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
지난 2개월 동안 필자는 출판기념 강연회를 겸해 미국과 유럽의 몇몇 국가를 여행했다.
최근 펴낸 새로운 저서 ‘혁명의 시대’(Age of Revolutions)를 통해 필자는 전방위적이고
총체적인 대변화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 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가 만난 사람들은 소득과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끝모를 변화와 혼란이 우리를 암흑기로 인도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토로했다.
강연회 참석자들은 “도대체 우리에게 희망이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다.
우리를 둘러싼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여전히 미래를 낙관한다.
유럽인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위험한 세계로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유럽에 등을 돌리고, 유럽대륙의 안보체제는 삽시간에 와해될 것으로 믿는다.
한 유럽 정치인이 필자에게 말했듯 “서방 국가들은
우리가 살아온 안정적이고 평화로우며 개방된 세계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크기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으며, 우리가 당연시하는 모든 것이 언제건 맥없이 허물어질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우선 외적인 도전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나라 밖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이란에 북한까지 가세해
서방의 힘과 가치에 맞서는 또 하나의 축을 구축하고 있다.
그렇지만 냉전이후 재점화된 거대 세력 사이의 경쟁은 흥미로운 효과를 낳고 있다
서구의 이상적인 가치와 관습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단점과 위선을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이같은 일방적 판단에서 벗어나 다른 체제가 제시하는 대안과 견주어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서구의 힘과 가치가 지배하는 세계를 원치 않는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제시하는 대안을 선호한다는 말인가?
입소스와 킹스 칼리지 런던(KCL)이 실시한 새로운 여론조사는
지구촌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31개국의 거주민 2만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독재 국가들의 힘과 영향력 확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러시아, 중국과 이란을 대체로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는 3대 국가로 꼽았다.
이같은 시각은 2019년의 서베이에서 나타난 3개 독재국가에 대한 견해가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가 나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견해는 2019년에 비해 22 포인트가 늘어났고,
중국과 이란은 5년전에 비해 각각 10포인트와 5포인트 상승했다.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4대 국가 가운데 마지막 자리는 이스라엘에게 돌아갔다.
이스라엘인들의 경각심을 촉구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입소스/KCL 공동 서베이는 지난 2023년,
총 24개국에서 실시된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와 대체로 일치한다.
중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을 호의적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9%가
미국에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 반면 중국을 선호한다는 답변은 28%에 그쳤다.
중국의 힘찬 날갯짓과 러시아의 귀환은 국제 정세를 뿌리째 뒤흔드는 강력한 태풍을 불러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들의 요란스런 움직임은 세계인들에게 서구의 자유주의적 가치와
중국과 러시아가 표방하는 가치 사이의 선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양 진영의 경합을 보면 둘 사이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서방측은 양국 국민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각각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허용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두 진영 사이의 뚜렷한 차이다.
입소스/KCL 조사 대상국 가운데 단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국가들은
지난 2019년에 비해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에 더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단 하나의 예외는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인들이 그들이 속한 국가의 활력과
기운 및 장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사실만 놓고 보면 미국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의 출판기념 강연회에서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미국 내부의 분열과 양극화를 걱정했다.
그들은 미국이 이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나와 타협을 이루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궁금해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필자는 낙관한다. 우리는 변화의 회오리를 통과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내부 문제를 숨기지 않는다.
만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리의 더러운 빨랫감을 세탁하는 셈이다.
이렇듯 우리의 실패를 대놓고 떠들면 정치시스템은 경련을 일으킨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숱한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를 숨기고 억누른 채 국민의 동의를 강요하면서
세계를 향해 단지 허울뿐인 북한식 단합을 과시하는 것보다 낫다.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서베이는 세계인들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별할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택에 직면하게 되면 세계인의 대다수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과 북한보다 서방세계를 선호할 것이고, 단점까지 포함한 서구의 가치를 택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
미주 한국일보
2024년7월3일(수)字
2024年7月3日(水)
캐나다 몬트리올 累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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