라 할 수만은 없어요. 설마 개인
적인 일이라해도 오라버니는 이곳의 대장인데 부하된 입장에서 마
다할 일은 아니예요."
다소 억지가 들어있긴 했으나 지금 삼랑의 심정으론 더한 억지
라도 부려야 할 판이다. 도일봉이 한동안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
다.
"누인 말도 잘하는군. 하지만 아무리 부하라 하더라도 아무일이
나 시킨다는 것은 역시 좋지않아요."
"한번쯤은 그럴수도 있잖아요. 그동안 오라버니께선 좋은일을
많이 하셨어요."
도일봉은 문득 긴 한숨을 쉬었다. 삼랑이 놀라 물었다.
"또 한숨을 쉬어요?"
도일봉이 삼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내가 무척 복이 많은 놈이라고 생각했어. 난 사실
잘나지도 못하고, 배운것도 없는데 좋은 부하들이 있고, 또 매번
고생만 시키는데도 이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삼랑이 있으니 말이
야. 누이는 참 착한 여인이야."
"아니예요. 오라버니는 참 좋은 분이예요. 저는 행복하답니다."
"그래요. 모두 행복해야 하는데..."
"이제 좀 자도록 해요. 제가 여기 있을께요."
"응."
도일봉은 기분이 다소 풀어지는걸 느끼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도일봉은 낙양에 있는 손삼여를 급히 불렀다.
"요즘 사업하는데 어려움은 있소? "
손삼여는 웬일인가 싶어 조심스러웠다.
"어려움이야 늘 있지요. 관가놈들의 추근대는 꼴은 정말 눈뜨고
봐주기 힘들 지경입니다. 그런데로 잘 꾸려고는 있습니다. 청응방
사방주의 도움도 크고요."
"음. 관아에 손이 다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데 어떤자요? "
"몇 됩니다. 포청의 장포교가 있고, 예부(禮府)와 공부(工府)에
도 손이 아 있습니다."
"그렇구려. 관아의 동정을 좀 더 살피도록 하시오. 성주딸 주위
를 살펴야 할게요. 분명 바얀이란 놈이 언제든 나타날게요. 그자를
보면 즉시 연락을 주고, 또 한명 남장을 한 여인이 그자 주위에 있
을 것이오. 이 두 사람을 주의깊게 살폈다가 연락을 주시오."
"그렇게 하지요."
"두 사람 모두 보통 사람들이 아니니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
이오. 괜시리 너무 접근 했다가는 살아남지도 못할테니 유념하시
오."
"명심하지요."
도일봉은 손삼여를 내보냈다. 손삼여는 무삼수 등의 혼례날에
온다며 일찍 돌아갔다. 도일봉은다시 개봉에 나가있는 원강에게도
소식을 전해 똑같은 당부를 했다.
이렇게 조취를 취해 놓기는 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연전히
초무향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간혹 꿈 속에서 그녀를
만났고 대개는 악몽이었다. 심할때는 바얀의 칼에 맞고 자신을 원
망스레 부르짖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곤 했다.
마음의 고통을 겪고는 있으나 대원들 앞에서까지 그런 표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늘 웃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날
이 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럴때면 늘 뒷쪽
폭포로 가서 목욕을 했다. 한바탕 검무를 추고서야 기분이 풀리곤
했다. 삼랑이 세심히 보살펴 주었다.
칠월에 접어든지도 이미 여러날이 지났다. 산체는 두쌍의 혼례
준비로 떠들썩 했다.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 도일봉과 만
천은 이번 혼례를 일부로 거창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 장군부
대원들중 몇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미혼이거나 홀아비들이다. 이번
혼례식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가정을 이루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였다. 장군부 일이 하루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닐바에야 모두 가
정을 이루고 뿌리를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장가보내기
심리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도일봉은 오늘도 하루종일 폭포에서 무공을 수련하며 목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주로 연마하는 것은 화사와 황룡궁이
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무공도 어느정도 성취를 거두어 스스로 자
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바탕 검무를 추고 난 도일봉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물로 뛰
어들었다. 이 무더운 날에도 물은 깊은 산속에서 흐르는 물이라 워
낙 시원했다. 그러다 문득. 물가에 누군가 있는것을 보고 화들작
놀라고 말았다. 혹 초무향이 돌아온 것은 아닌가 급히 고개를 들어
보았으나 밍밍이 배시시 웃으며 서 있었다.
"도일봉. 혼자 수영해요. 밍밍 많이 찾았어요."
밍밍은 요사이 도일봉이 시무룩 하고 자주 없어지는 것이 수상
하여 오늘은 기어이 뒤를 밟아 좇아온 것이다. 도일봉은 혼자 있고
싶었으나 이왕 이렇게 된 일 인상을 찡그리면 뭐하나 싶어 마주 웃
어주었다.
"뭐하긴. 무공을 연마하다가 땀을 식히는 중이라오."
"시원해요? 밍밍 수영할래요."
밍밍은 말릴사이도 없이 웃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속옷 바람으로
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도일봉은 쓴웃움을 지을 뿐이다. 밍밍은 깔
깔거리며 한동안 물장구를 치댔다. 도일봉도 따라 물을 튀겼다.
기분이 다소 나아지는 것 같았다.
"수영 가르쳐 줘요. 밍밍 배울래요."
손을 내미는 밍밍의 모습이 예쁘기도 했다. 도일봉은 밍밍의 손
을 잡아 천천히 수영을 가르쳐 주었다. 한동안 깔깔 거리며 헤엄치
기를 배우던 민민이 도일봉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
다.
"도일봉 사랑해요. 우리 연화처럼 결혼해요. 함께 살아요. 밍밍
혼자 있는것 싫어요."
밍밍은 저번 소풍 이후로 연화와 다소 친숙해졌고 말벗이 되었
다. 그런데 연화가 요즘 희희낙낙 결혼을 서두르자 부럽기도 하고
셈이 나기도 하는지라 도일봉에게 매달린은 것이다.
"도일봉도 밍밍 사랑해요. 하지만 조금만 참아요. 그리고 삼랑
과도 친하게 지내야 돼. 두 사람이 서로 만나기만 하면 시비를 걸
어 싸우는데 우리 셋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어?"
"삼랑 나빠요. 나만 보고 욕해요. 나쁜 계집애라고 욕해요. 삼
랑은 친구 아니예요. 나보고... 집에 가래요."
"...."
"밍밍 집에 가고 싶어요."
밍밍은 금세 시무룩해져서 울먹였다.
"집에 데려다줄까?"
"싫어, 싫어요. 우리 빨리 결혼하고 집에가요, 응?"
"알았어요. 삼랑과 잘 지내게 되면."
밍밍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강하게 도일봉을 끌어안았다. 도
일봉은 어절줄 모르고 머뭇거렸으나 이내 밍밍과 맞추어 그녀를 안
았다. 더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다. 그러면 오히려 밍밍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삼랑과 서로 불화가 있고, 밍밍의 집에서 어떻게 나
올지 뻔히 알 수 있었으나 더이상 시간을 끄는것은 밍밍만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밍밍은 도일봉이 드디어 마음을 연것을 느끼고 너
무 기뻐서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그 오랜 실랑이는 이제 필요없었
다. 두 사람은 곧 한몸이 될 수 있었다. 밍밍은 도일봉을 놓아주질
않았다.
"도일봉 사랑해요."
"응 응."
다음날부터 밍밍은 아주 활달하게 돌아다녔다. 삼랑을 보고도
먼저는 시비를 걸지 않았고, 삼랑이 시비를 걸어도 그저 건성으로
맞설 뿐이었다. 도일봉이 이번엔 너무 빠르니 다음해 쯤에 식을 올
리자고 했다. 밍밍은 다소 불만스러웠으나 이미 한몸이 되었으니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밍밍은 거의 매일 폭포로 가서
무공을 연마하는 도일봉을 꼬드겨 사랑을 나누곤 했다. 그녀는 요
즘 행복에 겨워 있었다.
날이 가고 칠월 보름이 되자 장군부는 그야말로 떠들썩하게 잔
치를 벌였다. 하루전부터 이미 축제분위기였고, 초대할 수 있는 사
람은 모두 초대했다. 장군부의 전인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청응방
에서는 사평이 와주었다.
예식은 점심 바로 전에 치루기로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도일봉
의 부친과 사평이 주혼인(主婚人)이 되었고, 삼랑과 하란 매국죽
세자매가 신부들의 화장을 도왔다. 붉은 비단공단에 갇가지 장신구
를 달았고, 화장을 예쁘게 한 후에 면사로 얼굴을 가렸다. 신랑쪽
에서도 바쁘게 준비했다.
시간이 되자 하객들과 주혼인이 자리를 잡았고, 만천이 진행을
맡았다. 두쌍의 연인이 나란히 서고 진행자의 축사(祝辭)와 주혼인
의 축사로 식이 진행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
고 땅을 굽어보며 다복다수를 빌며 술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주혼
인에게 술을 올리고 축하의 말을 들었다. 하객들의 환호속에 두쌍
의 신혼부부는 퇴장을 하였고, 축하연은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신혼부부들을 축하해 마지 않았다.
그렇게 식은 끝나고 장군부는 곧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
다. 신혼부부들은 새로 마련된 거처에 기거하게 되었다.
산체의 분위기가 안정되자 도일봉은 만천과 상의하여 부장급이
상의 인물들을 장군각 회의실로 모이게 했다. 회의실엔 여전히 열
개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두 번째 자리인 백호각의 조이강 자
리가 비어있을 뿐이었다. 도일봉은 새로이 네자매중 맏이인 매아가
씨를 새워 백호각주 자리에 앉혔다. 매는 조이강만큼 실력이 있었
고, 또 사막에서 큰 공을 세운바 있으므로 이번 인사는 반대하는
자가 거의 없었다.
모두의 자리가 정해지자 도일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들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소이다. 오늘은 이미 말한 바 있
는대로 우리 장군부를 새로이 개혁(改革)하려는 마음이 있어 모두
에게 이 방안을 검토해 보고 이 자리에서 발표할 것을 부탁했던 것
이오. 사실 우리 장군부가 이름을 내걸고 일을 시작한지는 이미 이
년이 넘었소이다.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고, 기쁜일도 몇 있었
소. 그간 많은 일을 하긴 했지만 중구난방(衆口難防) 일정한 진로
가 없었단 말이오. 도적질, 수적질, 무림일에도 관여하고, 사업도
벌이고, 관과와 마찰도 있었소이다. 이와같은 일들이 우리만 잘 먹
고 잘 살자는 것은 아니었으되 우리는 그간 적을 너무 많들어 놓고
말았던 것도 사실이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옳은일을 한
다해도 적이 너무 많다보면 필시 타격을 입고 말 것이오. 앞으로
우리는 어떤길을 가야할지 말씀들을 해 보시구려."
나이가 제일 많고 살림을 맏고있는 신해수가 먼저 입을 열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장군부가 뚜렷한 목적도 없이 몽고놈들
을 상대로 재물을 털어 빼앗고, 사람을 해친다면 우린 오로지 비적
(匪賊)에 지나지 않아 관의 토벌을 받고 말 것입니다. 더우기 우리
가 몽고놈들 재물을 털어 한인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우리 한인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말이오. 몽고놈들은 자신들이 털린만큼 또 한인들을 닥달해 거두어
들이려 할테니 말이오. 더군다나 우리의 세력이 커지는만큼 관의
토벌대상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오.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외다."
신해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삼산이 눈알을 부라리며 우렁우렁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신부장!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게요? 우리가
애초부터 한데 뭉친 이유가 뭐요? 바로 오랑캐놈들을 때려부수고
헐벗은 백성들을 돕자는 것이 아니었겠소! 그런데 이제와서 관의
토벌이 두려워 꼬리를 말고 구멍속에 숨는다면 그 무슨 낮으로 얼
굴을 들고 나다니겠느냐 말이오."
황삼산은 워낙 성질이 급하고 직선적이며 소리가 커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신해수가 고개를
저었다.
"본인의 말 뜻은 그런게 아니외다."
"아니면...?"
황삼산이 또 나서려 하자 만천이손을 내저었다.
"격론(激論)은 삼가하도록 하십시다. 두 분 모두 옳은 말을 했
소이다. 이자린 의견을 듣자는 자리이니 생각한 것이 있으면 기탄
없이 하시도록 하시구려."
황삼산이 다시 섰다.
"나도 뭐 의견을 발표하는 것 뿐이오. 우린 여직껏 잘 해왔고,
기세도 점차 강해지고 있는데 이제와서 주춤할 필요는 없다 이 말
이외다."
현무각의 원강이 나섰다.
"사실 아직까지의 우리 힘으로는 관이나 의혈단 같은 큰 세력들
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는 여력은 없소이다. 소규모 전투야 해볼
만도 하지만 몇천명 이상 달려든다면 벼텨낼 힘이 없는것은 사실이
오."
주작각의 손삼여가 나섰다.
"본인 생각으로는 우리가 비적으로 남기보다는 무림의 한 파벌
로 지내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무림인들중엔 몽고놈들과 대항하는
사례가 많고, 백성들을 돕지 못할 이유도 없소이다. 더우기 명분이
생기니 관의 직접적인 토벌대상은 되지 않을 것이고, 의혈단 같은
몽고 앞잡이들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무림의들과 동조할 수도 있으
니 말이외다."
모윤이나 매소저 왕안수는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모윤은 본래
말이 없는 사람이고, 매소저는 아직 배우는 입장이요, 왕안수는 사
람들을 돕거나 하는일은 잘해도 싸움에 관해서라면 영 서툴렀기 때
문이다.
도일봉이 나섰다.
"새신랑 무순찰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게
요?"
무삼수가 히죽 웃었다.
"모두 좋음 말씀들을 이미 다 했는데 더 무슨 할 말이 있겠소이
까. 그중 손삼여의 말이 좋다고는 생각하오."
도일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만천 선생께선? "
만천이 곧 말을 받았다.
"길게 생각할수록 복잡한 문제를 만들기 마련이오. 우리가 하고
자 하는 일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오. 요는 어느곳에 좀 더 치중을
하느냐가 아니겠소? 모두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소이다. 종합해
본다면 이렇소. 우리 장군부가 이자리에 머물지 말고 더욱 발전해
나가려면 우선 우리 장군부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
이오. 또 우리들의 처음 목표였던 오랑캐를 물리치고 백성을 돕자
는 일도 중단할 수 없는 일이오. 이 일이 빠진다면 우린 이미 명분
을 잃을 꼴이 되므로 더 존속할 가치가 없는 것이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되도록이면 관과의 충돌을 피해
야 한다는 것이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해도 이땅
에서 살고 있는 한 끝까지 그들을 피할 순 없으니 말이오. 이것이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책이오. 비적보다는 차라리 무림
일맥이 좋소이다. 앞으로 군사훈련은 되도록 삼가하고 대장을 따라
무공을 연마하는데 주력하도록 하십시다. 그것이 의혈단과 같은 자
들을 상대하는데 더욱 유리할 것이오. 우리 세력이 더욱 커지고
백성들의 지지가 생길때 다시 군사를 일으켜 몽고와 대항하도록 합
시다. 사업을 일으켜 백성들을 돕고 동조자들을 규합해 후일을 기
약하도록 합시다. 몇몇 탐관오리들을 괴롭혀 우리가 여전히 그들과
는 적임을 밝히는 일도 중요할 것이오."
만천이 의견을 종합해 주니 더이상 분분함은 없었다. 도일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옳은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깟
비적이면 어떻고 쥐새끼면 어떻겠소. 모두 진정으로 우리 장군부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되어 다행이오. 우린 무림일
맥으로써 앞으로 무림인들과 상호 협조하는 기틀을마련해 가도록
합시다. 이 일은 만천선생께서 입안을 마련하고 문서로써 남기도록
하시구려. 그리고 무순찰께서 널리 알리도록 하시오."
만천과 무삼수이 대답을 하고 도일봉이 말을 이었다.
"다음은 우리 장군부의 제정상태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신선
생?"
신해수가 말을 받았다.
"예. 현재 남아있는 자금은 사막에서 얻은것이 전부입니다. 전
에 얻은것중 골동품이나 서화같은 것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건 단
시일내에 처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요. 그간 많은 사람들을
도왔고, 또 사업채 쪽으로 자금이 몰려있는 실정입니다. 허나 우리
들의 생활용품은 사업체에서 충당할 수 있으니 당장 필요한 자금은
없습니다."
신해수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낙양 사업체의 원강이 나섰다.
"낙양엔 현재 찻집이 세곳, 객점이 한 곳, 주루가 두 곳입니다.
제정상태는 다소 여유가 있소이다. 허나 몽고놈들의 세금은 워낙
무겁고 이곳저곳 뜯어가는 놈들이 수두룩 합니다."
도일봉이 말을 받았다.
"좋소. 원부장이 사업에도 수완이 좋은줄은 몰랐구려. 계속 노
력하도록 하시오. 또 관과와는 되도록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
시오. 그리고 전에 말했던 바얀과 초무향에 관해 알아보는 일을 잊
지 않도록 하시오. 손부장이 말씀해 보시오."
손삼여가 나섰다.
"예. 개봉쪽도 별 일은 없소이다. 기루가 둘이오, 객점이 한
곳, 지금 한곳의 표국을 인수하는 중입니다."
"좋소. 그리고 그 표국인수는 재고해 보도록 하시오. 개봉에는
대성표국이라는 막강한 곳이 있으니 조무래기 표국은 힘을 못쓸 것
이오. 그들은 관과 결탁이 심하니 뚫기는 힘들 것이오. 차라리 골
동품점을 찾아보시오. 현재 우리에겐 많은 골동품들과 사막에서 얻
은 천여권의 오래된 불경 등이 있으니 물건은 이미 확보된 상태여
서 어려움은 없을 것이오. 그리고 그 대성표국과 대성상점의 하대
치를 잘 살피도록 하시오. 그자는 바로 의혈단의 자금줄을 쥐고 있
는 인물이란 것을 염두에 두시오. 홍택호쪽은?"
이 일도 역시 손삼여가 주관하고 있었다.
"예. 논, 밭, 과수등 주로 곡물이 자라는 땅을 구입하고 있습니
다. 회안(淮安)의 부호(富豪)들 방해가 심하고 관에서도 도정(陶
頂)이란 인물이 누구냐고 성화가 심합니다. 회안성주는 벌써 여러
차례 도정을 만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하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들놈이 그곳에선 제법 유명
인사가 된 모양이구려. 내 언제 한번 회안성주를 만나보리다. 그동
안 잘 구슬러 놓도록 하시구려."
모두들 한바탕 웃기도 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보았습니다
잘 밨어요
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