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아유, 어쩜 손끝이 이렇게 야물데?”
춘천 댁의 말에 가희는 얼굴을 붉혔다.
얼마 전부터 춘천 댁에게 음식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호연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할 일이 거의 없었던 가희에게 생긴 취미나 마찬가지였다.
“괜찮아요? 호연 씨 입맛에 맞을 까요?”
완성 된 해물 탕을 앞에 놓고
다시금 확인을 하는 가희를 보며 춘천 댁은 웃었다.
그녀가 보기에 가희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정말 진국이었다.
춘천 댁 입장에서 여자 나이 스물넷은 아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가희보다 두 살 더 많은 자신의 딸만 보더라도
온통 멋 부리고 노는 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가희는 아무리 봐도 요즘 아가씨 같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주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배우며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고용인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싹싹했으며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이
정말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그래서 요리를 배우겠다는 가희에게
정성을 다해 성의껏 가르쳐 주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었다.
더군다나 가희는 가르쳐 주는 것은 모두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오랜 살림 솜씨를 자랑하는 춘천 댁 못지않게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냈다.
“내 장담하는데 사장님도 맛있다고 할 거유.”
“다행이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감사는 무슨..........무에 어려운 일이라고.”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피곤하실 텐데 일찍 퇴근 하세요.”
“내가 피곤할 일이 뭐가 있어.
사모님 덕에 요즘 얼마나 수월한데.”
“어유, 이모님도 참.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가희는 춘천 댁에게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아주머니라는 호칭보다 더 친근한 느낌이 들어
춘천 댁에게 이모님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벌써 한 달 이상을 들어온 사모님이라는 말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모님을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 부르라는 거유?”
“그냥 가희라고 부르시면 되잖아요.”
“에고, 그런 소리 마라요.
사장님 아시면 날벼락 맞으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호연이 거론되자 결국 가희가 물러섰다.
호연은 아무리 가희라도 설득이 불가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춘천 댁을 배웅하고 들어온 가희는
식탁을 곱게 차려놓고 식탁보를 덮었다.
시계를 보니 곧 있으면 호연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가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요즘 새로 배우기 시작한 십자수를 꺼내 들었다.
익숙지 않은 작업이라 어렵긴 했지만 무척이나 재미있기도 했다.
지금 만드는 것은 호연의 차에 깔아줄 방석의 커버로 사용할 본이었다.
호연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가희는
지루함도 잊은 채 작업에 몰두했다.
***
“제가 먼저 술 시켜놨습니다.”
호연이 샤를에 도착한 시간은 7시 5분이었다.
선우의 말이 호연에게는 마치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왔느냐는 말처럼 들려
내심 뜨끔했지만 모른 척 자리에 앉아 술잔을 건네받았다.
탐색하는 듯한 시선을 무시하며 선우의 손에 들린
술병으로 시선을 돌린 호연이 입을 열었다.
“로얄 샬루트 로군.”
“참고로 50년산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듯
뻔뻔하게 대꾸하는 선우를 그냥 보아 넘길 호연이 아니었다.
“자네가 술 값 낼 건가?”
“술자리에 초대하신 분은 제가 아닌 사장님이신데요.”
어제 일 때문에 상당히 배알이 꼴린 듯
오늘 하루 종일 염장 질을 하는 선우가 무척이나 얄미웠다.
“자네 요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소리 못 들었나?”
“이럴 때나 돈 많은 사장님 덕 보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넉살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선우였다.
그런 선우의 성격 때문에 냉정한 호연과
이토록 잘 융화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어디 내놔도 굶어죽지는 않겠군...........
호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에 빠지면 아마도 입만 동동 뜰 거야.”
“설마요. 입만 가라앉지 싶은데요.”
끝까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선우는
거기에서 그치지지 않고 한쪽 눈까지 찡긋거리며 덧붙였다.
“물고기랑 얘기해야 하잖아요.”
결국 호연이 먼저 제 풀에 지쳐 말을 돌려야 했다.
“그나저나 여기 사장이 용케 이걸 내놨군.”
“제 아무리 귀하다 한들 사장님 이름 값 만은 못하더군요.”
“자네에게 말발로 이긴다는 건 불가능 한 것 같군.”
“사랑을 하십시오.”
농담처럼 뱉어낸 말이었지만 그건 선우의 진심이었다.
호연이 사랑에 빠진다면 오래전 15살 때의 해맑은 모습을
다시금 볼 수 있을 거라 여겼기에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호연은 역시나 농담으로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훗, 흰 소리 그만 해.”
호연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었다.
호연은 호연대로,
선우는 선우대로 왠지 모를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렇게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두어 잔 쯤 술을 마셨을 때
참다못한 선우가 먼저 침묵을 종식 시켰다.
어쩌겠는가.
계급이 깡패라고............
부하직원인 선우가 져 주는 것이 도리 아니겠는가............
뭐 그것이 남들 보기에도 괜찮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 말씀하십시오.”
“뭘?”
“사장님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 뭡니까?”
“언제 점쟁이로 전업했나?”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도 읊는다는데
전 벌써 눈칫밥만 15년입니다.”
“이봐,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악덕 사장인 줄 알 것 아닌가.”
“뭐, 아니라는 말씀은 못 하실 겁니다.”
호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담배를 한 가치 꺼내 불을 붙인 호연은
허공을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듯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해. 자꾸만 신경이 쓰여.”
역시나 앞뒤 꼬리 다 자른 말을 중얼거리는 호연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파악한 선우였다.
“같이 살고 계신 분입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말을 꺼낸 선우조차 알고 있었다.
물론 남들에게야 당연하겠지만
그 대상이 호연이라면 그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겠지.”
무엇에 대한 긍정인지 모를 대답이 호연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또 한참동안 두 사람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 문득 선우가 물었다.
“사랑하십니까?”
어쩌면 호연보다 더 호연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선우일지도 모른다.
선우의 말에 호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사랑? 하, 누가? 내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왜 말이 안 됩니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가희를 옆에 두고 있는지
몰라서 그런 소릴 하는 건가?”
“압니다.
형님의 복수를 위해서 아가씨를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그러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사랑.........
자네까지 빌어먹을 사랑 타령인가?
지겹군, 지겨워.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고...........”
“하지만 지금 사장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입니다.”
사실 선우는 알고 있었다.
호연이 핸드폰 대리점에 갔었던 것을.........
다만 호연이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리점에 간 이유조차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희에 대해 말 할 때
호연의 눈빛과 표정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헛소리 하지 말게나.”
“왜 자꾸만 자신을 속이려 하십니까.”
“사랑 따위 믿지 않아.
사랑이란 게 있을 것 같은가?
다 거짓이야.
이 세상에 사랑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어.”
그래........
사랑 같은 게...........
빌어먹을 사랑 따위 존재할 리가 없어.
만약 그렇다면 내 스스로 내 존재를 부인하지도 않았을 거야............
지난 15년 세월...........
나 자신을 저주하지도 않았을 거야............
결코 사랑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단 말이야.............
호연은 그렇게 절규했다.
“사랑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분명 아가씨를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선우는 호연이 애써 만들어 놓은 보호막에 비수를 꽂았다.
그것은 아주 작은 비수였지만 호연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 웃기는 소리 하지 말게.
난 가희를 증오해. 미치도록 증오한다고!”
호연의 고함소리가 룸 안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한 맺힌 절규였다.
결코 사랑이어선 안돼.............
호연은 그렇게 다시금 허물어지려는 보호막을 사수했다.
“사장님, 하루에 아가씨 생각을 단 한번도 안 하십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가씨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가씨가 안 보이면 미치도록 걱정 되지 않으십니까?
아가씨가 만약 다른 남자와 있다고 생각해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당신의 눈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사랑임을 이제는 아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선우는 호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호연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백 마디 말보다 더한 진실이었다.
“처음 인정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어떤 것보다
쉬운 게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제 그만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십시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선우의 말이 올가미가 되어 호연의 목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호연은 죽어도 인정할 수 없었다.
“시끄러워!”
호연은 고함을 치며 벌떡 일어섰지만
떨리는 음성은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언제까지 스스로를 속이며 괴로워만 하실 겁니까.”
선우의 음성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배어 있었지만
호연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리 자네라 해도 주제넘게 왈가왈부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난 가희를 증오해.
세상이 뒤바뀐다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
분노를 터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걸어 나가는 호연.............
선우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사랑과 증오는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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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 문제 하나.........
이 술집에서 술값은 누가 냈을까요?
푸힛..........(설화의 헛소리~냐하하하~)
명절은 잘 보내셨어요??(넘 늦은 인사 죄송해요...꾸벅(__).....)
오늘은 눈이 내렸어요.
아침에 나오는데 온 세상이 다 하얗더라구요...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ㅋ
날씨는 무지무지 춥던데...
감기들은 안걸리셨나요?????
감기 조심하세요..........^^*
후다다닥~~~~~~ <ㅣ= 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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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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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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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물론 남은 사람이 'ㅅ'
당근 남은 사람이..ㅇ-ㅇ ㅋㅋ 불쌀한 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