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 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ㅡ2019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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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단 선배 한 분이 찾아오셔서
올해 있을 영주문화원장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의 꿈과 포부를 밝히면서 도움을 청해오셨는데 맞장구를 치며 응원한다고 했습니다
주변에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의미를 지닌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늦게 지니게 된 이름을 내세워 명함을 뿌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깜냥이 안되는 이들이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는
'시인'이란 이름으로 늙어가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괜찮지 않으냐고 서로 웃었습니다
그나저나 올해 문화원에는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는 이들로 채워지길 소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