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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진 칼럼니스트 문학 시선 동인
기후 위기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이제 도시는 한여름의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잠기고, 가을에는 먼지 날리는 갈증에 시달린다. 비는 너무 많이 오거나, 너무 오래 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도시의 하수도는 한계 용량을 넘어서고, 지하차도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다. 그리고 며칠만 지나면 호수처럼 고여 있던 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도시는 다시 바짝 마른 목으로 갈라진다. 이 불안한 물의 리듬을 되살리는 해법이 바로 ‘레인 스쿨’이다.
레인 스쿨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도시의 빗물 순환을 회복하기 위한 생활 인프라이자 참여형 실험실이다. 학교와 마을, 도서관, 공원에 빗물 저장고를 설치하고, 그 저장고가 어떻게 차고 비워지는지 시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은 강우량을 측정하고, 저장된 빗물로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꾼다. 어른들은 지붕 빗물의 첫 5분을 흘려보내는 이유를 배우고, 깨끗해진 빗물을 화장실 세정수나 청소용수로 쓰는 법을 익힌다. 결국 레인 스쿨은 ‘물의 민주주의’를 배우는 장이다.
이제 빗물 관리는 기술자와 공무원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기후변화로 인한 강우 패턴의 변화는 개인의 삶에 직결되고, 대응에도 시민의 손길이 필요하다. 파리, 베를린, 도쿄는 이미 학교 단위의 빗물 관리 수업과 체험장을 운영한다. 파리는 2023년부터 ‘파리 레인 스쿨 프로젝트’를 통해 초·중등학교 20곳에 빗물 정원을 조성했고, 매년 약 3만 명의 학생이 직접 빗물 모니터링과 식생 관리에 참여한다. 베를린은 2030년까지 공공건물 옥상의 70%를 녹지화·집수화하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 도쿄 스미다구는 빗물 저류조와 학교 빗물 교실을 연결해 학생들이 빗물 수위 데이터를 직접 관찰하게 하여 홍수 방어와 교육을 동시에 달성했다.
국내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서울시 서초구의 ‘빗물 광장’은 지하 5만 톤 저류조를 갖추어 태풍급 폭우 시에도 인근 도로 침수를 막는다. 경기도 고양시는 초등학교 10곳에 빗물 통을 설치해 연간 2천 톤 이상의 상수도를 절약하고, 그 물로 교내 텃밭과 화단을 가꾼다. 부산시는 공공청사 주차장에 투수 블록과 빗물 저장조를 설치하여 빗물의 60% 이상을 땅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은 ‘빗물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아 쓰는 자원’이라는 것으로 인식을 바꾸고 있다.
재정 문제를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인 스쿨은 저비용 고효율이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분산형 빗물 관리 시스템은 기존 배수관 확장 대비 최대 40%의 비용을 절감하고, 침수 피해 저감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편익까지 고려하면 투자 대비 편익(B/C)이 2.0 이상으로 평가된다. 서울시 빗물관리 정책은 2010~2020년 사이 평균 침수피해액을 30% 이상 줄였고, 투입 예산 대비 연평균 1.7배의 편익을 창출했다는 분석이 있다. 빗물은 도시의 새로운 ‘보이지 않는 수자원’이자 ‘보험’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행동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레인 스쿨은 그 출발점이다. 아이들이 만든 빗물 정원은 도시 열섬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를 씻어내며, 폭우 때 하수도를 돕는다. 시민들이 모니터링하는 빗물 데이터는 지자체 정책의 근거 자료가 되고, 마을 단위 빗물 학교는 주민 소통의 장이 된다. 결국 교육과 인프라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일 때, 도시가 ‘빗물에 강한 도시’로 거듭난다.
무엇보다 울산은 대한민국 대표 산업도시이자 친환경 전환의 시험대다. 울산은 이미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수소경제 특화도시 비전 등을 추진하며 기후정책 선도 도시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레인스쿨을 결합하면 ‘녹색도시 울산’이라는 브랜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산업단지 빗물 재이용, 학교·공장·공공청사 연계 빗물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침수 피해를 줄이고 가뭄에도 대비할 수 있다. 시민·기업·학교가 함께 참여하는 빗물 학교는 산업도시의 환경 이미지를 개선하고, 우리나라와 나아가 세계에 울산의 기후적응 모델을 보여줄 것이다. 울산이 먼저 시작할 때 다른 도시도 뒤따르게 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울산이 보여주는 선도적 행동은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도시의 미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레인스쿨 도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침수와 가뭄, 그리고 늘어나는 재난 예산은 이미 경고장을 보내고 있다. 빗물을 버리지 않고, 가두고 천천히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도시는 매년 더 위험해질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학교 운동장, 공공기관 주차장, 아파트 단지 옥상부터 빗물 학교로 바꿀 때다. 오늘 만든 작은 빗물통 하나가 내일의 홍수를 막고, 마른 도시에 숨을 돌려줄 것이다. 울산이 이 흐름의 선두에서 전국 최초의 ‘레인스쿨 도시’로 자리 잡는다면 대한민국의 기후환경정책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 도시의 레인스쿨 도입을 더 미룰 이유는 없다. 이제 도시가 물과 화해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