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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청장 선거 최대 의사 표시층은 선거 불참자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자 승리한 민주당을 제외한 각 당은 모두 심각한 내부 비판에 휩싸였다. 국민의힘 측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이재명 대표의 비리에만 집착해 수사하고 수차례 기소까지 했으나 그런 민주당에 이번 강서 보선에서는 참패했다”고 개탄하며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다. 당의 총력을 기울였으나 1.83%라는 매우 초라한 성적을 거둔 정의당에서는 이정미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와 함께 재창당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의당·진보당·녹색당 득표율을 모두 합쳐도 3.5%가 안 되기 때문에 “‘진보통합론’을 포함한 재창당안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강서구청장 선거 최대 의사 표시층은 선거 불참자들
강서구민도 아니고 어떤 정당의 당원도 아닌 나는 투표장에 가지 않은 51.3%의 주민 편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은 정당 후보의 모든 득표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다수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번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가 내년 총선의 전초전이라고 의미부여한 다음 당의 총력을 집중했고, 여러 소수정당들은 후보의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당으로서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부각하고 내년 총선 이후의 한국정치에서 의미있는 세력으로 부상하기 위해 이 선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 양당과 소수당들의 득표를 모두 합쳐도 선거 불참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선거의 최다수는 투표장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사회조사에서 가장 주의 깊게 봐야할 응답은 “모르겠다”라는 것을 지적한 사회학자 부르디외(Bourdieu) 주장과 통하는 것이다.
즉 이번 선거에서 대다수의 서울 강서주민은 “모르겠다”, 아니면 “싫다”, “어느 후보 어느 정당도 내 삶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지자체 선거가 아니라 총선이었다면 투표율은 좀 더 높았을 것이고, 대선이면 더욱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겠다”, “모두 싫다”, “누가 되어도 같다” 등의 불참 비율이 유권자의 반을 넘었다는 말은 바로 이 대답들을 나오게 한 질문의 문항들, 즉 선거에서 유권자가 받아든 선택지의 메뉴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권자들은 이 선거가 내놓은 질문 자체에 항의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선거정치나 정당,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경고장이다. 이런 선거에 각 당의 대표급 인물이 총출동해서 선거운동을 하고 엄청난 금전과 시간을 투여하는 것 자체가 절반 이상 국민들에게는 쓸데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두 거대 정당의 한 축인 국민의힘은 내부의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에도 불구 대통령은 그대로 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다른 한 축인 민주당도 이번의 승리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져 윤석열 정부의 온갖 퇴행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알리면서 선거 준비에 몰두할 자세다. 내년 총선이 윤석열 정부의 진로를 좌우할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친위부대 중심으로 당을 확실하게 장악해서 모든 의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 선거에 가장 중요한 변수인 언론 장악에 사활을 걸고, 자유총연맹 등 관변 단체에 총력 지원을 하고, 모든 시민단체의 발목을 자르고 있다. 아마 윤석열 정권은 내년에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관권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러한 시도에 맞서 민주당은 정권심판 담론을 중심으로 총력을 다 할 것이고, 모든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공천을 받기 위해 줄을 설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6일 국회 당사무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뒤 사무총장을 비롯한 임명직 당직자가 총사퇴했다. 2023.10.16. 연합뉴스
양당 총력전이 국민의 삶 향상시키는 결과를 낼 수 있나?
그런데 이 양당의 사활을 건 쟁투가 과반수의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오게 만들 수 있을까? 투표율이 낮더라도 지역구 유권자의 4분의 1만 얻어도 대략 당선되니까, 그 정도 표를 얻는 일만이 양 정당의 관심사가 아닐까? 대중들의 불만이 더 누적되면 촛불시위도 더 동력을 받을 것이고, 정권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투표장에 나온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지난번 총선 정도로 민주당이 압승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과 협치를 하거나 대연정 같은 것을 할까?
지금 윤석열 대통령 스타일로 봐서는 거의 기대 난망이다. 아니면 민주당이 총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문재인 정부가 못다 한 개혁의제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 만약 내년에 그렇게 할 것이라면 대법원장의 임명을 무산시킨 지금의 의석수로써 왜 지금까지 그러한 개혁적 입법 작업을 하지 못했을까?
윤석열 정권이나 국민의힘이 아무리 국민의 불신을 받아도 민주당이 개혁의제를 추진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내년 총선에서 투표장에 가지 않을 것이다. 즉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실정 여부, 혹은 양 정당의 선거 전략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투표율이 좌우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이 왜 정권을 빼앗겼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 즉 지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복기나 자기반성이 나온 것이 없으니, 사람들은 민주당을 지지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총선에서 “모르겠다” “싫다”라는 의견이 찬반을 압도하여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처럼 될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나 윤석열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왜 1% 밖에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소수정당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라고 묻지만, 한국 정치, 아니 국가와 국민의 삶은 이번 서울 강서구 선거에서 총 3.5%밖에 얻지 못한 소수정당들이 던진 의제들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 후보들이 내세운 주거 빈곤 문제, 생명 안전, 생태주의 공약은 지역개발과 경제 활성화라는 성장주의 기조를 갖는 양당의 공약보다 서울과 강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재와 미래, 특히 경제적 약자들에게 더욱 절실하고 필요한 것들이다. 이들 소수정당의 후보들이 국민의힘과 민주당 후보보다 도덕성이나 자질에서 결코 떨어진다는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득표 밖에 거두지 못한 것은 후보의 자질이 아니라 결국 승자독식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소수정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잔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조건들
결국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서울시민의 강력한 비토를 확인해 주기는 했으나 그것 이상으로 양당 독점구조에 대한 불신도 표출했다. 즉 정권의 심판이나 정권교체가 희망과 기대 충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1987년 이후 여러 번의 정권교체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현재의 승자독식의 선거법과 소수정당의 조직화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정당법을 바꾸지 않는 한 양당 독점구조를 깰 수 없고, 양당 독점구조가 그대로 가는 한 야당에 의해 윤석열 정권이 심판을 받을지라도, 심판 이후의 정치는 또다시 칼자루를 쥐어줘도 제대로 휘두르지 않았던 문재인 정권의 반복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호남의 민주당 독점, 영남의 국힘당 독점을 보장해주는 현재의 지역주의 정치,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당법과 선거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실 선거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지난 9월 헌재는 지구당 5곳 이상,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정당의 자격을 갖춘다는 현행 정당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4.19 이후 정국에서 난립한 정당을 통제할 목적으로 1962년 제정된 법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 이 정당법은 영남과 호남에서의 양대 지역주의 정당의 40년 독점을 지탱해 주는 장치다. 현재 호남에서 민주당이 아닌 후보, 영남에서 국민의힘이 아닌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총선은 결국 수도권에서 몇 십 석의 차이만 드러낼 뿐, 양당의 교대 집권 양상은 그대로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선거는 영호남 사람들만 탈정치화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을 탈정치화하고, 인구의 과반수인 지방의 소외를 만성화한다. 수도권 집중 문제 아무리 심각해도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거법과 정당법 뿐만 아니라 1987년 선거의 기본인 5년 단임 대통령제, 그리고 선거 외의 정치참여가 조직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지구당 폐지 조항 등 기존 법안이 국민의 정치참여를 조직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만이 정치참여의 유일한 길이고 그것을 제외하고 주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길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선거의 공간에서는 오직 거대 정당만이 게임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다수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인구의 반 이상이 언제나 지지 정당이 없다는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들 요구 제한하려는 틀은 시민들의 힘으로 깰 밖에
한국의 법과 제도와 이데올로기에서 이루어지는 제도권 정당정치는 비등하는 대중들의 불만과 요구를 일정한 틀 내로 제한하여,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는 길을 봉쇄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선거법, 정당법 등 풀뿌리 자치를 차단하고 지구당 활동을 차단하는 각종 법과 규정이 그것이고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요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금압하는 교육정책이 그것이다. 이런 봉합구조 하에서 시민들은 오직 몇 년에 한 번 열리는 선거만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창구라고 교육받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동적으로 선거에 동원된다. 이런 봉합구조 하에서는 부자들과 TV에 많이 출연한 사람, 판검사, 고위공무원 출신, 영남과 호남에서 각각 국민의힘과 민주당 공천을 받는 사람, 수도권에서 호남향후회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선거정치에 나설 수 없다.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기만적이다. 엘리트의 독점적 지배를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장치에 가깝다.
대의제, 선거제도, 그리고 결정권 위임이 곧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촛불시위와 같은 항의가 중요했지만, 그 성과는 결국 기성 정당과 정치가, 그리고 헌재의 몫이었다. 양당 독점구조를 깨는 법 제도 개혁이 없는 한, 한국의 다급한 현안,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대처 등 미래지향적인 과제는 후순위로 돌려질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게임을 민주주의라 믿으며 선거에 동원되어야 하는가? 19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개혁, 헌법 개정,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 그리고 대대적인 정치적 판갈이를 압박하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 역시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고, 한국의 미래는 매우 암담해질 것이다. 이제 선거와 대중의 일상 활동 사이를 매개하는 시민정치, 시민정치교육, 시민 직접참여의 길을 시민 스스로 찾아야 할 때다.
출처 : 양대 정당에 포획된 정치, 우리 고통 해결할 수 있나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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