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나는 산동네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다.
그 동네는 계단이 많고 청소차가 드나들 수 없는 동네였다.
그래서 그동네 환경미화원은 언덕길을 손수레를 밀고 오르내리며 청소를 하였다.
눈이라도 내려 얼어붙는 날이면 손수레 뒤에 달아맨 폐타이어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미끄러지기 때문에 가끔 그 청소 손수레를 잡아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환경미화원은 두꺼운 안경에 막걸리를 좋아하는 아주 소박한 우리네 이웃이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고 곡절이있다.
그가 환경미화원을 하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넥타이를 매며, 사무직에 종사하려는 화이트 카라를 꿈꾼다.
그는 화이트 카라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직업을 꿈꾸었던 사람이었다.
어떤 어머니도 자식을 낳을 때 환경미화원이 되라 하거나 노동자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도 어릴 때 부터 환경미화원을 장래 희망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지 본의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며, 자신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일해야만 하는 환경에 놓일 수 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뜻이나, 적성과는 전혀 다른 환경 미화원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그는 명문대를 나와 무려 십여년이나 사법고시 공부를 하였었단다.
그러나 공부를 한다고 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번번이 고배를 마신 그는 나이도 차고 집안의 성화에 못이겨 양가집 규수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신접 살림을 차렸다.
처음 몇년은 처가의 덕과 처의 고생으로 어려운 살림을 끌어 갈 수 있었다.
그러던 사이에 아이들이 둘이나 태어났다.
차츰 민생고는 그를 조여왔고 주위의 시선도 따가웠다.
태어나 배운 것이라고는 공부 밖에 없는지라 그는 특별한 기술도 없고, 나이가 들어 쉽사리 취직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는 사람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여보게 그러지 말고 취직할 때 까지 내가 하는 환경 미화원 한번 해보려나? 밤에만 일하는 직업이니 누가 볼 사람도 없고, 조금 하다가 좋은 직장이 생기면 옮기면 되지 않겠는가?"
그는 너무 많은 시간을 놀았던 데다가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우선 취직 할 때 까지만 환경미화원 생활을 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고 시간이 지남에 다라 호봉에 따른 급여도 차츰 나아졌다.
이제는 아무 기술도 없는 그로서는 어떤 직장이나 막 노동판을 가더라도 그만한 벌이가 될 수 없었고, 오랄곳 없는 취직자리를 알아본다며 몇년간의 안정된 생활을 깰 용기가 없었다.
"환경미화원이면 어떻고, 막노동이면 어떻습니까? 내 한몸 힘들이면 우리 가족 따뜻한 방에 잠재우고 공부시킬 수 있잖아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지극히 책임있는 말이고, 당연이 해야할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나마 지극히 책임있는 말과 당연이 해야할 일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는 그렇게 한해 두해 넘기다 그만 이제 바꿀 수 없는 직업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자신의 음식물 찌꺼기와 연탄재 뭍은 옷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 정말 지난 십년동안 법 공부 하길 잘 했어요. 내가 고시패스는 하지 못했지만 평생 법에 대하여 알기 때문에 최소한 법을 어기지는 않을 겁니다. 법, 그거 지킬수록 편한 것 아니예요? 내가 남의 집 앞에 침을 뱉으면 그 사람도 우리집 앞에 침을 뱉습니다. 내가 무단 횡단 하면 우리 아이들도 무단횡단 하게 돼요."
나는 무거운 손수레에 매달려 내려오던 그에게 가끔 막걸리 사발을 권하였다.
서울역 지하도에는 멀쩡히 생긴 고학력의 패배자들이 얼마나 많이 새우잠을 자며 가족을 버려둔 채 비겁하였는가?
이제 그 곳을 이사 온 지 몇년이 지났다.
우리 구에서는 구청에서 관장하던 청소 업무를 구청장이 바뀌면서 청소 대행업체에게 하청을 주어 그간 일하던 환경 미화원들이 거의 바뀌었다.
그가 지금도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요즘 그를 만난 적도, 먼저 살던 그 동네에 가본 적도 없지만 그가 늘 머릿속에 남는다.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꿈을 접고 땀 흘릴 줄 아는 사람! 그는 법은 지킬수록 편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본 <성자가 된 청소부>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가 아닐까?
첫댓글 맞는말씀이시네요,,그분말씀에 안일하게 살아온 제 자신을돌아보게 되네요..편한것엔 왜.그리도 빨리 젖어드는지요..그늘진곳ㅇㅔ서 묵묵히 일하시는분들이 수고하심을잊게 됨도 힘든일을 내가 아닌 누군가 해주기를바라기때문이 아닐까하는 죄스러운 맘임니다..글주심에 감사드리며..
푸름님의 늘 푸르려는 마음을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