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ur Evangelists-GOZZOLI, Benozzo
1464-65 Fresco Apsidal chapel, Sant’Agostino, San Gimignano
St Mark the Evangelist-GHIRLANDAIO, Domenico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축일 : 4월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福音史家)
St.Mark the Evangelist
라틴어 Marcus 영어 Mark
마르코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의 대부분은 신약 성서에 직접 의거한 것이다. 그는 보통 사도행전 12장 12절에 나오는 마르코와 동일시된다.
사도행전 (12, 6-18)에 의하면 헤로데 아그리파 왕의 박해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 성 베드로는 어느 날 밤 두 천사의 힘으로 기묘하게 옥에서 구출된 후 마르코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머무르다가 원수들을 피하기 위해 다시 로마로 출발했다. 여기서 마르코라고 불리는 요한은 복음 사가(史家)로서 유명한 성 마르코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130년경 별세)에 의하면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이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충실히 기록했다고 한다(에우세비오, 교회사 3, 39,15).
신약성서에는 요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열번 나오는데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그리스식 이름이다.성 베드로, 성 바오로가 각각 시몬과 사울이라는 유다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마르코도 유다식으로 요한이라고 불렸다.
그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 예루살렘의 가정 출신인데,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 집에 그리스도 교인들이 모이곤 하였다(사도 12:12).이 집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도 제공되어 최후의 만찬이 이 집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령 강림날에 성 베드로에게 영세한 3천명의 신자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한다.
마르코는 바울로와 바르나바를 따라(사도 12:25) 45-49년경의 1차 전교여행을 함께 했는데(사도 13:5) 키프로스까지 동행한 후 그 다음 목적지인 소아시아의 주요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사도 13:13). 이에 바울로가 그를 못마땅히 여긴 나머지 50-52년경의 2차 전교여행 때 동행하기를 거부하자 마르코(성 바르나바의 조카였다)그는 사촌인(골로 4:10)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섬으로 가 전교하였다(사도 15:37-39).
그러나 53-58년경의 3차 전교여행 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는 바울로 곁에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골로 4:10, 필레 1:24). 한편 바울로가 마지막으로 로마에 투옥당해 있을 때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한 적이 있다(2디모 4:11).
마르코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준다.
베드로는 마르코를 유난히 아꼈다.
이는 대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었던 마르코를 ’내 아들’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실제로 마르코는 사도적 정신의 열정으로 보아도 성 베드로의 아들이라 불리울 가치가 있었다.
그가 신자들의 희망에 의해 성 베드로의 설교를 자료 삼아 간단 명료하고 강력한 필치로써 복음서를 저술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주님의 공생활 3년동안 밤낮으로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친히 거룩한 감화와 교육을 받은 성 베드로가 사랑하는 주님을 사모하는 줄거리는 마르코의 소박한 필적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복음서야말로 세상 끝나는 날까지 불멸의 빛을 발하는 대 금자탑의 하나로서 필자 마르코의 공적도 영구히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Evangelist Mark-DONATELLO
1428-43.Polychrome stucco, diameter:215cm.
Old Sacristy,Church of San Lorenzo, Florence
그리스도교 회화에서 마르코는 대개 복음서를 지니고 날개 달린 사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사자의 모습은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르 1:3)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는데 예술적 전승은 그 소리를 사자의 울음으로 비유하였다.
날개는 네 개 달린 ’생물체’에 관한 에제키엘의 환시를 네 복음사가에 적용시켜 이해한 데서 비롯한다.
그는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양위 사도가 순교한 뒤 로마를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그곳의 주교로서 은사 성 베드로의 정신을 따라 사람들을 인도하며 교회를 상당히 발전시키던 중에 그도 동양에서 자기 피로써 성스러운 신앙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부임한지 불과 10년도 못되어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 그를 체포하여 목에 줄을 매어 읍내를 돌게 하고 마침내 참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순교의 최후도 성 베드로의 제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지금 두 성인은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고 계실 것이다.
성 마르코의 유해는 후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옮겨져, 유명한 성 마르코 대 성당에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성 마르코 광장으로 유명한 베니스는 마르코가 그곳의 수호 성인이라고 한다.
오늘날 세상에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는데 그 질문이란 "그는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마르코에 의한 복음은 아주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쓰여진 것이다.
병자를 치유하며(1,31), 용서를 베풀고(2,10), 악령들을 쫓아내시던 당당한 모습(1,24-11.23;5,7)과 사람들이 그분을 조롱하며 (5,40;6,2;15,29-32) 그분을 없애버리려고 하는(3,6;12,13;14,1) 아주 대조적인 모습으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이러한 대립은 제자들 사이에서도(4,13) 예수님의 가정 안에서도 있었음을(3,20-35)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그는 이러한 대립들을 부활의 신비로써(16장)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며 (8,31;9,31;10,33), 이런 대립은 모든 크리스찬에게 또 다시 반복됨을 역설한다(8,34;9,35;10,24-39).
수치를 당하고 증오를 받았으며, 고통받다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메시아를 보여주는 이 복음은 결국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라는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을 가능케 한다. 마르코는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에 대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복음 사가이다. 그리스도를 팔아버리는 것과 형제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거부하는 행위는 우리들의 최후의 만찬인 성체성사 후에 우리도 수없이 범하게 되는 배반이다.
4복음서 중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짧은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파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음을 강조한다.
아마도 로마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을 위해 기원 60년과 70년사이, 베드로와 바오로가 죽은 다음에 씌어졌다.
이 복음서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베드로는 마르코를 ’나의 아들’이라 불렀다) 고유한 인물이고 다른 등장 인물은 대부분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들)와 안티오키아 교회 (대부분이 이방인들)사람들이다.
마르코는 다른 복음 사가인 루가처럼 12사도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없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체포를 이야기할 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르코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첫번째 주교였다고 한다.
마르코는 일생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소명,즉 구원의 원천인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특별히 마르코의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음악이나 연극,시 또는 가족들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침으로써 복음을 선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에는 다른 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은 별로없다. 고유한 구절이 넷 있는데 그 구절 가운데 하나는 다음의 것이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마르 4,26-29)
서양 각국에서는 성 마르코 축일에 풍년 기원제를 행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오래된 행사로 그의 시초는 이교인들이 서리(霜)의 신에게 오곡 성숙을 기원하는 제사에 대항하여 시작된 그리스도교적 행사이다. 그 뒤 잠시 중지되었으나 그레고리오 1세 교황 치하에 부활되었고 날이 갈수록 발전되어 오늘에 이른다.
성 이레네오 주교의 저서 [이단자를 거슬러] 에서
(Lib. 1,10,1-3: PG 7,550-554)
진리의 전파
땅 극변에까지 온 세상에 전파된 교회가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은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신 성령에 관한 신앙입니다.
성령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드러내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사랑하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림하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시며, 수난받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며, 육신으로 승천하시고, 또한 하늘로부터 성부의 영광속에 다시 오시며, 만물을 일치시키시고 모든 인간 육체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이시요 하느님이시며 우리 구세주이시요 왕이신 예수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은 모든 이 위에 정의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어받은 이 가르침과 이 신앙을 충실히 간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온 세상 곳곳에 퍼져 있지만 같은 한 집안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온 교회는 마치 한 영혼과 한마음만을 지니고 있듯 이것을 믿고, 또한 흡사 하나의 입만을 가지고 있듯 일치된 목소리로 그것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또 전수해 줍니다. 세상의 언어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신앙을 전달하는 전승의 활력은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독일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이 믿고 또 전수하는 것과 스페인이나 켈트 지방이나 동방의 교회들이나 에집트나 리비아의 교회들이나 세계 중심의 교회들이 믿고 전수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인 태양이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처럼 진리의 선포도 세상 어디에서나 빛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웅변을 지닌 사람도 이것과 다른 어떤 것을 말해서는 안되고(누구도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위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또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전승의 효력을감소시켜서는 안됩니다. 신앙은 하나이고 같은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있는 사람은 그것을 불리지 말아야 하고 또 이야기를 적게 할 수 있는 사람도 그것을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Christ with the Four Evangelists-BARTOLOMEO, Fra
Wood.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