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일백예순네 번째
누가 조슈아 벨을 알았을까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역.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한 청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합니다. 연주한 지 6분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음악을 들었고, 43분 동안 일곱 명이 청년의 바이올린 연주를 1분 남짓 지켜보았습니다. 스물일곱 명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고, 그렇게 모인 돈은 32달러 17센트였습니다. 불과 며칠 전 그 청년은 100달러짜리 티켓을 구입한 청중으로 객석을 꽉 채웠었지만, 그런 거장이 무료로 제공한 콘서트보다 바로 옆 로또 가판대가 더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공연하던 그 청년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날 350만 달러짜리(한화 45억 원)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43분 동안 멋진 연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오가던 1,070명은 단 1초도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이 공연을 제안한 워싱턴 포스트는 현대인이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지만, 우리는 너무도 바쁘게 살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삽니다. 어느 유명 작가가 가명으로 새 작품을 내놓았더니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신문에서 그 작품이 그 유명한 누구의 신작이라고 소개되자 금새 불티나게 팔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볼 능력이 있는 걸까요, 겉으로 내민 이름에 현혹되어 있는 걸까요? 그만한 가치에 맞는 돈을 쓰고 있기는 한 걸까요? 쓸모보다는 허명에 끌려 명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여전한 세상. 나 역시 새 책이 나오면 작가 이름부터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