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부터 해외로 떠돈 게 어언 15년이 훌쩍 넘었다. 다시 아부다비에서......
가끔 한 노래를 줄곧 흥얼거릴 때가 있다. 요즘 거의 한 달 가까이 같은 노래만 무한반복으로 되뇐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우연히 <싱어게인 3>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 아직 챙겨보지 못했지만, 홍이삭이란 친구가 우승했다. 이른바 무명가수들의 재발견 무대인데, 들을수록 옥석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다들 노래를 참 잘한다. 고음불가인 나로서는 그저 부럽기만 했지만, 미세한 차이를 걸러내는 심사위원의 안목은 또 다른 영역에서 경외를 갖게 했다. 그 서바이벌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유독 소수빈의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가 김광석의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를 부를 때였다. 너무도 오랜만에 전율이 돋고 눈가마저 적셨다.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 중에서 <내 마음의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사랑했지만> <거리에서>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음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 내 추억과 겹치는 노래도 무수히 많지만, <마음의 이야기>와 엮인 (내 마음의) 이야기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선연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인 울산으로 내려간 뒤, 결혼을 약속했는데도 점점 둘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 무렵, <마음의 이야기>는 우리를 다시 잇게 해줬다. 같이 그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가까워졌던 기억. 지금도 새록새록 하다. 비록 (김광규의 시처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았지만.
김광석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두어 해 전, 울산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가 마친 뒤, 김광석과 함께 왔던 스태프가 들렀던 카페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김광석의 CD를 산 뒤라서 너무도 운 좋게 내 이름과 함께 김광석의 사인까지 받았다. 거의 30년이 돼가는데, 지금도 그 CD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공효진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데뷔했던 첫 시사회에서 사인을 받은 리플릿을 지금도 가지고 있듯이. 아마 공효진은 지금은 사라진 을지로 중앙극장에서 처음 사인했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1999년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던 그날도.
가끔 김광석의 노래를 듣곤 한다. 그때마다 여전히 내게 추억 한가득 안겨준다. 김광석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오다가 세월과 더불어 조금씩 잊혔다. 그러다 소수빈의 노래를 듣고, 다시 김광석이 떠올랐다.
소수빈의 감성이 한몫했겠지만, 새삼스레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의 가삿말을 되새기자, 도저히 그 노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겠다. 무엇보다 노래를 흥얼거릴 때마다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창유리 새로 스미는 햇살이
빛 바랜 사진 위를 스칠 때
오래된 예감처럼 일렁이는
마당에 키 작은 나무들
빗물이 되어 다가올 시간이
굽이쳐 나의 곁을 떠나면
빗물에 꽃씨 하나 흘러가듯
마음에 서린 설움도 떠나
지친 회색 그늘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파도처럼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은 비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유리처럼 잠겨있는 시간보다
진한 아픔을 느껴
지난 사랑도 언젠가 잊히겠지만, 어느 기대어 앉은 흐린 오후에 왠지 가슴 한 켠이 아려오며, 다시 떠오르는 옛사랑. 곱씹어볼수록 가사가 사무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마음의 이야기>에 무조건반사로 떠오르는 내 그리운 사랑 때문에. 과연 내 치기 어린 사랑이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의 화자만큼 절절할까도 싶지만.
노래 한 곡 때문에 30년 전을 휘젓다가, 옛사랑을 고이 과거 속에 묻고 '굽이쳐' 다시 건너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