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세빛 둥둥섬에서
반포 한강공원 세빛섬 주차장에 도착하니 늦가을 강바람이 싸늘했다. 그는 아직 오지 않았는지 주위에는 젊은이 몇 쌍이 종종걸음으로 전시장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는 서유럽 여행 중에 암스테르담行 기차에서 처음 만난 후 10년 만이다. 하기는 지난 해 2015년 우연히 연락이 닿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마크 로스코> 展을 같이 보러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전국에 불어 닥친 메르스 여파로 어머니 간병 중인 나는 외지로 나갈 수 없어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1년 여 지나 <헬로아티스트전(Hello Artist 展)>을 같이 보러 가기로 한 것이다. 그와는 미술전시회 관람의 인연이 정말 오래 이어졌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감정은 영적인 존재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잠시 상념에 잠겼는데 얼핏 저만치에서 웬 중후한 중년 남성이 바람결에 스치듯 나를 흘깃 바라봤다.
그 사람인가해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이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시선을 흐르는 강물에 두었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 10분이 지났다. 그는 약속시간에 늦을 사람이 아닌데 왠일일까. 불현 듯 지난날 내가 메르스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킨 것처럼 그도 갑자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스마트폰 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였다. 그런데 저만치 서 있던 그 중후한 중년 남자도 전화기를 든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싱긋 웃으며 내 쪽으로 왔다. 우리는 서로 못 알아본 것이다. 나는 너무 살찌고 그는 너무 중후해 있었다. 세월의 격차를 인지했음일까,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함이 흘렀다. 그러나 어색함도 잠시, 세빛 둥둥섬 內 솔빛섬 <헬로아티스트전>전시장에 들어서자 우리는 어느새 10년 전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갔을 때처럼 친숙해져서 그림에 몰두했다.
인상주의 거장 빈센트 반고흐, 폴세잔, 클로드 모네, 마네와 르누아르, 폴고갱, 에드가 드가 등 아트스토리와 함께 '컨버전스 아트'로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원작을 재해석한 2차 창작물로, 색채와 빛을 통해 찰나의 시각적 감각을 표현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재미있고 활기차 보였다. 전시장 곳곳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서 전시장 내부에 있는 ‘헬로 카페’에서 커피를 구매하여 움직이는 영상 앞에 앉아 마시며 전시 작품을 감상 할 수도 있었다.
문득 그에게 고마웠다. ‘헬로아티스트 展’을 안내해줘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와의 인연도 사실 참 기이했다. 10년 전 서유럽 여행 중인 친구와 나는 전날 야간열차로 뮌헨 중앙역을 출발, 그날 아침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앞두고 내릴 준비도 할 겸 복도 창가에 서서 지도를 펴들고 있었다. 그도 우리처럼 차창에 기대서서 지도를 보다가 우리와 같은 방향이라는 걸 알고 동행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해외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평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반 고흐 미술관>에 들러 가려고 직원과 동행이었다. 그는 영어와 독일어가 수준급이어서 길을 찾아가는 데도 편했다.
기차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하자, 우리는 곧바로 담락 거리를 따라 담 광장까지 걸어가면서도 그림 이야기만 했다. 네델란드 화가 반 고흐는 물론이고 ‘빛의 화가’ ‘혼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렘브란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튼, 당일 친구와 나는 오전에 <반 고흐 미술관>을 관람한 후 오후에는 잔센스한스로 가기로 했었다. 그곳에서 풍차와 나막신 치즈의 제작과정을 본 후, 중앙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行 밤 열차를 예약했기에 그와는 <반 고흐 미술관>을 관람 후 헤어졌다. 물론 국내에서도 미술전시장 투어를 하자고 약속은 했지만 서로 바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잊고 말았다
그렇듯 10년 전 단 몇 시간의 만남, 그런데도 그 때의 만남이 이토록 생생할 수가 있을까 나 자신이 의아했다. 외모는 변해서 서로 알아보지 못했을지언정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일 것이다. 사실 그는 10년 전보다도 그림에 더 많은 안목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이번 <헬로아티스트전>은 영상전이라서 ‘반고흐 자화상’은 눈도 깜빡이고 코도 움직여서 정말이지 너무나 생동감 있었다. 하지만 소리라도 지를 듯 즐거워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뉴욕 전시장에서 원화를 본 적이 있다며 원화가 더 좋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렇더라도 부분 적으로는 컨버전스 아트가 좋다고도 했다. 새가 날아다니는가하면 대형 유람선이 강물 위에 둥둥 떠 갈 때는 화면 앞에 서 있던 나는 전시장 바닥이 움직이는 것 같아 흠칫 놀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작품 앞에서 사진 촬영도 하며 기존 미술 전시장에서는 금지 사항을 헬로아티스트전에서는 맘껏 누렸다.
전시장 밖에 나오니 날이 어둑해졌다. 솔빛섬을 걸어 나오자 신개념 프리미엄 수상레져 ‘튜브스터’가 아바타처럼 다가왔다. 그 시간 반포대교 무지개분수도 유명하지만 나는 이미 전시장에서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던 터라 다음 기회에 다시 오기로 했다. 무수히 쏟아지는 불빛을 뒤로 하고 새빛 둥둥섬을 걸어 나오면서도 나는 마음이 뿌듯했다. 언젠가 책에서 읽는 한 구절이 생각난다. 'Spiritually Connected'
▲ 지금 그날 찍은 제 사진을 보니 완전 뚱순이에다 웃습지도 않네요. 지금도 물론 뚱순이이긴 하지만요
첫댓글 그래도 귀엽네요
항상 좋은글 감사 합니다
아궁!!
지제삼성님 ㅎㅎ
할망구한테 귀엽다니요. 너무 감사해요~ㅎㅎ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감사해서요,
현금 놓고 갈께요. ㅎㅎ
아이쿠 , 감사히 받겠습니다
항상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