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김규민의 <옛 이야기>에 관해서 글 하나 쓰고 싶었다. 아마도 '손수건만큼만 울고' 라는 가사에 내내 사무쳐서일 것이다. 간혹 노래를 흥얼거릴 때 이 가사가 나오면 두 검지로 사각형을 그리며 애써 이 부분을 부각시키곤 한다.
사실 손수건을 적시려면 한두 방울의 눈물로는 어림도 없다. 실컷 울 수 있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무한정 슬픔에 빠지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다. 슬퍼서든, 감동에 겨워서든, 손수건이 다 젖도록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박주연이 쓴 가사를 곱씹어 본다. 비록 내 해석이 너무 단순한 느낌에 불과할지라도.
옛 얘기 하듯 말할까 바람이나 들으렴
거품 같은 사연들 서럽던 인연
과연 박주연답다. 가사의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바람이나 들으란다. 귀는 달리지 않았지만 내 사연을 품은 채 멀리멀리 전해져 언젠가 닿을 수 있는 바람의 존재. 그도 아니면, 그냥 거품같이 곧 꺼져버릴 넋두리이니 바람처럼 흩날리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도.
눈물에 너는 쌓인 채 가시밭 내 맘 밟아
내 너를 만난 그곳엔 선홍빛 기억뿐
선홍빛 기억은 어렴풋이 느끼기에도 그저 생생하다는 뜻만은 아닐 거라고 여겼다. 역시 예감은 들어맞았다. 군에서 서로 알게 된 작곡가 하광훈과 김규민. 사고로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김규민의 마음을 하광훈은 듣게 된다. 하광훈은 김규민에게 작사가 박주연을 소개한다. 김규민의 마음이 박주연이라는 언어의 연금술사를 만나 비로소 <옛 이야기>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널 마중 나가 있는 내 삶은 고달퍼
짓물러진 서러움 내 어깨에 춤추면
여전히 헤어진 친구를 못 잊고 그리워하는 마음. 박주연은 이를 두고 '널 마중 나가 있는 삶'이라고 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조금씩 새로운 인연을 맺기보다, 오로지 너를 향해 멈춰서 있거나 퇴행할 뿐이다. 고달프고 서럽기도 한 그 그리움 안고서. 하물며 그리움은 설움이 되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어깨 위에 춤추듯 맴돈다.
갈 테야 그 하늘과 나를 추억하는 그대
손수건만큼만 울고 반갑게 날 맞아줘
이제 더는 그리움에 온통 짓물러진 마음으로 울지만 말고 차라리 네게로 가겠다고 한다. 다시 만난다는 게 어쩌면 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부디 극단에 가까운 선택을 하기보다 그 마음만 향하기를 바란다. 아무려나 참 애틋하다.
왜 이리 늦었냐고 그대 내게 물어오면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서야 왔다고
아마도 그리운 마음은 네게로 향한 지 오래고 이미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머뭇거리는 사이 늦어진 해후를 세월의 장난으로 여기다니. 곧, 운명이란 얘기다. 운명이라 여기며 이해를 구한다.
정확히 10년 전 싱가포르에 머물 때다. 토요일 오후에 퇴근하면, 국경을 건너 말레이시아 조호르 바루나 부킷 인다에 가곤 했지만, 아예 동료와 한국식당으로 곧장 갈 때도 있었다. 거나하게 (그 비싼) 소주 몇 순 들이켜고, 아쉬운 마음에 숙소에 모여 2차를 하곤 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흥겨운 시간이 뒤잇는다. 집에 초대한 동료는 손님치레라며 오디오를 켠다. 이윽고 기타를 가져온다. 한 곡씩 노래를 부를 때 내 차례면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바로 김규민의 <옛이야기>. 지금도 이 노래는 1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옛 이야기>는 1991년 나온 음반, "평온을 기대하며"에 수록된 곡으로서 하광훈이 프로듀싱 했다. 이번에 새롭게 안 놀라운 사실. 이 음반에 윤상이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고, 코러스에는 장필순, 신윤미, 하광훈, 이승철 등 쟁쟁한 가수들이 참여했다는 것. 이 기회에 음반의 모든 곡을 들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